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끼리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영화]

'백년해로외전' - 떠난 사람의 기억 속에서
글 입력 2020.06.2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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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갑작스러운 상실에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기분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자신 앞에 벌어진 일을 결코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곤,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슬퍼하다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에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떠난 사람을 놓아주고, 이전처럼 삶을 살아간다. 여기, 갑작스러운 사고로 삶의 끝을 마주한 한 여자의 마지막 기억과 그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강진아 감독의 단편 '백년해로외전(2009)'이다.

 

   

백년해로외전 / Be With Me, 2009

감독 : 강진아 / 출연 : 이종필, 한예리

 

 

[포맷변환][크기변환]백년해로외전 스틸컷.jpg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던 ‘차경’과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혁근’의 전화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후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함께 바다에 있는 장면으로 바뀐다. 두 사람은 짓궂은 장난을 치며 모래 해변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하더니, ‘혁근’을 모래로 묻어버리고는 이내 줄지어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는 ‘차경’. 그를 잡지 못하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는 ‘혁근’의 모습이 보인다. 이미 이상하게 줄지어 차례로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현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두운 밤 집으로 향하는 ‘차경’의 자전거, 골목에 들어선 자전거 앞으로 다가오는 차의 전조등 불빛, 이후의 사고 음성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차경’의 모습 그리고 떠나는 연인을 붙잡을 수 없는 ‘혁근’의 모습은 ‘차경’이 죽었음을 뜻하는 단서들이었다.

 

 

[포맷변환][크기변환]백년해로외전 스틸컷1.jpg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혁근’의 일상은 무너지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연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에 대한 상실에도 살아있는 사람은 여전히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영화에서는 ‘혁근’이 연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다소 신선한 각도로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담겨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떠날 때 즐거운 기억만을 가지고 떠나주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차경’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기억을 가진 채 떠나려 한다. 그 속에는 가족도 있었고 연인이었던 ‘혁근’도 있었다. 행복했던 기억만을 가지고 그녀는 다음 생에는 코끼리가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짧다면 짧았을 생을 스쳐 지나간다. 이처럼 떠난 사람의 마지막 기억을 볼 수 있다면, 그 기억 속에 내가 있다면 그 사람이 주는 마지막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아닐까.

 

 

[곽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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