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한 명"들을 기억하며 - 김숨 『한 명』 [도서]

글 입력 2020.04.1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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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폭력은 어느 작가에게나 보편적 주제다.

폭력성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소설가"

 

위안부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김숨은 2016년 생존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 남은 어느 날을 가정하여 쓴 『한 명』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만주 위안소에 사는 열다섯 살 여성이 주인공인 『흐르는 편지』를 발표했다. 그리고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대화를 옮긴 위안부 증언집 두 편을 발표하여 작가는 ‘개인’의 기억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되살리고자 했다.

 

김숨은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표작으로 『L의 운동화』,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등이 있다.

 

 

 

『한 명』이 세상에 나오면서


 

『한 명』은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의 증언을 시작으로 이어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던 작품이다. 김학순의 첫 공개 증언일인 8월 14일은 전 세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세계 위안부의 날'이 되었다.

 

위안부 문제는 현재도 이슈이고 언론에서 꾸준히 보도가 나온다. 매체에 등장하는 위안부 문제를 보고 사람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너무나 익숙하니까. 그러나 위안소에서 그분들이 무엇을 겪었는지, 또 살아 돌아온 이후에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 명』을 읽으면서 우리는 위안부 피해에 대해 얼마나 몰랐는지를 알게 되며 다시 위안부에 대해 관심을 두게 한다.

 

『한 명』은 ‘위안부’ 문제를 이슈화하는 동시에 그간 한국문학이 잘 다루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인 문학의 장으로 끌어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숨은 피해를 증언할 수 있는 위안부 피해자가 아무도 남아 계시지 않는 시기가 왔을 때, 『한 명』을 통해 다시 경각심을 가지기를 바라며 소설을 썼고 그것이 문학의 도리라 생각했다.

 

‘일본 독자 여러분에게’라는 글에서 김숨은 자신이 쓰고 싶었던 것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떠나 폭력적 역사의 와중에서 한 사람의 인간이 받아야 했던 고통이었으며, 그 고통을 자비의 마음이라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덕으로 승화시킨 작고 위대한 영혼에 관해서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적 상상력이 피해자들의 인권에 손상을 입힐까 봐 걱정하며 피해자의 증언록을 구해 읽었다. 소설에서는 326개의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다큐멘터리가 인용되었다.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을 재구성하여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한 서사를 완성했다. 리얼리티를 극대화한 소설은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역사의 잔혹성과 내상을 고스란히 실감하게 만든다.

 

작가는 『한 명』을 쓰고 난 후에도 위안부 소녀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 형식의 소설 『흐르는 편지』, 생존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등 ‘위안부’ 시리즈 3편의 소설을 내며 전쟁 피해자로서 여성으로 탐구의 시선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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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한 명’들의 증언록


 

『한 명』은 소설 본문이 시작하기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사람만 남은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이라고 밝힌다.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던 할머니는 남은 생존 피해자가 두 명에서 한 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러면서 여기도 한 명 더 있다고 나직이 중얼거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설 자체가 자신의 삶을 증언한다.

 

『한 명』은 증언에 나서지 않았던 위안부 피해자의 위안부 서사이다. 실제 '위안부' 피해자의 구술 증언록의 말들은 소설 내에서 기억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피해 생존자를 만나러 나선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소설 전체가 하나의 구술 증언록으로 완결된다.

 

 

내가 죄가 많다…….

 

그녀는 한밤중에 깨어나서도, 길을 걷다가도,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 그렇게 됐으면서, 집에서 10리 밖을 모르고 살다가 끌려가 그렇게 됐으면서.


『한 명』 44p.


 

소설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고통스러운 경험과 사건이 주는 충격과 함께 살아남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그 이후의 삶’까지도 조명한다.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 20만 명 중에 2만 명만 살아 돌아왔다. 그녀는 1991년 8월 14일 티브이를 보다가 자신과 똑같은 일을 당한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이 공개적으로 증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고의 과정은 처참했다. 도청 관계자는 피해자에게 취조하듯 서너 시간을 질문했다. 정부 보조금을 탔지만, 친척들이 피해자와 인연을 끊었다. 그녀는 해방이 된 후 만주 위안소에서 함께 있었던 소녀 중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처럼 위안부 신고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가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창피하다고 여겨서다. 함께 했던 소녀들이 보고 싶어 군자의 고향 집까지 찾아갔지만,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인간으로서 기품과 위엄, 용기를 잃지 않은 피해자들을 볼 때마다 감탄하고는 한다.”고 했던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지워버린 과거를 복원해내며 다시는 반복되어서도, 잊혀서도 안 될 기억의 역사로 확고히 자리 잡게 한다.


 

 

늙고 병든 개


 

노인이 된 그녀는 늙고 병든 개를 만난다. 개가 새끼를 낳기도 전에 주인이 배에 갈라 새끼를 꺼내고 아무렇게나 꿰맨 흉터로 가득하다. 주인은 개에게 인공수정으로 임신을 시키고 애견 시장에 내다 판다. 개는 작은 몸뚱이로 새끼를 50마리나 낳았다. 그녀는 그 개를 보며 불쌍하다고 말한다.

 

개를 보면 그녀와 위안부 피해자들이 떠오른다.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임신이 되면 아기를 지우거나 자궁을 지워버린다. 전쟁이 끝났어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한다. 그녀는 성병으로 고생했고 자궁이 기형으로 변해 불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타인에게 밝히지 못한다.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혔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지워진 이름들


 

『한 명』에는 많은 이름이 등장한다. 만주로 끌려간 소녀들은 하하에 의해 일본식 이름으로 불린다. 소녀들은 다케코가 되고 유미코가 되었다. 위안소에서 죽은 소녀의 이름을 새로 들어온 소녀에게 다시 붙인다. 소녀들은 끌려오기 전의 자신의 이름을 구구단 외우듯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나 소녀들은 점점 자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자신이 몇 살인지, 부모의 이름도 잊어간다.

