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염세 (厭世)

나에게는 거창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이나마 어렴풋이 한다
글 입력 2020.08.2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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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가장 잘 따르던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은 염세주의자셨다. 그렇다고 평소에 스스로가 염세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니, 건들지 말라고 말씀하고 다니셨던 건 아니다.

 

전해듣기로는 아이를 낳지 않으시겠다는 이유가 “이 세상을 새 생명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라고 하셨을 뿐이다. 교무실을 들락거리다 보면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과 교류가 적었고, 다른 선생님들이 그 선생님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죽고 싶은 나이를 정해놓고 사는 그 친구는 요즈음에도 선생님을 곧잘 만났다. 둘의 연이 길어질수록 친구가 죽을 날은 조금씩 연장됐다. 나는 친구와의 관계를 마무리했다.

 

일부러 술을 마시고 데리러 오라는 전화를 이틀에 걸러 한 번씩 해서도 아니고, 택시를 태워 보내려는 나에게 입을 맞추고 나서 정적을 이기지 못해 “엄마같다”라며 웃어서도 아니고, 기억을 잊은 척을 해서도 아니다. 싫어서였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에 집어넣을 수 있는 이유는 너무 다양해서 종잡을 수가 없다. ‘싫어서’라는 것이 이유인데, 더 깊이 캐묻는 시도. 주체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그 시도는 사실은 객체가 원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입구를 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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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을 쳐다보고 걷는 귤밭에서 운이 좋으면 과실이 상하지 않고도 벌레가 아직 건들지 않은 귤을 발견할때도 있다. 나는 아주 효과적으로 귤을 줍는 방법을 익혔다.

 

나무 위의 것보다는 맛이 빼어나지 않겠지만 힘들이지 않고 꽤 괜찮은 것들을 골라낼 수 있다. 사다리를 들고 하는 일 따위는 벌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강원도에서 감자나 옥수수 따위의 것들과 자랐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친구가 선생님과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건 그 역시도 입구를 꽁꽁 숨겨둔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사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은 한 사람의 그것을 찾아 헤매 들어오는 데에 아주 적당한 크기만의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적당한 시도가 끝이 나면 이제는 열쇠나 비밀번호를 알아내야 한다. 아니다. 문의 손잡이를 먼저 찾아야 한다. 아니다. 문의 형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곳이 아니다. 아니다…아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는 시간들을 단절하였다. 순간에, 당신과 나를 연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다지 요란하게 시작되지는 않는 것이 염세의 시작점이다.

 

보이기에는, 내가, 염세주의자라 보일 수도 있겠다.



[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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