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멍들지 않기 위해서 우린 무얼 해야 하나요 :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문학]

새싹을 밟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에 대한 이야기,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글 입력 2020.08.1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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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드는 어른



나는 여기저기 멍이 잘 드는 아이였고, 그 아이는 자라서도 온 몸 곳곳에 멍을 달고 다니는 칠칠맞은 어른이 되었다. 물리적인 멍 뿐만은 아니었다. 나는 종종 타인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그 상처는 고스란히 마음 한 구석에 흔적으로 남았다. 왜 나는 자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멍이 들고 마는 것일까.

 

종종 생각한다. 나에게 맞는 속도와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가 맞지 않는다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수가 속한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서 사회의 속도에 나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을. 그렇게 아등바등 하는 동안 내 몸과 마음 곳곳에 멍은 늘어만 갔다. 하지만 사회에서 나는 나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속속무책으로 나의 멍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날에 익숙해지던 즈음에 2019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다가 이주란의 「넌 쉽게 말했지만」을 읽게 되었다. 이 글은 서울을 떠나 엄마의 집으로 돌아온 1인칭 화자 ‘나’인 조지영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일상의 이야기이다. 화자 본인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내밀한 일기장을 보는 기분이 드는 글이었다. 작품집에 실린 글 중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글은 바로 이주란의 글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 속 몇몇 장면들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많았다.

 

 
나는 요즘 시간이 이렇게 가고 있구나, 하는 것만 생각한다.
 

- 80쪽, 「넌 쉽게 말했지만」

 

   

아파트 주민인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는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엄마와 함께 밥을 차려 먹기 위해 메뉴를 고민하고, 지인의 가게에 다녀오기 위한 여행을 불쑥 다녀오는, 문장 그대로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주인공만의 시간의 흐름에 빠져드는 순간 나와 사회의 시간이 혼재되어 정신없이 흘러가던 내 시간의 흐름도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는 기분이 든다.

 

타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게는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는 지점을 담은 이주란의 글 아홉 편이 담긴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자꾸만 나도 모르는 멍이 드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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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의 흥미로운 점은 수록된 여러 단편들이 ‘조지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 소설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곳곳에서 발견되는 연결고리가 여러 글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여겨지게 만든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화자 ‘나’인 조지영이 (어떠한 이유로) 곁에 없는 언니를 대신해 조카인 송이와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반면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은 동생 조지영의 언니인 조수영이 화자로 등장해 죽은 동생의 방과 유품을 정리하는 이야기이다. 그 외에도 아픈 강아지(의 냄새), 조지영과 긴밀한 관계인 듯한 M, 교회를 다니는 오랜 친구, “그렇게 살지 말라”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은 요소들이 조금씩 변주되지만 반복되어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소설집 속 단편들은 조금씩 이어져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세계 속 제일 많이 등장하는 ‘조지영’의 이야기는 지극히 한 개인의 이야기지만 겹겹이 쌓인 단편들 속 그의 목소리를 거치며 우리들의 이야기가 된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겹쳐 읽으며, 떠오른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가난, 탈도시, 관계, 인정, 가족, 상실, 죽음, 순간, 기억, 단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일상.

 

 
기억은 언제고 멈추어야 하고 나는 그게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그저 좋았던 기억이고 싶다. (중략) 어떤 순간도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서 마지막을 연습하는 것처럼 나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낸다.
 

- 11쪽,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의 글들은 책을 덮고 나서 강렬하게 남는 사건이 있거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뚜렷하지 않다. 그저 나와 비슷한 어떤 타인이 살아가는 일상을 일기장에 기록하듯이 담담하게 풀어내 쓰고 있을 뿐이다. 그 기록 속에서 그들의 시간을 같이 읽어나가며 우리들 또한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소설 속 낯선 타인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된다.

 

 

 

멍든 몸과 마음을 살피기 위하여(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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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 88쪽,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나는 내가 나의 몸과 마음과 나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내가 내 몸과 마음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그것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흠, 미안해

 

미안하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살 것이다.

 

- 120쪽, 「일상생활」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복잡한 도시를 떠나는 것, 풍족하기보단 근근이 먹고 살아하는 현재를 받아들이고 사는 것, 완벽하지 않은 관계를 끊어내기 보다는 마주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 보는 것.

 

동시에 일상의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

 

소설 속 인물들의 선택과 언행들을 곱씹어보면 이 모든 행위의 목적이 ‘나’를 살피기 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일상의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순간순간을 ‘보내는’ 일이 내 삶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를 계속 채찍질 했던 순간, 타인에게 무수히 미안하다고 쉽게 내뱉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한 번도 미안하다고 말한 적 없었던 순간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나를 얼마나 평소에 함부로 다루는지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회사를 관두고 집으로 돌아오거나, 하던 일을 관두고 빵집을 운영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괴롭히던 무언가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일상을 통해 나를 다치게 만드는 환경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둘러싼 것들과 이들과 함께 만들어낸 순간을 돌아보는 일은 곧 내가 나도 모르게 생겨났던 멍들을 살피는 일이다.

 

상처의 흔적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살펴보고, 이렇게 내 몸과 마음을 함부로 다뤄서 미안하다고 한 마디 뱉어보는 일. 이주란의 글은 이 일이 사회 속 수많은 타인들과 낯선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새싹을 밟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에 대하여(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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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비가 조금 내렸고 자주색과 회색 보도블록 사이로 올라오는 새싹들을 밟지 않으려고 어렵게 걸어 출근을 했다.

 

- 20쪽,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새싹을 밟지 않으려는 조지영의 노력은 곧 나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단정 지어 밟지 않으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소설 속 세계에는 조지영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이니셜이 혼재되어 있다. 이들의 관계가 얽혀 있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각자의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이유는 소설 속 인물들 모두가 각기 비슷하지만 너무나 다른 자신만의 삶을 받아들이고, 타인의 삶의 자리 또한 존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유영하는 이주란의 소설들을 읽으며, 삶의 순간들을 가까스로 꺼내어 보았고 그 순간들에서 가끔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이주란의 책을 덮는 순간, 발 밑의 새싹이 함부로 다치지 않을 정도로 나의 속도를 찾아 나서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나만의 속도를 찾았을 때, 그 때는 비로소 쉽게 멍들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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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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