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프랑스가 낳은 두 음악가 : 함신익과 심포니송 마스터즈 II - 프랑스 로맨틱 음악의 향연

글 입력 2020.06.0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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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신익과 심포니송 마스터즈 시리즈 II

프랑스 로맨틱 음악의 향연




심포니 송의 예술감독 함신익의 리더십은 한국의 대전시향, KBS교향악단 및 미국 유수의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거쳐 유럽, 남미 등 다양한 오케스트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예일대 지휘과 교수로23년 넘게 교육현장에서 봉직하였다.

 

지휘자 함신익은 민간 주도로 운영되는 미국의 다양한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 경력을 쌓아왔다. 또한 오랜 전통을 지닌 유럽과 남미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모국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다짐한다. 이후, 대한민국의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의 경험을 통해 후세를 위한 새로운 오케스트라의 필요성을 느끼고 오랜 준비를 거쳐 [Symphony Orchestra for the Next Generation]의 첫 자를 딴 [S.O.N.G], <함신익과 심포니 송>을 창단한다. 함신익이 직접 책임을 지고 이끌어 간다는 신념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피아노 박종해 / 소프라노 양지영 / 바리톤 공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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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생상스와 포레 그리고 프랑스



1835년 생의 카미유 생상스. 1845년 생의 가브리엘 포레. 두 음악가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고, 마들렌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였고, 다양한 분야의 작곡에 능했으며, 파리 음악원에서 지도자로서 봉사하고, 생을 마감한 후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또한 두 사람은 가족을 잃거나, 신체의 기능을 잃는 등 상실감에 빠져 슬퍼했으나, 그것도 잠시 우울을 딛고 일어서는 소재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사용했다.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의 열정과 의자로 음악적 고유성을 지켜내고 쓰디쓴 운명에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음악이 주는 힘과 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낸 프랑스 클래식 음악계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이후 카미유 생상스와 가브리엘 포레가 평행이론적 삶을 산다고 말하며, 두 프랑스 출신 거장의 음악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나는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시작해서 결국은 좋은 친구가 된 것, 고전주의에 대한 이야기에 끊임없이 열광한 것, 조국의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국민음악 협회를 발족한 행동들이 프랑스 음악 역사의 한 획을 그으며 지금의 깔끔하고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후학을 양성해내며 라벨이나 드뷔시, 에릭사티등의 인재를 발굴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생상스의 고전주의를 이어받아, 포레의 서정적 낭만주의로 이어지고, 그의 영향을 받아 라벨과 드비쉬의 인상주의적이고 판타지스러운 음악적 색채가 발현되고, 결국은 에릭사티같은 요염한 재즈풍의 클래식으로- 그렇게 근대 프랑스 음악은 발전해 온 것이다.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 이후로 피로 물든 프랑스의 100년의 역사가 이어지며, 이웃나라에 비해 음악사의 공백이 길었지만,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색채와 혁명의 불꽃으로 피어낸 지금의 음악적 스타일을 두 사람은 꽤나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평소 공연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생상스와 포레의 음악을 접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평소 프랑스 작곡가들에 대한 호기심과 학구열을 갖고 있었기에, 기회삼아 공연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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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프로그램



가브리엘 포레 : 파반느 올림바단조, 작품번호 50

 



그는 애어른이었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본다. 당대 사조였던 낭만주의를 스스로 절제하며 고전주의의 미와 보수적이고 단아한 선율을 추구했던 그의 실내악 작품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와인을 들고 얼굴이 발그레 해진 채 자유를 만끽했을 것 같은 당대 프랑스 젊은이들과는 달리,  쇠락한 귀족가문 출신인 포레는 목 끝까지 단추를 걸어 잠그고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스프를 떠 마시며 머릿속으로는 악상을 그려냈을 것 같은 이미지이다.


