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패왕별희', 눈을 한시도 뗄 수 없었던 171분 [영화]

글 입력 2020.05.30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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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경극배우로 성장하는 두 남자


 

두지(천데이의 어린시절 이름)와 시투(단샬로의 어린시절 이름)는 베이징 경극학교에서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친다. 시투는 놀림 받는 두지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면서 챙겨주고 두지는 시투를 남몰래 좋아하게 된다. 둘은 함께 성장하여 유명한 경극배우가 된다.


경극이라는 중국 전통 극예술은 남성만 연기하기 때문에 배역이 여성이더라도 남성이 그 역할을 맡는다. ‘패왕별희’라는 경극 작품에서 초나라 패왕 항우는 샬로가, 여주인공 우희역은 데이가 전담한다. 우희는 항우에 대한 연민, 사랑 그리고 충절을 보여주며 그런 그를 항우는 돌보며 이별의 과정을 거치는 내용이다.


경극이 끝나면 샬로는 무대에서 내려와 ‘항우의 가면’을 벗어 종종 홍등가에 간다. 거기서 만난 유명한 매춘부 주샨과 결혼 약속을 한다.

 


 

“너 정말 경극에 미쳤구나.”


 

데이를 두고 샬로가 한 말이다. 샬로는 주샨과 결혼하면서 나름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했지만, 데이는 삶을 경극의 연장선상에서 살았다. 데이는 경극이 끝나도 우희의 가면을 벗지 않았던 것이다.


샬로(데이 눈에는 그가 ‘항우’로 보였을 것이다)가 주샨을 사랑하는 모습에 분노하며 배신감을 느낀다. 현실과 연극의 구분을 못하는 “경극에 미친” 그의 모습이 비정상적이고 이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도 별 다를 것이 없다. 사실 우리도 어떤 역이 주어져야 정체성이 생겨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관에 가면 관객으로서의 정체성, 학교에서는 학생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집에서는 아들 혹은 딸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타인과 같이 어떤 대상물이 있어야 내 존재가 확립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연극과 같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


 

[크기변환]패왕별희 표지.jpg

 

 

 

“나는 본래 여자로서…”


 

데이는 어렸을 적 진짜 가족이라고 할 것 없이 그저 매춘부 어머니로부터 경극학교에 내맡기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정체성도, 배우라는 정체성도 없이(아직은 ‘배우 준비생’) 자랐다. 게다가 가장 기초적인 정체성, 즉 성별에 대한 정체성도 스스로 확립 못한다.


데이는 우희역에 대사 “나는 본래 여자로서…”라는 대사를 한동안 차마 못하고 “나는 본래 남자로서…”라고 했다. 그러다가 결국 우희를 연기하기 위해 “나는 본래 여자로서…”라고 내뱉으면서 자신의 남자임을 잊고 우희 역에 더욱 심취하게 된다.


오랫동안 어디 마음 둘 곳이 없이 방황하며 흐릿한 정체성을 가졌던 데이는 그래서 ‘패왕별희’에서 극중 우희로서 자기 자신이 데이로서 자기 자신보다 더 안정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실제 '패왕별희' 이야기에서 우희가 검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데, 데이도 그 같은 길을 걷게 된다.


 

[크기변환]경극.jpg

 

 

 

더 많은 명작이 재개봉 되었으면 한다.


 

<패왕별희>는 199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 영화에서 단순히 두 남자의 개인적인 사랑과 우정만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 침략, 문화대혁명 등을 거치면서 동시에 경극의 의미도 변해가는 중국의 근현대사와 예술문화가 아울러져있다.


이 명작이 재개봉한 덕분에 영화관이라는 영화에 적합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앞으로도 우리 마음에 울림을 주는 여러 영화가 재개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전은 역시나, 시간이 흘러도 낡지 않은 것 같다.


 

[크기변환]패왕별희 포스터.jpg

대한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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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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