[Opinion] 우리는 종종 사랑을 착각한다 - 항구의 사랑 [도서]

글 입력 2020.08.2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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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성이라는 이유로 우정이라 착각하고, 이성이라는 이유로 사랑이라고 착각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정이라고 치부하기엔 애틋한 감정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기엔 두려웠다. 그러나 동성끼리 껴안고 입을 맞추더라도 친구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 바로 여중, 여고를 다니던 시절이다.

 

나는 홀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인가 혼란스러웠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결국 당시를 함께 했던 친구들이 함께 사랑을 느꼈다고 했다. 각자의 비밀을 공유한 기분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고는 나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친구들은 그때를 부끄러운 기억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학생들 사이에서의 동성연애를 주목한 연구 자료가 쏟아질 때 사랑 한복판에 서 있던 아이들이 있다. 누군가에겐 진심 어린 사랑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겐 잊고 싶은 한 때의 방황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던 그 순간만큼은 함께였다.

 

김세희의 소설 『항구의 사랑』 속 ‘나’를 독자가 온전히 제삼자로 읽을 수 없는 이유도 그 당사자성에 있다.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때 그건 다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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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는 목포에서 여중·여고를 졸업했다. 스무 살이 되어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나’는 대학교에서 기이할 정도로 이성애에 대한 찬양과 관심이 집중된 곳이라고 느꼈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학창 시절 경험한 일들은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영 그 시절을 묻어 두고 살 것 같던 어느 날, 별안간 찾아온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때 그건 다 뭐였을까?”

 

 

‘나’는 여중에서의 신체검사 날을 기억한다. ‘인희’는 옷을 갈아입으며 ‘나’에게 자신의 신체를 본 건 ‘나’가 처음이라며 속삭였다. 본능적으로 자신과 인희의 관계가 남들이 말하는 우정과는 다른 형태였다고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부터 인희를 멀리하지만, 자신만의 데미안이라고 생각했다.

 

인희를 다시 만난 건 고등학교에서였다. 인희는 ‘나’의 기억과는 달라져 있었다. 길었던 머리는 칼머리로 잘라 짧았고 교복 치마를 입었던 친구들과는 달리 교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균 여성보다 키가 큰 인희는 마치 여고의 아이돌이었다.

 

인희는 힙합 바지를 입고, 마치 매체에 나오는 전형적인 남자친구처럼 친구들을 대했다. 멋지고 쿨한 모습을 내세우며 마치 잘 어울리는 이성애자 커플처럼 보이게 했다. 한참 남자 아이돌 팬픽이 유행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동성연애는 이상적인 사랑이었다. 남자아이돌 A와 B가 연애하는 소설을 읽으며 사실 여부도 모르는 개념을 배워갔다. 그랬던 학생들에게 인희의 모습은 이상적인 사람의 실현 그 자체였다.

 

‘나’는 그런 인희를 보며 과거와는 다른 거리감을 느꼈다. ‘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연극 동아리에서 ‘민선’ 선배를 알게 된다. 민선 선배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나’는 민선 선배를 짝사랑하지만, 자신과는 달리 성숙해 보이는 선배를 보며 위축되기만 했다. 결국 바닷가에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나’는 민선이 자신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자신의 사랑과는 다른 것을 깨달았다.

 

열렬했던 첫사랑이 끝나고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한다. 목포에서의 생활과 서울에서의 대학은 기괴한 기분이 들 정도로 달랐다. 팬픽을 공유하며 동성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건 사라졌다. 완전히 뒤바뀐 세상을 경험하며 ‘나’는 주변과 마찬가지로 남자와 사귀면서 자신이 한때 여성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그저 묻어둘 뿐이다. 그러나 덮어둔다고 해서 그때의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어.


 

학창 시절 뜨겁게 사랑했던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그 때의 기억을 없었던 것으로 취급했다. 오히려 부끄러운 기억이라거나, 입 밖으로 내뱉으면 문제가 되는 것처럼.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학에 가서는 이성애자로 살아갔다. 그러나 당시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무리에서 이성애자의 연애 이야기에는 어떤 말을 할지 몰라 입만 다물거나 웃음으로 넘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동성과 연애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비밀을 공유한다는 달콤함에 취해 있었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안심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사춘기 시절의 열병으로 지워진 기억들이, 혹은 여전히 그 감정이 이어지는 존재들이 떠오른다. 나는 그저 『항구의 사랑』을 통해 그 감정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고 증명하고 싶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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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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