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화예술지원, 토마토를 얻으려면 흙과 양분이 필요해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6.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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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감염병인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한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손세정제 사용으로 갈라진 손끝은 익숙해졌고 거리에서, 버스 안에서, 심지어는 방송에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정상’으로 보인다. 모두가 이 새로운 ‘뉴노멀(New normal)'에 적응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어떨까? 문화예술계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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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은 꾸준히 논의되어온 주제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분야중 하나인 만큼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고 있다. 여기에 문화예술 공적 지원을 강화하고자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더해져 최근 예술 공론장, 간담회에서 이 문제는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고 있다.


예술가들의 입장에서 예술 지원은 당연히 필요한 복지이자 권리이다. 예술 외적인 사회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불안정한 기반 위에서 그 비상한 열정을 포기한 채 스러지는 문화예술가가 어디 한둘일까. 예술 지원은 이 불안정한 기반을 붙들어준다.


문화예술가의 입장에서 예술 지원의 당위성은 이렇듯 자명하다. 그렇다면 문화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어떠할까? 나는 문화수용자의 입장에서 문화예술 지원이 왜 필요한지 생각해보았다. 계기는 역시, 코로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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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지원의 파도 문화수용자에게까지 밀려온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시, 공연, 축제 너나 할 거 없이 줄지어 취소가 되고 영화관조차 침체기를 겪고 있다. 예매를 해놓고도 잠정연기, 취소로 인해 환불받은 티켓이 몇 개인지 세어 보기도 마음이 아프다. 타의적으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없는 삶은 생기가 없고 삭막했다. 바로 이 지점이다. 지원 제도 없이 사회 위기에 맨몸으로 노출된 문화예술은 그 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 되고 이 여파는 문화수용자, 일반 대중에게도 밀려온다. 일반 시민, 대중들의 문화향유 권리를 보장하고 그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 문화예술 지원은 필요하다.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는 왜 중요할까? 문화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전개되는 정부의 ‘문화비전 2030’은 시민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를 강조한다. 그 배경 중 하나는 ‘창의 인재 양성’이다. 문화예술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마음속의 무언가를 불러일으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예술로서의 창의성뿐만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게끔 한다. 창의성은 저성장 시대에 돌입한 현재 사회에서 중요한 혁신 성장 동력으로 여겨진다.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첨단기술과 문화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창의인재인 ‘창조계급(Creative class)'를 탈산업사회의 핵심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일반 대중들이 문화예술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더욱 쉽게 닿을 수 있도록 문화예술을 장려한다.

 

 

 

치유의 문화예술



하지만 무엇보다 문화예술은 사람들을 치유한다. 문화예술을 통해 수용자들은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말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해하고, 때로는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여 교감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정체성을 확립하며, 때로는 행동력을 갖게 되기도 한다. 특히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문화예술은 감정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개인을 사회와 연결하며 지난 사건을 되돌아보고 문제를 짚어내 반성하거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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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역사 속에서 국가 위기 상황에 문화예술이 꽃 피운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대 1억명 가량의 사망자를 남긴 무서운 질병이었던 스페인 독감을 이겨낸 뭉크는 자신의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을 보여주었고,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좌절과 공포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이야기했다. 끔찍했던 세월호 사고 이후에 여러 가수들의 노래는 사람들 마음속의 무력감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과 각오를 노래했다. 현재 코로나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집에서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를 감상하며 코로나가 사라지고 다시 밖으로 나가 활기차게 교류할 세상을 기대한다. 나는 JTBC의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에서 코로나 시대의 문화예술 향유 모습을 보여주며 모두가 입을 모아 코로나가 사라진 뒤 스스럼없이 만날 그 날을 노래하는 모습에서 지속된 위기 상황으로 인한 답답함과 두려움, 무력감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분명 많은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문화예술 지원은 예술가로 하여금 지속적인 예술활동을 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대중들의 문화향유 기회 보장, 확대로 이어진다. 문화예술 수용자로서 나는 이것을 바란다. 우리는 모두 문화예술과 함께 살아가야한다. 결과만을 바랄 수는 없다. 토마토가 먹고 싶어 토마토 나무를 키우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탓할 수는 없다. 열매를 키워낼 수 있는 훍과 양분을 주어야한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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