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영화]

글 입력 2020.06.2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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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짜릿한 자동차 액션과 충격적인 스턴트로 마니아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영화 ‘매드 맥스’가 최근 재개봉했다.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다. 한쪽 팔에 의수를 한 전사 ‘퓨리오사’, 바이크를 타고 싸우는 부발리니 족, 독재자가 휘두르는 가부장적 권력에 맞서는 다섯 아내들까지 모든 인물이 액션 장르 속 여성 캐릭터의 클리셰를 벗어던진 모습이다. 게다가 영화의 서사 역시 이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가부장 체제를 전복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접적으로 여성주의적 가치를 내세우는듯한 이 영화를 두고 당시 꽤 많은 논란, 논쟁이 있었다. 조지 밀러가 페미니스트인가?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인가? 거의 퓨리오사가 다 끌고 가는데 왜 제목이 매드 맥스인가? ‘매드 맥스’가 잘 만들어진 액션 영화일 뿐인지, 아니면 정말 여성 인권을 핵심적인 가치 체계로 삼은 진정한 여성주의 영화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인공 찾기


 

‘매드 맥스’를 다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맥스가 주인공이야, 아니면 퓨리오사가 주인공이야?’ 분명 제목은 매드 맥스인데, 멋진 건 퓨리오사가 다한다. 어둠 속에서 달려오는 저격수의 눈을 총알 한 방으로 멀게 하고, 독재자 임모탄을 끝장내고, 운전도 기가 막히게 한다. 분명 퓨리오사는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설정에 따르면 퓨리오사는 어릴 때 시타델로 끌려온 ‘브리더’였으나, 불임 판정을 받고 내쳐진 뒤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사령관이다. 이런 배경을 생각해볼 때, 퓨리오사가 혼자 도망치는 대신 임모탄으로부터 착취당하던 다섯 아내와 함께 탈출하기로 한 것은 그 행동에 생존을 넘어선 더 심층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매드 맥스’는 상당히 직접적으로 퓨리오사의 심층적인 욕구를 드러내는데, 맥스가 왜 여성들을 데리고 녹색의 땅으로 가냐고 묻자 퓨리오사는 ‘구원(Redemption)’이라고 답한다. 이것은 단순히 고통받는 여성들, 혹은 시타델 사회구조를 두고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퓨리오사가 시타델 사회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축적된 죄의식을 나타내는 말이다. 퓨리오사에게 자신이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죽여야 했던 이들에 대해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임모탄의 아내들과 함께 탈출한 것이다. 자기 구원이라는 퓨리오사의 소망은 결국 퓨리오사가 혼자서 낙원을 찾아 도망치는 대신 억압된 시타델 사회 전체를 해방하기로 한 그 순간 완성된다.

 

그렇다면 맥스의 내면과 행동은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퓨리오사가 시타델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이들을 짓밟고 버려야 했던 것처럼 혼자 황무지를 떠도는 맥스에게 남을 신경 쓸 여력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사고로 아내와 딸, 친구까지 잃고 난 뒤 맥스가 계속해서 환영에 시달려왔다는 설정은 결국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의식과 그들을 도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맥스의 내면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자원이 점점 더 고갈되어가는 황폐한 지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유로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던 맥스는 퓨리오사 일행을 만나 그들과 연대감을 쌓기 시작하면서 더는 환영을 보지 않게 된다.

 

애초에 맥스가 퓨리오사를 만나게 된 것은 우연 때문이었고,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퓨리오사의 편에 서서 싸운 맥스의 행동이 확실히 그들을 돕겠다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당장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협력한 것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임모탄의 추격을 어느 정도 따돌린 상태에서 혼자 길을 떠날 수 있었던 맥스가 퓨리오사를 설득하여 시타델로 방향을 돌리는 장면, 그리고 임모탄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퓨리오사 일행을 목숨을 걸고 돕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맥스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이타성으로 이들을 도우려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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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맥스가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기적으로 살았던 것처럼 퓨리오사는 임모탄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잔인해져야 했던 것이고, 퓨리오사와 맥스 모두 남들에게 이타심을 베푸는 과정에서 죄의식으로부터의 해방과 인간성의 회복을 경험한다. 퓨리오사의 등장으로 맥스는 해방을 얻었고, 퓨리오사는 맥스의 도움을 받아 구원을 받는다. 두 사람의 서사는 매우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흐름 상 퓨리오사가 먼저 타인을 도우려 했고(위험을 감수하고 다섯 아내들을 데려옴), 이후 퓨리오사를 만난 맥스가 이타심, 인간성을 회복하여 내면적 성장을 이룬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결국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맥스라고 할 수 있다. 퓨리오사의 서사는 더 심층적인 의미를 지니는 맥스의 서사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타심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인물들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공간을 통해 ‘매드 맥스’는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끊임없이 대비시킨다. 임모탄 조의 무시무시한 마스크와 좀비처럼 보이는 워보이들, 혈색 있는 부발리니 족의 얼굴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다섯 아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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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비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장치는 도르래이다. 임모탄이 머무는 절벽 꼭대기와 메마른 땅바닥을 연결하는 수직 도르래는 시타델의 대중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물을 조금이라도 얻으려고 위로 향하는 도르래에 매달리면 임모탄의 부하들은 그들을 가차 없이 밀어내고 떨어트린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퓨리오사와 다섯 아내들은 도르래 위로 모든 사람을 끌어올린다. 스플렌디드가 죽었는데도 그저 자기 아들이 태어나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임모탄은 연대나 인간다움과 대비되는 캐릭터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심한 상처를 입은 와중에도 맥스를 차 밖으로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고통을 참아낸 퓨리오사는 맥스의 피를 수혈  받고 결국 다시 살아난다. 즉 이 영화는 생명과 죽음, 물과 메마름 등을 끊임없이 대비시키며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숨을 쉰다고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살아간다는 사실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며, 순수한 이타심과 연대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결국, 페미니즘


 

퓨리오사는 분명 새로운 캐릭터이다. 몇몇 장면에서는 영화의 주인공보다도 월등한 모습을 보여주고 액션 영화에 등장하던 여성 캐릭터의 특징들을 과감하게 벗어던졌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적인 주체임은 확실하다. 또한 이야기 자체가 남성 체제의 전복이라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종합해서 볼 때 ‘매드 맥스’에는 분명 페미니즘적 의의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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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해당 영화가 대단한 여성주의 영화여서가 아니라, 도구화된 인간이 어떻게 삶을 되찾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는 ‘논란’에 휩싸인 것은 당연하게도 페미니즘의 본질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도구나 물건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라는 외침, 개인을 소유하고 착취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 페미니즘은 대단한 게 아니라, 다만 인간답게 살자는 외침이다.

 

 

[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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