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천사를 기다리는 일 [사람]

기다리는 이의 마음
글 입력 2020.04.1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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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들이 태양 아래를 거닌다.

나는 응달에 앉아,

발목 언저리를 하늘거리는 프릴의 몸짓 같은,

새의 궤적이 그 얼굴에도 자리 잡아 있음을 본다.

 

사랑받기를.
명랑한 저기 모든 빛나는 얼굴들,

내 그림자가 지금 그를 갈망하고 있으니

너희는 너희가 꿈꾸는 사랑을 받기를.

그렇게 기도해야겠다.

 

이뤄질 수도 잊힐 수도 없는 사랑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축복해야겠다.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나는 아직 어두운 곳을 감돌아야 하기에.

조금 더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쏘아 나가려는 나를 붙잡으며.

 

붙잡는 것은 누구의 손이었을까.

 

어둠이 다른 어둠을 붙잡았던 것일까.

아니.

어둠을 붙잡는 모든 것은, 빛이었다.

 

아직 내 어둠을 이기지 못해

깊은 곳에 눌리어, 웅크려 있는,

그래서 나만이 알 수 있는,

가리워진 빛.

 

언젠가

내 어둠을 능히 알아볼 수 있는 이가

경계로 나타나시길.

 

나의 주위로 드리워진 무의 장막을

스윽

매만져보시곤

또한, 알아보시고

이해하시길.

그리곤 심지어, 어루만져 주시고

마침내 품어 안아주시길.

 

얼굴 없는 기도를 올려야겠다.

나는 기다려야 하는 때문에.

 

그녀가 나의 어둠을 안아줄 때,

빛은 태어날 수 있다.

그녀가 나의 신이 될 때,

나는 그녀의 신이 될 수 있다.

 

천사의 왕림하심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은, 기도는 오직 그를 위함이다.

나는 그대의 아픔을 끌어안기 위해

준비하고 수도하는 자.


이제 천 길의 시간 끝에 닿을, 그대가 

아픔을 끌어안아 주시길.

그때 나는 그대의 신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에서 적당히 물러나,

한없는 눈빛만으로 사랑하는, 그 신이.

 

 



 

푸념 같은 기다림을 가만 바라보다가, 그러니까 기다림을 또한 기다리고 있다가 보면 괜스레 알게 되는 짜증이 있다. 내 안에 깊이 눌러두어, 게서 궁글고 있는 아마 투정 부림일 것이다.

 

요즈음엔 이런 생각마저 영 손에 잡히질 않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곤궁한 참이다. 괜한 감정들, 내겐 이제 익숙할 제 감정들마저 귀치 않아 내팽개쳐 두고픈, 체념 같은 성가심이 내 안엘 잔뜩 서리어 있는 것이다. 이를 어찌 해야할까. 즉, 나의 요즈음엔 글이 영 와닿질 않다는 말이다.

 

한 차례, 거센 시의 폭풍을 잘 견뎌낸 탓일까. 내 안에는 지금 어떤 시도 서질 않고, 그러므로 시도 내게 오려 하질 않는다. 아마 그 나비인 기다림과 견뎌냄이 이젠, 잊힐 만큼 오랬던 탓인가보다. 글이 쓰이지 않는다. 글 그 이전에는 늘, 정서가 풍부히 있어야 하는 탓이다.

 

글이 쓰이지 않을 때, 글로 쓸만한 어떤 정서도 안에 진득허니 서지 않을 때, 그럼에도 써야만 하는 때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참으로 낯선 고민이다. 여태 없었던 고민이기 때문이다. 늘 아우성으로 거기 폭풍우를 이루는 것이 그치니, 이 또한 참 난감한 것이구나 싶다. 한때 바랬던 고요가 나를 찾아와 '버렸다.'

 

고요가 나를 찾았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결코 오지 않을, 어떤 고요가 나를 찾았다. 그건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기다림을 그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무얼까. 나는 그냥 한순간만 날 스치고 지나가는, 이상한 과부하의 감각에 당장 지금 황망해하는 따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어땠든 어제도 오늘도, 그래서 아마 내일도 기다리고 있을 나를 새삼 바라보기로 했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었던가. 그것은 나의 행복이고, 개화 開花이고, 아니 아니.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인 어떤 천사의 왕림하심이다. 정말로 기다리는 것, 정말로 정말로 내 바라기에 기도를 올리게끔 되는 대상은 그 천사이다.

 

그래서, 오늘은 기도를 올린다. 잊힌 듯 혹은 귀치않은 듯 하는 이 기다림을 상기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다시 정좌하는 마음으로 지긋이 기다리기 위해서. 저기 마음에 석상이나 흉상 하나를 두고, 나는 그를 떠올리는 마음에 온통 집중한다. 그것이 다만 기도이다. 그래 열렬한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하여,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 내게 기도이다.

 

그래서 기도는, 기다림을 위한 일이다.

오늘도 하루가 간다.

나는 하루를 다가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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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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