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즈니 랜드 그 경계에서 : 플로리다프로젝트 [영화]

매직캐슬 너머 무지개를 찾아서
글 입력 2020.04.1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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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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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많은 이들이 집을 나서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나가면 사립 유치원 버스가 아파트 근처에 정차해 있고, 부모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안부를 남기며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아이를 배웅하며 줄지어 있는 부모들을 지나쳐 20분 정도 걷다 보면 보호자와 책가방 없이 동네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1.3km.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사는 아이들은 전혀 다른 인생들을 살아가고 있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즈니랜드 그 주변부에 위치한 매직캐슬 모텔에 사는 저소득층 미혼모 가정을 그린 영화이다. 포스터나 스틸컷은 마치 판타지 영화 같다. 강한 햇빛과 연보라색 건물 이 모든 것은 디즈니랜드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의도 없는 앵글에 찍힌 아이들의 모습과 배경은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답다. 어느새 앵글엔 아름다움 속에 묻혀 있던 개개인의 사정들이 담기고 있다.


하지만 그 앵글은 '연민의 장'을 만들지 않는다. 즉, 흔히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와 불행 포르노(misery pornography)라고 칭해지는 영화들 같이 극적인 연출로 캐릭터를 비참한 빈곤 속에 허덕이게 만든다거나 끔찍한 불행 속에 갇히게 만들어 사람들의 동정심을 끌어내려하지 않았다. 그저 이들을 관찰할 뿐이다. 모든 판단을 관람들에게 맡긴 채 영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디즈니랜드 근처 떠도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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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햇빛과 연보라색 페인트가 어우러져 멀리서 보면 환상의 공간으로 느껴질 법한 매직캐슬은 사실 그리 이상적인 공간이 아니다. 대개 무주택자들이 장기 투숙하고 있는 매직캐슬은 조금만 가까이 가보면 쓰레기가 나뒹굴 구고 있고 오줌 냄새가 진동하며 걸핏하면 사람들이 서로 언성을 높이는 소리로 귀를 막게 된다. 어쩌면 절망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곳에서도 즐거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무니와 친구들이다. 대부분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을 시간이지만 무니와 친구들은 왜인지 모텔 주변을 서성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묻지 않는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장난에도 다들 그러려니 자기 할 일을 한다. 그들에게 서성이는 아이들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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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이스크림 사 먹으려고 하는데 잔돈 있으세요? 지금 5센트밖에 없어서요. 천식 때문에 의사 선생님이 아이스크림 사 먹으래요."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가게 옆을 서성이다 어른들을 보면 돈을 구걸한다. 무려 천식이라는 거짓말을 치면서까지 말이다. 어른들 옆엔 그 어른들의 자녀가 멀뚱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디즈니랜드와 매직캐슬이 대조를 이루듯 부모 손 잡고 온 아이들과 무니와 친구들은 대조를 이룬다. 어떤 아이들에겐 너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어떤 아이들에겐 구걸하고 거짓말을 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수확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니와 친구들은 너 한번 나 한번 돌아가며 해맑게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스크림이지만 새 친구를 위해 마지막 한입을 양보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의 인생이 더욱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 나름대로의 행복이 아이들에게 잔존할 것이기에 섣불리 단정 지어 답을 낼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배움이 아이들에게(비단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알기에 어떤 경우라도 모든 아이들이 공평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슴속에 담아 둘 뿐이다. 가정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해 실패감의 웅덩이에 빠지질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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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이들을 무뚝뚝하지만 챙겨주는 이가 있다. 낡은 매직 캐슬을 부지런히 관리하며 캐슬 내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까지 도맡아 해결하는 바비가 있다. 그는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매번 사고를 치는 아이들에게서 피로를 느껴 아이들에게 무관심할 법하지만 어쩐지 그의 시선은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아이들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보호자 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롤리타신드롬(Lolita Syndrome)을 가진 이가 접근하자 바로 달려가 그를 제지한다.


그는 어쩌면 보호자에게 관리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하여 제3자가 지닐 수 있는 적정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무관심으로 일관하지 않고 적정 선을 유지하며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 아직 가치관 성립조차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명예소방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시기를 거쳤던 이웃 어른으로서 관심과 도움을 주는 것. 이 같은 태도야 말로 이 영화의 시사점이 아닐까.



