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괜찮다 괜찮다하면, 결국 고장난다 [사람]

5년만에 내가 대면한 '슬픔이'
글 입력 2020.06.17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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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노윤호다.


 

항상 열정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내 자신을 좋아했고, 뭔가를 해내고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렇게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올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꼭 썼다. 그 일 년의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서 달이 바뀔 때마다 그 달에 이뤄야하는 목표와 계획을 짜는 시간을 보냈다. 6월이 된 지금, 나의 노트북 화면 안에는 2020년 목표와 그 달에 내가 이뤄야하는 목표가 정리된 파일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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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한 마디로 나는 유노윤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목표 중 하나는 아흔 살이 되어도 열정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평소의 나는 에너지가 넘친다, 열정적이다 라는 말을 들으면 더더욱 신나서, 무엇인가를 이뤄보려고 매달렸다.

 

그런데 6월에 접어들자 나에게 변화가 생겼다.

 

나는 약이 다 떨어진 시계태엽처럼, 뭔가를 해내려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무기력하고, 원인을 알 수 없게 계속해서 슬펐다.

 



어느 순간 찾아온 슬픔과 무기력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설명하려면 일단 그 전에 올해 5월이 나에게 어땠는지 설명을 해야 한다. 2020년 오월은 나에게 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너무 바빴다.’

 

매일, 하루를 꼬박 바쳐 해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해낼 때마다 성취감이 있으면 좋을 텐데, 오월 초부터 오월 말까지 해야 할 일들이 날 기다려서 그런 여유로운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러자 오월 내내 너무 큰 스트레스를 오랜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그 많은 일들을 그래도 끝내고 숨 쉴 틈이 생긴 6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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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6월 달이 되었으니, 5월엔 과제에 치여서 못 한 일들을 6월의 목표로 적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평상시와 다르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결국 그 때는 목표를 쓰기 위한 한글 파일창을 열 수 없었다. 무기력함을 느끼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헛구역질이 올라오자 나는 당황했다.

 

내가 왜 이러지?

 

일단 새로운 목표 세우기는 그만두고, 그 뒤로 해야 할 소소한 과제를 하는데 전만큼 능률이 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우울에 잠겨 있었다. 그 기분은 마치 가슴께까지 차가운 물이 가득 차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만 슬픈 뉴스를 보아도 눈물이 주륵주륵 났다. 평상시에는 그저 펑펑 울고싶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이런 적이 없던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슬픈 감정을 느낄 때는, 그 감정을 유발시키는 사건이 분명 존재했다. 그러면 슬픈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사건을 해결하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힘들었던 5월이 지나간 상태였는데도, 한 마디로 말해서 원인이 없었는데도 무기력함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감정을 친구에게 토로했는데, 그 말을 듣고 친구가 이런 답변을 해주었다.

 

 
일단은 그 슬픔에 푹 젖어 지내 보는 건 어떨까? 슬픈 감정도 귀한 거니까.
 


슬픈 감정도 귀한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한 영화가 있었다. 바로 <인사이드 아웃>이었다. 나는 과제를 하다가 어차피 집중도 안 되는데, 이미 본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한번 다시 봐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카페 안에서 영화를 틀었다.

 

인사이드 아웃은 개봉하자마자 본 영화였다. 처음 봤을 때 나는 슬픔이라는 캐릭터에 잘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이입하는 캐릭터는 조이였기에 그랬다. 어떻게든 열심히 해보려는 명랑한 조이의 계획을 슬픔이가 다 망치는 것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짜증이 났다. 그래서였는지 그때에는 라일리가 부모님의 품에 안겨 우는 마지막 장면도 나에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5년 만에야 내가 마주한 슬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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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리는 자신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고

부모님 품에 안겨 그 감정을 인정 받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라일리의 감정구슬이 조이의 노란빛과 슬픔이의 푸른빛이 섞여 있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장면까지 펑펑 울었다. 마스크를 썼으니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잘 안 보였을 거라는 사실을 그나마 위안 삼으며, 카페 안에서 주륵주륵 눈물을 쏟았다. 라일리를 따라 슬퍼하면서 나는 이 슬픔의 원인을 대면할 수 있었다.

 

나 힘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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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슬플 때가 필요하다.

 

 

계속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건, 내가 내 상태를 인정해주지 않아서였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지쳐있는 상태인데 그걸 무시하고 여전히 뭔가를 해내려고 하니까 또 다른 내가 슬퍼하고 있는 거였다. 그렇게 내 상태를 받아들인 뒤 절묘하게도 SNS에서 더욱 내 마음에 꽂히는 글을 읽었다.

 

 
‘왜 자꾸 생산성이 있는 일을 하라고 하지. 인간은 생산성이 있는 일만 하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상상력도 빈약해져요. 목적 없는 일을 즐기세요. 인간의 시간을 토막내서 효율적으로 쓰라는 것은 신자유적인 자기착취일 뿐입니다. 인간은 생산성에 종속되어 사는 사명을 달고 태어나지 않았어요.’
 

 

사람은 항상 생산성 있을 수 없는데, 나는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내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뒤로 또 며칠 뒤 우연히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유노윤호 편을 보게 되었다. 내 상태를 받아들인 뒤 그 편을 보자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 편에서 유노윤호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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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가 온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고, 항상 긴장을 하는 사람은 그만큼 진심이기 때문이다.
 

 

유노윤호도 사람인데 어떻게 매번 열정적일 수 있겠는가. 그도 분명 슬럼프가 온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슬럼프가 왔을 때 ‘왜 전처럼 못해!’하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 한 게 아닌 거다.

 

그는 슬럼프가 왔을 때, 그만큼 자신이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한 것이라 인정해주는 자기 긍정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유노윤호가 어떻게 저렇게 오래도록 열정적일 수 있는지 이유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채찍질이 원동력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인정해주고 긍정해주었기에 가능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자는 잠 말고 '낮잠'


 

그렇게 내 상태를 인정해 준 뒤로도 나의 우울함은 한동안 나와 함께 계속 있었다. 나는 원래는 집에서 해야 할 일을 하면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매일 카페를 갔다. 그런데 저렇게 우울에 잠겨있는 기간 동안 카페를 유독 가기 싫은 날이 있었다. 얼마나 가기 싫었는지 카페를 갈 준비를 하다가 그냥 벌러덩 거실 소파에 누워버렸다.

 

얇은 여름 이불을 덮은 채로 나는 멍하니 거실 한가운데 쏟아지는 햇살을 보았다. 베란다 창 너머로 햇살에 반짝이는 푸르른 나뭇잎들이 보였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밝다...
 

 

당연히 밝을 수밖에 없었다. 해가 높다랗게 떠있는 오후였으니까. 나는 내 주변이 훤하다는, 그 당연한 사실에 위로를 받으며 눈을 감았다. 밝을 때 이렇게 누워서 눈을 감아본 적이 까마득했다.

 

오랜만에 나는 그대로 거실 소파에 누워서 오래오래, 푹 낮잠을 잤다.

 

 

 

전문필진 박해윤.jpg

 




[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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