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반도는 아직 선조들의 피가 마르지 않았다 [도서]

글 입력 2020.07.0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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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jpg

<신친일파> 호사카 유지 지음, 봄이아트북스 펴냄

 

 

대한민국 역사에서 일본은 항상 빠지지 않는다. 일본의 오래된 역사서 『일본서기』만 봐도 일본과 한국은 삼국시대부터 밀접한 관계를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 더불어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우며, 동북아시아의 강대국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현재는 부유하지만, 이런 일본도 한때 가난했다. 바로 1939년에 발발한 ‘세계 2차 대전’의 여파 때문이다. 추축국 중 하나였으나, 전쟁에 패망하여 일본 국민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매디슨 프로젝트 데이터베이스(Madison Project Database, 2011)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전 일본의 GDP는 약 3,370억 불이었고, 2차 세계대전 후 GDP는 1,609억 불로 추정했다.

 

하지만 한국의 크나큰 아픔 6·25전쟁을 기반으로 경제성장 한것 또한, ‘일본’이다.

 

맥아더 전기 제3권, 승리와 재앙(D. 클레이턴 제임스 저, 1985)의 ‘일본에 끼친 한국전쟁의 영향’을 살펴보면, 한국전쟁 때 일본이 유엔군의 병기창 역할을 했다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유엔 연합군이 무기와 장비 그리고 한국인들을 위한 구호물자를 일본에서 샀으며, 일본의 GDP는 불과 10년도 안 돼서 1956년 약 4,000억 불로 증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2차 대전으로 사이가 좋지 않던 미국과 유엔 연합국과 경제적, 군사적 등에서 많은 이득을 취했다.

 

 

개인의 언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역사 왜곡 행위는 막아야 한다. 이우연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역사를 왜곡하는 글과 동영상을 서슴지 않고 발표해왔다.

 

- 본문 p.323

 

  

 

왜 이 책의 제목이 ‘신친일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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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반일 종족주의』 ⓒ이승만학당

 

 

신친일파는 『반일 종족주의』를 쓴 저자들을 향해 비판과 반박을 담은 책이다. 『반일 종족주의』를 잠깐 설명하자면, 반한·혐한을 외치는 일본 극우세력의 의견을 그대로 차용하여 쓴 책이라 할 수 있었다. 책 내용 대부분이 일본 극우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일본 극우파가 가장 밀고 있는 주장은 ‘평화 헌법’ 개정과 폐지이다. 평화 헌법은 세계 2차 대전 후, 일본이 1946년 11월 제정한 헌법이었다. 평화 헌법 9조에는 “일본은 모든 종류의 전쟁을 부인하며, 육·해·공군을 비롯한 그 어떠한 군사전력도 가지지 않는다. 또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가 명시되어 있다.


일본의 극우파는 이 헌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극우뿐 아니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자민당도 “평화 헌법은 자국민의 의지로 만든 것이 아닌 점령국인 미국의 강요로 만들어진 헌법”이라며 개헌 및 폐지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뉴라이트’라는 집단에 속해있으며,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을 더 옹호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를 일본에도 출판해 ‘한국의 양심 있는 지식인’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하는 이유 


 

신친일파는 조선인이 탄광에서 강제 징용으로 일하게 된 배경부터 설명하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미케이 탄광’은 현재에는 폐광되었으나, 18세기에 일본 정부 관영 탄광이 되면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들에게 광부는 천시 받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여겨져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은 전시 동원 체제로 조선과 중국의 사람들을 연행해 탄광에 투입시켰다. ‘죄수 노동’이라는 명목이었다.


이 외에도 신친일파는 『반일 종족주의』의 위안부와 친일청산에 대한 반박과 독도 등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얽힌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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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저자이자, 한일관계전문가 호사카 유지 ⓒ코리아넷뉴스

 

 

저자 ‘호사카 유지’는 한일 관계 전문가로 활동하며 『독도, 1500년의 역사』, 『호사카 유지의 일본 뒤집기』,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등을 집필했다. 그는 재한 일본인이었다가 지금은 귀화하여, 일본계 한국인이 되었다. 지금은 세종대 대양 휴머니티 칼리지 교수 및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필자는 이번 서평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다, 지난 2일 서울대 대나무 숲에 올라온 글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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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었다. 그리고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날이기도 하다. 약 한달 뒤면, 8월 15일이 다가온다.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무엇을 바라나? 


 

최근에도 일본의 군함도 관련 논란이 있었다. 2015년, 일본이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약속했던 ‘조선인 강제 노역’에 대한 설명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23일, 한국 정부는 유네스코에 “군함도와 일본 23곳의 근대산업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재고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처럼 한·일간의 문제가 ‘아직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는 『반일 종족주의』의 내용을 경계해야 한다. 무작정 맹신하게 된다면, 앞서 보여 주었던 '서울대 대나무 숲'의 사례처럼 반응하는 사람이 또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의 저자는 『반일 종족주의』를 읽는 독자가 ‘ 이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까?’ 하고 우려를 표한다. 조금만 대충 훑어보거나 역사에 대해 깊이 잘 알지 못한다면,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 논리에 설득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 후 모든 것이 폐허였다. 피해도 심각했다. 국가기록원은 전쟁 직후 양측의 군인 사망자 160만, 민간인 사망자(대한민국 만) 99만, 전쟁고아 10만, 이산가족은 수백만일 것이라고 집계했다. 경제 규모 120개국에서 119위를 할 정도로 1950~60년대의 ‘남한’은, 전쟁이 끝난 뒤의 ‘북한’보다도 못 살았다.


1960년대의 '남한'은 무너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수출주도형 산업’을 계획하고, 독일과 ‘한·독 근로자 채용 협정’을 맺어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였다. 그렇게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서 열심히 일하여 보낸 외화들은 대한민국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일궈낸 눈물겨운 경제 성장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일본 우익 언론은 “일본이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라고 말한다.


한반도에서 선조들이 피를 흘린 지 불과 70년 밖에 되지 않았다.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아직도 한반도에는 선조들의 피가 마르지 않았다. 여전히 3·8선이 그어진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대한민국이 아직, ‘전시 국가(戰時國家)’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려운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눈이 절실히 필요하다. 본서가 올바른 세상과 밝은 미래를 꿈꾸는 모든 분들께 미약하나마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이다.

 

- 본문 p.323

 

 



[박신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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