비음악가 집안에서 유일한 재능을 가진 막내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아마 약간의 나르시즘을 가진, 종교에는 회의적이지만 과거의 찬란함과 자신의 신분에 영광을 떠올리는 젊은이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 곡이 태어난게 아닐까 싶다. 포레의 파반느 올림바단조 작품번호 50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작품이다. 6분이 조금 넘는 짧은 작품이지만, 그 안에 담긴 서사와 선율은 완벽하다. 궁정무곡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우아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곡은, 느린 2박 계통의 차분함이 특징이다. 마치 그가 곁눈질로 다른 귀족들을 관찰하며 써내려갔을 것만 같은 곡이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당대 젊은이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카미유 생상스 : 피아노 협주곡 5번 바장조, 작품번호 103 "이집트"

 

 


프로그램 셋리스트를 먼저 보았지만, 일부러 미리 듣고 가지 않은 곡이기도 하다. 아라비안 풍의 클래식은 어떤 느낌일까, 당시 고전주의의 색채를 띈 생상스가 상상해낸 이집트는 어떤 느낌일까.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그것과 21세기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이집트의 느낌은 같은 것일까 상상하면서 말이다.


이 곡에서는 피아니스트 박종해가 등장하여 화려한 기교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앳된 얼굴의 그는 등장과 동시에 화려한 손기술로 건반의 한 음 한 음을 정교히 짚어나갔다. 머나먼 관객석에서 그의 손을 보았을 때는 사실 절도있는 테크닉을 위주로 연주할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역시 나는 아직 멀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오히려 힘있고 묵직하지만 정확하고 빠른 연주를 해나가는 그의 손을 보면서 나는 오랜만에 오케스트라 협주를 보며 눈이 즐겁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공연장의 무드를 잡고 소울을 풍기는 모습마저 프로다웠다.


이 곡은 생상스가 슬하의 두 아들을 잃고난 후 치유를 위해 떠난 세계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곡이라고 한다. 그는 아프리카의 알제리와 이집트에 푹빠져 추운 겨울마다 방문하곤 했었는데, 그 당시 이집트 룩소르에서의 기억들을 곡의 형태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가 유일하게 부제를 붙인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집트를 향해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항해를 묘사하는 곡'이다.



가브리엘 포레 : 진혼곡 라단조, 작품번호 48

 

 


개인적으로 레퀴엠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죽은 자를 달래는 진혼곡이라니. 나처럼 감성적인 사람에게는 죽은 이를 향한 고결한 예술적 행위로 느껴져서 그 웅장함과 장엄함이 담긴 단어에 애착을 느끼곤 할테다.


귀족으로서의 품격이 중요했던 포레. 그는 1887년 파반느에 이어 이곡을 발표한다. 귀족으로서 그에게 죽음이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곡으로서, 고결한 귀족의 죽음을 하나의 초연한 자연적 섭리로 받아들이고 그것에게 품격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고결했던 자여, 죽음 이후에도 존엄한 자로서 그 품격을 지킬 수 있기를.


그는 죽음은 곧 평화이자 안식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당대 유럽의 종교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죽음을 하나의 새로운 상징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그의 마인드가 참 대단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낭만주의에 대한 욕구를 기피하며 보수적으로 살려고 했던 그의 행동을 떠올리니 어딘가 상반되는 부분도 있다.

 



[III] 시대에게 품격을



마지막 곡의 해설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함신익과 심포니송 마스터즈가 이 곡을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과 특히나 더 어려울 공연 예술계 사람들에게 바치는 곡이 아닐까 싶다.


죽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이 침체된 이 암울하고 우울한 시기에 포레처럼 '끝이 아닌 숭고한 무언가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갖고, 상황적 위기를 초연히 바라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곡이자 그런 생각을 곡으로서 공연으로서 전달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와 열정이 와닿는 시간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시작되기 직전에 향유했던 공연으로, 오랜만에 방문한 예술의전당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확실해진 방역 절차와 입장 규정,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하기 위해 모든 관객은 한 좌석씩 떨어져 앉도록 규정이 변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부쩍 어려워진 공연/예술계의 새 활력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시대에게 품격을. 모두에게 가치를. 언젠가 끝날 이 어둠 속에서도 초연히 빛날 수 있기를.


12월1일 롯데콘서트홀 (1417).jpg


 

[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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