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개그우먼이란 무엇인가 [TV/예능]

다큐인사이트 <개그우먼> - 시대를 바꾼 개그우먼 6인의 이야기
글 입력 2020.07.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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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을 정의한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개그맨은 코미디언, 희극인, 또는 종합 예능인 등 다양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결국 그 의미는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개그’우먼’, 그러니까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여성들이다. 그동안 개그우먼의 이미지는 어떻게 소비되어 왔으며, 그들은 대중을 웃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개그우먼이란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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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KBS 1TV에서 방영된 다큐인사이트 <개그우먼>은 이성미, 송은이, 김숙, 박나래, 김지민, 오나미 여섯 명의 개그우먼의 웃음기 없이 진지한 얼굴을 흑백의 화면에 가득 차게 보여준다. 때로는 화려한 분장으로, 때로는 웃음과 눈물로 가려졌던 이들의 진솔한 얼굴은 <개그우먼> 여섯 명의 개그우먼과 김상미 PD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몸소 겪어온 ‘한국의 개그우먼으로서의 삶’을 조명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동안 우리가 개그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과연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선발 대회를 통과한 최초의 개그우먼인 이성미는 ‘여자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면’ 코너에 들어가는 식으로 일을 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잘못하면 여자 전체를 독박 씌우는 것이기 때문에” 악착같이 일을 했다고 말한다. 당시의 개그우먼은 ‘필요하면 투입되는’ 존재였다.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개그콘서트의 코너는 개그맨 5-7명이 모여 코너를 구상하고 여자 역할이 필요하면 개그우먼을 부르는 식으로 구성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무대 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여러 개그우먼의 모습을 빠르게 보여주는 화면은, 오랜 기간 문제의식 없이 <개그콘서트>를 마냥 즐겁게 봤던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과연 개그콘서트를 지나간 그 많던 ‘개그우먼’들은 ‘개그맨’들과 동등한 자리에 있었는가?

 

박나래와 오나미는 신인 시절 선배들에게 “이번엔 너구나?”라는 뜻 모를 말을 들었던 경험을 회상한다. ‘미녀 개그우먼’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김지민도 마찬가지다. 박나래와 오나미가 들었던 “너구나”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말의 의미를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다. 대놓고 개그우먼들의 외모를 개그 소재로 사용했던 2006년의 <폭탄스> 같은 코너는 당시에도 외모지상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으며 방영된 영상을 보면 방청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는 짧게는 5분, 길게는 15분으로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가 폭소할 만한 요소를 넣은 콩트를 보여줘야 한다.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답습하는 것은 시청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개그를 짜기 위한 간편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개그우먼들에게는 사회적 미의 기준에 따라 이미지가 주어졌고, 콩트에 ‘미녀’ 캐릭터가 필요할 때, 또는 ‘추녀’ 캐릭터가 필요할 때 투입되었던 것이다.

 

“너구나”라는 세 글자는 당시의 개그우먼들이 처했던 상황,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외적인 이미지가 아닌 자신의 능력을 표출할 기회가 부재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때 개그우먼들은, ‘대중을 어떻게 웃길 것인가’하는 고민은 물론이고 남성 중심의 방송계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생존할 것인가 하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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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의 ‘개그우먼’은 어떤가. 박나래, 장도연, 송은이, 김숙, 안영미, 김신영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개그우먼이라는 말로 표현하기 모자라다고 느껴질 정도로 다방면에서 각자의 능력을 뽐내고 있다. 그것도 누군가 정해준 이미지가 아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은 <밥블레스유>, <박장데소>, <라디오스타>, <나혼자산다>, <구해줘홈즈>, <전지적참견시점> 등에서 MC로 활약하며 프로그램의 주축이 되고 있다. MC뿐만이 아니다. ‘셀럽 파이브’는 여타 아이돌 뺨치는 화려한 실력으로 연말 무대에까지 섰으며 김신영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노래 실력으로 화제를 끈 부캐 ‘둘째 이모 김다비’의 <주라 주라> 뮤직비디오는 조회수 286만을 기록했다.

 

더 놀라운 점은 새로운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예능의 플랫폼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 시작은 송은이와 김숙의 팟캐스트였다. 방송국이 이들을 불러주지 않아서 직접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는 점은 씁쓸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발견’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가고, 새로운 플랫폼을 시도하고, 컨텐츠를 제작하며 대중을 ‘부른’ 것이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대중화된 지금, 유튜브에 특화된 컨텐츠를 제작하는 개그우먼들도 많다.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 <밥블레스유>, <판벌려> 등의 영상이 업로드 되는 <비보티비>는 물론이고 김숙의 <김숙티비>, 박미선의 <미선임파서블>, 김민경의 <민경장군>,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 등 다양한 채널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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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특징과 대중의 수요에 맞게 길이가 짧고 빠른 템포로 편집된 영상, 또는 유튜브에서 생겨난 장르인 ‘먹방’과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등에 도전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수요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영상을 제작하면서도 개그우먼만이 할 수 있는 시도를 한다는 점이 이들의 강점이다. 최근의 한 사례를 들자면,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에 업로드 되는 asmr 시리즈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다.

 

‘도를 아십니까 asmr’, ‘makeup shop 개념부족막내 asmr’ 등 특정 유형의 말투와 행동, 표정을 섬세하게 캐치하고 그것을 asmr이라는 컨텐츠로 녹여낸 강유미의 신개념 asmr은 ‘자려고 들었는데 웃겨서 잠을 못 잔다’는 댓글들이 달릴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15년 전 개그콘서트 GOGO예술속으로에서 선보였던 디테일한 관찰력과 연기력에 기반한 개그를 새로운 유형의 컨텐츠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이다.

 

오랜 세월 일요일 밤을 책임졌던 <개그콘서트>가 20여 년 만에 막을 내린 것은 씁쓸하면서도, 앞으로 열릴 개그의 새로운 장을 기대하게 한다. 개그우먼들은 이미 그 새로운 장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더 큰 무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에서 김지민은 신인 시절 ‘비호감’ 이미지로 고민하는 박나래에게 ‘시대가 너를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야’라고 말했던 기억을 회상한다. 그랬던 박나래는 2019년 MBC 연예 대상을 수상했고, 온갖 방송국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하고 있다. 김숙의 표현대로 개그우먼들은 ‘시대를 바꿨’고, 이제 대중은 그들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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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개그우먼을 정의한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이들은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각자의 능력을 뽐내며 활동하고 있다. 대표, 기획자, MC, 예능인, 유튜버… 한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도전하며 웃음을 준다는 것이다. 시대를 바꾼, 바꾸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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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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