 

하루를 살아내는 미혼모, 그녀의 이름은 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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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뒷방에서 2차까지 뛴다고요. 난 춤만 추지 그런 짓 안 해요. 못하겠다니까 이틀 뒤에 잘렸어요. 밤새 춤 시키고 그렇게 잘라요?"



주인공 무니의 엄마인 핼리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구직활동을 하지만 쉽게 취직이 되지 않는다. 일을 하지 못해 집세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핼리는 보조금을 받으러 공공기관을 찾았지만 30시간 일하는 곳을 찾으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의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볼 수 있다. 핼리는 망가진 향수를 잔뜩 구해와 골프장에 무단 침입해 판매하거나 가짜 디즈니랜드 표로 행인에게 사기 쳐 방세를 구한다. 하지만 곧 경비원에게 걸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녀가 돈을 버는 행위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녀는 단지 딸 무니와 함께 하고 싶을 뿐이다. 번듯한 삶까지 그녀에게 선사할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품 아래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핼리는 애쓰고 있다.


핼리는 15살에 무니를 임신했다. 영화에서 무니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철저히 배제되었지만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순간의 쾌락을 위해 여성과 자고 책임을 지지 않은 이일 것이다. 부부는 아이에 대한 책임에 대하여 공통분모를 가지지만 한쪽이 홀랑 도망가버리면 남은 쪽은 무겁게 지고 갈 수밖에 없다. 핼리는  혼자 양육하기에 고작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 앞에서 마리화나를 핀다거나 상스러운 욕을 하는 등 부모라기엔 다소 철부지 같아 보인다.


영화를 보며 '무슨 부모가 저래?'라고 생각한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핼리는 과중한 책임감에도 아이들에게 안 좋은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아이를 탓하지도 않는다. 엄마 나 힘들어라는 소리에 잔소리 없이 무니를 업어주고 무니의 친구들과 댄스타임을 가지며 즐겁게 놀아준다. 사회적 기준에서 그녀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녀는 무니에게 최고의 엄마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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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제타>의 로제타는 실업이 지속되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배신하고 자신이 그 일자리를 꿰찬다. 살아가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그녀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이를 무릅쓰고 배반을 거행한 것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핼리는 구해지지 않는 일자리와 거듭되는 가난에 그녀는 결국 남성들에게 성을 판매한다. 남성들이 올 시간이 되면 무니는 큰 힙합 노래와 함께 목욕을 해야 한다. 그녀가 남성들로 하여금 성착취를 당하는 동시에 무니는 깨끗해진다. 핼리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비록 자신은 무니를 위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해야 하지만 무니만큼은 좋은 것만 보고 행복하게 자라길 그녀는 바랄 뿐이다. 오전이 되면 그녀는 다시 엄마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딸 무니의 가장 친한 친구 젠시에게 생일파티를 해주기 위해 디즈니랜드 근처 호수로 간다. 저 멀리 디즈니랜드에서 쏘아 올린 불꽃을 보면서 그녀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짐작컨데, 그녀의 소원은 부자가 되는 것도 사회에서 큰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주 30시간 이상의 일자리를 얻어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무니와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라는 염원을 터져나가는 폭죽 속에 담아 보냈을 것이다. 환상의 디즈니랜드는 과연 그 꿈을 이뤄줬을까.




너무 일찍 성숙해버린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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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난 바로 알아."


  

아이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다. 그 시기에는 부모가 곧 세상이기에 부모의 표정, 몸짓 그리고 말투까지 아이들은 흡수하고 받아들인다. 매직캐슬을 고급 콘도로 착각하고 예약을 한 신혼부부가 프런트 앞에서 싸우고 있다. 아이들은 이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본다.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갓 결혼식을 마치고 온 신분의 표정은 점점 안좋아진다. 그때 무니는 말한다.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난 바로 알아."


무니는 어른들이 울면 바로 알게될 때까지 수 없이 많은 엄마의 눈물을 보아왔을 것이다.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무언가가 자신의 엄마를 힘들게 한다는 것과 그럴 때마다 엄마의 눈가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숱하게 관찰하면서 익혔을 것이다. 힘든 현실과 마주한 부모를 주시하며 아직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들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고 있을 것이다.


 

[박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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