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

글 입력 2020.05.13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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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인가?


 

영화 <버킷리스트>. 평생을 자동차 정비공을 살았던 카터(모건 프리먼)와 자수성가한 사업가 잭(잭 니콜슨)은 노년기에 들어서 우연히 병동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카터는 그가 대학생 때 철학과 교수가 ‘버킷 리스트’라는 것을 쓰게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말한다. 거의 50년이 흘러 카터는 정말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었지만, 버킷리스트는 대부분 사람들에게도 그러하듯 작성하는 것에만 의미를 둔다. 그러나 잭은 정말 시도해보자고 적극 권유를 한다. 그리고 둘은 병원을 나와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실행하면서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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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버킷리스트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 없다. 나는 내 삶에 대해서 매일 고민하는데도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버킷리스트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현재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사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면(인생의 마감기한이 임박해있다면),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내가 행복한 생활을 하려는 의지와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 삶이 한 달 혹은 하루가 남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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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떤 권위 있는 의사가 찾아와 내게 인생이 한 달밖에 안 남았다고 통보하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가장 먼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연보라색으로 탈색할 것이다. 가족을 찾아가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전하고 사이가 틀어진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는 쪽지를 남기겠다.


하고 싶은 말들을 남긴 채 비행기 표를 끊어 어린 시절 추억으로 물들어있던 캐나다 도시 몬트리올에 갈 것이다. 푸른 잔디 위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대학생들 틈에서 뛰어놀던 맥길 대학교 캠퍼스와 닳도록 읽은 「무지개 물고기」가 비치된 어린이 도서관에 들릴 것이다.


거리로 나와 살찔까봐 안 먹었던 퀘벡식의 프렌치 프라이 푸틴(poutine)과 거품 가득한 생맥주를 들이킬 것이다. 항상 가고 싶었던 아프리카 대륙으로 가서는 언덕 위로 올라가 석양을 바라볼 것이다.


만약 멀리 코끼리 무리가 초원에 지나가게 되면 나는 겁도 없이 코끼리 틈 속에 뛰어가 코끼리와 공놀이 할 것이다. 그들을 쓰다듬고, 안아줄 것이다. 조금 더 용기내서 바다도 가서 구명조끼 없이, 돌고래와 대화하면서 수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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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장 내일 죽는다면? 내 삶이 하루밖에 안 남았다면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을까? 동아프리카에 아름다운 휴양지면서 가장 많이 촬영된 곳으로 꼽히는 세이셸의 앙세소스다종(Anse Source d’Argent)에 10평정도의 작은 오두막을 지을 것이다.


그곳에 어렸을 적부터 현재까지 내 사진과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가족과 친구들의 사진, 학창시절 일기장, 열광했던 뮤지션 에이브릴 라빈의 전 앨범, 가장 아끼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 그리고 하이네켄 맥주와 옐로우 테일 와인 몇 병으로 꾸밀 것이다.


나의 분신과 같은 물건들로 가득 채우면서 내 흔적을 남겨 앙세소스다종의 사진에는 언제나 이 오두막이 상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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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인 버킷리스트: 나의 흔적을 남기기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33년 동안 매일 아침에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무슨 일을 하겠는가?’ 잡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행해나가는 여정을 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사람은 당장 내일 죽을 확률보다 살고 있을 확률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버킷리스트를 매일 실천하면서 동시에 오래 살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을 갖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로 해변에 오두막을 짓지 않으면서 동시에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는 삶을 사는 역설이 가능할까?


가장 촬영이 많이 되는 해변 앙세소스다종에서 내 분신과 같은 오두막을 짓기, 이는 결국 나는 이 세상에 내 흔적을 남기겠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잊히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마음에 발자국을 남기고 떠나 무의식 기억 속에 묻힌다.


옛 첫사랑은 우리에게 설레는 추억을 남긴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어린 시절의 따스한 기억을 심어준다. 영화 <벌새>에서 한문학원 선생님 영지는, 중학생 은희에게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람이야 세상에 가득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귈 수 있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라는 뜻)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남긴다.

 

그러나 때로는 흔적이 아니라 흠집을 남기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한 친구가 따돌림 당하는 모습을 방관하고 외면한 적이 있다. 그녀는 그 트라우마로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녀처럼 덩달아 따돌림 받을까봐 두려웠던 나는 그녀의 마음에 톱날로 흠집을 파내고 말았다.

 

내 마지막 버킷리스트는 나의 오두막, 나의 흔적을 남기기다. 흠집, 즉 곰팡이 가득하고 악취 나는 오두막이 아닌 아름답고 향기 나는 오두막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늘 나는 너에게 무엇을 남길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나는 좋은 흔적을 남기며 매일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흠집을 냈다면 얼른 찾아가 치유의 말을 건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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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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