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날것의 생각' / 날것의 생각

생각은 날고기와 비슷하다.
글 입력 2020.07.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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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의 생각' / 날것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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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시작하는 날것의 생각

 

 

생각은 날것이다. '날것'이란, ‘말리거나 익히거나 가공하지 아니한 고기, 채소 따위’를 일컫는다. 생각은 음식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과 익히지 않은 날것은 비슷한 성질을 지녔다. 이들의 공통점을 설명하기에 앞서 날것인 날고기의 특징을 먼저 설명해야겠다.


날고기는 변화의 중간이다. 들판의 소가 식탁의 오르는 과정에서, 날고기는 생명과 음식 사이에 있다. 사람들은 고기를 얻기 위해 들판의 소를 도축한다. 숨이 턱 끊어진 소는 생명을 잃고 고깃덩어리가 된다. 생명을 잃어버린 직후, 소는 가축이 아닌 날것이 된다.

 

하지만 날고기는 음식이 아니다. 육회로 먹을 수 있지만, 일반적인 음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소회가 용이하게 영양소를 섭취해야 한다는 점에서 하지만 날고기는 효율적인 영양소 확보가 어렵고, 익히거나 가공해야만 맛과 영양소를 확보할 수 있다.

 

날고기는 가축도, 음식도 아닌 상태로 존재한다.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소의 근육과 날고기의 조직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날고기는 생명이 끊어졌기 때문에 가축이 될 수 없다. 동시에 날고기는 음식이 될 수 없다. 음식이 요구하는 맛과 영양소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날것은 변화의 중간,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 놓여있다.

 

생각도 비슷하다. 생각은 인간의 활동에서 입력과 출력 사이에 존재한다. 인간의 사고 활동은 외부의 자극, 내부의 생각, 외부로의 표현으로 구성된다. 시각, 청각의 자극이 주어지고, 감각을 통해 우리의 뇌로 전달된다. 생각은 주어진 감각을 해석하며, 해석된 감각은 출력기관을 통해 외부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뉴스를 읽고 댓글을 쓰는 과정을 가정해보자. 뉴스의 정보는 외부의 자극이다. 활자로 기록된 정보는 시각을 통해 입력되며, 시각은 활자의 모양을 뇌로 전달한다. 뇌는 입력된 활자의 모양에서 정보를 골라낸다. 뇌에서는 정보를 해석하며 '생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생각은 개인적인 의견 따위의 표현으로 가공된다. 마지막으로, 가공된 표현은 손을 통해 활자로 출력된다. 여기까지가 인간의 사고 활동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생각은 날것으로 존재한다. 생각은 입력된 정보도 아니며, 출력될 수 있는 표현도 아니다. 사고의 내부에 숨겨져 있어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날것의 상태다.

 

생각과 날고기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생각은 날고기처럼 예민하다. 날고기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변질되기 쉽다. 날고기는 수분 함량이 높기 때문에 세균이 번식하기 쉽고, 유통기한이 짧다. 그래서 외부 환경을 잘 관리해주지 않으면 금방 상해버린다. 또한, 날고기는 보관 기간이 길어질수록 육질이 나빠진다. 가능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조리하거나 가공해야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생각은 외부의 자극에 쉽게 변해버린다. 예를 들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시오'라는 문장을 보면, 반사적으로 코끼리를 연상할 수밖에 없다. 쿡 찌르면 바로 반응하는 것이 생각이다. 또한, 생각은 오래될수록 썩기 쉬워진다. 과거에 머무른 생각일수록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날것은 표현에 따라 달라진다. 날고기는 가열해도 물로 익히고, 기름으로 튀기고, 증기로 쪄 먹을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의 차이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날것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할 수 있고, 표현하기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날것의 생각은 다루기에 따라 예술이 될 수도, 철학이 될 수도, 장난이 될 수도 있다. 머릿속 생각이라고 무심코 방치하다가는, 빌린 입으로 말하는 것만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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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Y2eon
    • 사람의 머릿속은 필연적으로 날것으로 가득찰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정제되지 않은 생각의 형태로요. 그래서 더욱 어지럽고, 통제하기 힘든 게 우리의 내면적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경우는 성인이 되면서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던 것 같아요. 생각의 갈래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 학문을 공부해서 더 그런 것 같은데, 긍정적인 변화일지는 잘 모르겠어요. 김용준 님은 어떨 때 저런 날것의 생각들이 특히 제어하기 힘든지 문득 궁금해지곤 했습니다.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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