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레몬과 라임을 인생으로 가져온다면 -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라임

글 입력 2020.07.2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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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과 라임을 그대로 옮겨 놓았네'

 

책의 첫인상이다. 진짜 레몬과 라임도 아닌 하나의 책인데도 실제 과일을 눈앞에 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 색상을 얼룩 하나 없이 계속 가지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함께였다.

 

책의 색상만큼 구성도 톡톡 튀었다. 두 소설로 이루어진 책, 표지가 앞뒤로 다른 책, 영어와 한글이 함께인 책, 글 작가와 그림작가가 서로를 인터뷰한 책. 두 개의 단편 소설이 담긴 깔끔한 책이지만 이를 설명하는 문장은 보다 많았다.

 

책은 <레몬청 만드는 법>과 <핑거라임> 두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책을 읽으며 마치 레몬을 입 안에 넣은 듯 시큼 새콤한 맛이 가득했다. 두 소설 모두 레몬과 라임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취향처럼 시고 새콤했지만, 핑거라임은 시다 못해 씁쓸함이 가득하여 필자가 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책의 표지처럼 상큼한 내용이 담겨있으리라 예상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쓴맛의 여운이 길어, 이번 리뷰에서는 필자가 감당 가능한 신맛인 <레몬청 만드는 법>을 중점으로 작성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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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청 만드는 법


 

"진짜 레몬청을 만드는 법을 쓴 책이에요??" 책을 받고 살펴보던 내게 룸메이트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질문해왔다. 정말 말 그대로 레몬청을 만드는 방법을 다룬 책이냐고 말이다.

 

"아마 만드는 법은 들어있지 않을까? 만약 만드는 법만을 가지고 이 정도의 분량의 글을 써냈다면 그것도 재밌겠다." 룸메이트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답이 '응'이었다면 그것으로도 재미가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정말 레몬청 만드는 법만을 가지고 이 정도의 글을 쓴다면 글쓴이는 레몬청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레몬청 만드는 법>은 대학가의 조그만 태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알게 된 손님에 대한 이야기다. 화자는 태국식당의 알바생으로 식당을 찾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관찰한다. 하나하나 유심히 관찰한다기보다는 유심히 지켜본다고 해야 조금 더 맞는 표현일까. 화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손님들의 아픔을 바라본다.

 

항상 연인과 오던 손님이 홀로 가게를 찾아와 레몬차 한 병을 주문한다.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계속 차를 따르고 그 잔의 수만큼 계산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손님은 자리에 홀로 앉아 열세 잔의 레몬차를 비운다. 시고 씁쓸한 과즙을 가진 레몬 조각들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잘근잘근 씹었던 그녀는 어떠한 사정과 아픔이 있었을까. 시고 씁쓸한 레몬과 함께였던 설탕이 그녀에게 조금의 위로는 되었을까.

 

열세 잔의 레몬차를 비운 그녀를 보며 같은 회사의 동료가 떠올랐다. 나보다 회사에 먼저 입사했고, 아는 것이 많고, 책임감이 강하고, 많은 도움이 되었던 동료다. 그런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유는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할 뿐이었다. 그리고 생소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책을 읽으며 열세 잔의 레몬차를 비운 여자는 나의 동료 같았고, 나는 아르바이트생이 된 것 같았다. 동료의 내면과 이유는 알 수 없다. 예상과 달리 기쁜 소식일 수도 있고, 레몬청처럼 시고 씁쓸한 소식일 수도 있다.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힘이 되어준 사람이지만 나의 동료도 낯익은 타인이기 때문일까. 그저 레몬의 씁쓸함이 담긴 이유라면, 설탕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동료에게 함께하기를 바란다.


 

레몬청 만드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먼저 레몬을 얇게 썬다. 우리병 속에 레몬 조각을 한층 깐다. 그 위에 설탕을 얇게 덮는다. 다시 레몬조각을 한 층 깐다. 설탕으로 덮는다. 레몬 조각 한 층, 설탕 한 층, 레몬 조각 한 층, 설탕 한 층. 이렇게 반복한다. 병이 거의 채워지면 마지막으로 설탕을 듬뿍 붓는다. (중략) 일주일이 지났을 때 맛이 제일 좋지만, 날짜를 너무 따질 것 없이 언제 마셔도 시기마다 특유의 맛이 난다.

 

- p.7

 

 

책에는 레몬청 만드는 법이 쓰여있다. 레몬청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너무 시어서 괴로운 동시에 맛있기도 하고, 이런 오묘함이 인생과 닮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레몬청을 만드는 방법은 우리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고 쓰고 씁쓸한 레몬조각과 달콤한 설탕이 한 층 한 층 섞인 레몬청처럼 우리의 인생도 희로애락이 담겨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완성된 레몬청은 일주일이 지났을 때 맛이 제일 좋지만, 날짜를 따질 것 없이 언제 마셔도 시기마다 특유의 맛이 난다고 한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항상 좋고, 항상 기쁘고, 항상 슬프고, 항상 힘든 것만이 인생은 아닐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적절히 섞여 순간순간의 감정과 추억을 만들어 내고, 시간이 지나 이 모든 것을 돌아봤을 때 순간순간 특유의 맛을 느끼며 입 안의 레몬청을 떠올리지 않을까.

 

 

[김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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