 

소설 속 “그녀”는 마지막에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 “그녀”로 서술된다. 마지막 생존자 역시 “그이”로 불린다. “그녀”와 “그이”는 그녀의 존재이자 그녀와 함께 한 모든 피해자다. 살아 돌아온 제각각의 피해자들과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 그 모두가 된다.

 

 “나는 위안부가 아니야.”

 “나는 운금실이야.”

 “역사의 산증인 윤금실이야.”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토해내듯 말하는 마지막 생존자의 증언은 자신의 존재가 지워진 피해자분들의 선언으로 읽힌다.


 

 

"그녀"의 삶


 

까치가 울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는 까치가 우는 데에 가보라고 했다. 오 년이 지나서도 큰딸이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까치가 우는 데에 큰딸이 죽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강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군인에게 붙들려 트럭 짐칸으로 던져졌다. 트럭 짐칸에는 이미 대여섯 명의 소녀가 앉아 있다. 대구역에 도착한 그녀는 그들처럼 끌려온 소녀들과 함께 강제로 열차에 타야 했다.

 

만주행 열차에 탄 소녀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끌려왔다. 간호사 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열차에 탄 소녀,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공장에 취직하러 가는 소녀 등이 대부분이다. 그녀는 일본군이 무서워 자신이 다슬기를 잡다 잡혀 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소녀들은 가축과도 같은 취급을 받았다. 멀건 죽이나 쉰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성병에 걸리면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먹으면 죽기도 하는 과망가니즈산 칼륨을 탄 물로 성기를 씻어야만 했다. 그게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른 채 시키는 대로 씻었다. 콘돔 개수도 적어서 소녀들은 콘돔을 다시 빨아 사용했다. 일본군들 중에는 콘돔을 끼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끼더라도 찢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소녀들은 자주 임질이나 매독에 걸렸다. 그러나 소녀들은 피임할 수 없었다. 임신하면 강제로 낙태와 함께 자궁을 적출했다. 혹은 과망가니즈산 칼륨의 영향으로 죽은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다. 소녀들은 고통을 잊기 위해 아편에 중독되었다.

 

만주 위안소에는 죽고 싶어도 나무 한 그루 없는 지옥이었다. 일본 군인들은 열대여섯 소녀들을 성노예로 부렸다. 그중에는 열세 살도 있었다. 군인들은 소녀의 볼두덩이에 대고 성냥을 그어대고, 주머니칼로 소녀의 허벅지를 찍었다. 일본 장교 하나는 총으로 소녀의 성기를 쐈다. 군인들은 채찍으로, 불쏘시개로, 쇠꼬챙이로, 칼로, 발로 소녀들을 때렸다. 결국 몇몇 소녀들은 자신의 피와 아편을 먹고 죽기를 선택했다.

 

소녀들 사이에는 소련 군인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녀들은 자신들이 이미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고 위안소에서 도망쳤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소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녀는 중국인 홀아비 집에 숨어들었다. 홀아비는 자신과 살지 않으면 일본군에 신고한다고 협박하자 그녀는 홀아비와 아홉 달을 살다가 두만강을 건너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 20만 명 중에 2만 명만 살아 돌아왔다. 그녀는 1991년 8월 14일 티브이를 보다가 자신과 똑같은 일을 당한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이 공개적으로 증언을 하기 시작했다.

 

티브이에는 마지막 생존자인 한 명의 일상을 찍은 영상을 방송한다. 그녀는 위안부였던 이들이 나오는 영상을 챙겨 보았다. 그녀는 마지막 생존자인 그이를 만나러 간다. 그녀는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어 했다. 그녀는 꿈을 꾸었다. 위안소에 함께 있던 소녀들을 만난 꿈이다. 그녀는 손을 들어 인사하려다가 강에 빠진다. 그러나 소녀들이 그녀를 구해준다. 그녀는 소녀들이 했던 당부가 어떻게든 살아 있으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새삼스레 열세 살의 자신이 만주 위안소에 있다는 게 여전히 무섭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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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유일한 생존자가 자신과 가까이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 사실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가 자신의 할머니였을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할머니를 대신해 위안부 피해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 명』에 담긴 기록은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용기를 낸 증언으로 기록으로만 남은 존재들, 기록에도 남지 못한 존재들, 그리고 어딘가로 사라진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소설로 완성된 증언은 당시에 돌아오지 못한 여성들을 떠올리게 하며 지금 이곳에 '위안부'의 자리를 마련한다.

 

작년에 류석춘 교수가 수업에서 “위안부는 매춘”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는 용기를 내어 증언한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한 발언이다.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도청 관계자에게 취조당하듯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의 고통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여전히 우리는 위안부 피해 이슈에 대해 익숙하지만, 그 피해의 정도는 전혀 모르고 있다. 피해자는 국수가락을 보면 함께 있던 소녀가 피를 뿜던 모습이 떠올라 먹지 못하고, 일본군의 정액이 떠올라 우유를 마시지 못하고, 메독이 떠올라 오징어 빨판을 보지 못한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허 스토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끝까지 보지 못하고 영화관을 뛰쳐나갔다.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것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그건 내게 아주 부끄러운 기억이었는데 이제야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지 못했던 그녀처럼 피해자가 한 명이 남은 시점에서 문제의식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꾸준히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꾸준히 관심을 가져 잊히지 않아야만 다시 반복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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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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