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걸치는 것이 아닌 입는 것

글 입력 2020.04.1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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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패션 위크를 개최할 정도로 패션 산업이 발전한 나라가 됐다. 시가지에서는 카페만큼이나 의류 매장이 즐비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 내 시선을 잡아 끄는 사람들을 만나는 날도 많아졌다.


패션에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인지 맥락도 잡을 수 없는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산업이 발전하고, 매장이 늘어나고,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패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음에도 아직 그 근본에 깔린 ‘기본’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보기 드문 탓에 중간 과정이 생략된 결과물이 많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를 파악하는 것



인테리어 시공을 하는 업자라고 가정해보자. 인테리어 업자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자신이 시공을 해야 하는 공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가로와 새로의 폭은 얼마인지에서부터 어떤 자제를 사용했고 현재의 상태는 어떤지와 사용 가능한 자제와 불가능한 것 등등 최대한 상세하게 조사를 해야 한다. 인테리어 업자를 나로 치환하고 시공이 들어가야 하는 공간을 옷을 입어야 하는 내 몸으로 바꿔보자. 내 몸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패션 유튜버나 블로거들의 콘텐츠 혹은 각종 패션 전문 플랫폼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은 전부라고는 할 수 없어도 유용한 내용이 많다는 점은 확실하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그 모두가 저마다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 해 공부하여 얻은 전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기에 당연하 내용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내 신체 정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야한다. 뛰어난 수학자가 아무리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따위를 알기 쉽게 설명 해 놓았다 하더라도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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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enny Luo on Unsplash

 


내 몸을 파악하는 것에 있어서는 정확함과 객관적인 시선이 필수적이다. 기성복이라고 부르는 옷 조차도 사람들의 신체 치수를 측정하여 그 평균값을 바탕으로 제작한다. 즉 숫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눈대중으로 대충 어느 정도쯤이라 파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이즈 측정용 줄자를 이용해서 어깨 선, 가슴 넓이, 밑위길이, 허벅지 둘레 등 옷을 구매할 때 사이즈 표를 보며 대조할 수 있는 모든 부위의 치수를 측정하여 나만의 사이즈 표를 만들어 두어야만 내가 원하는 핏에 따라서 그에 맞는 사이즈의 옷을 구매할 수 있다.

 



나를 알아가는 것



내 몸의 치수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요하지만 제대로 패션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과정은 인테리어 시공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장소를 파악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이제 시공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니 어떤 방식으로 시공 작업에 들어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테리어 업자는 그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릴 색은 무엇인지, 어떤 가구나 자제를 사용해서 어떤 식으로 배치할 것인가에 대해서 몇 날 며칠이고 고민을 한다. 자신의 몸을 꾸며야 하는 우리는 어떤 옷과 아이템을 어떤 식으로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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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ick de Partee on Unsplash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색’이다. 재단 방식, 원자재, 디테일 등의 요소는 디자이너에 따라에서 사용하는 것도 있고 생략되는 것도 있지만 색이 없는 옷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옷은 색을 지녔기에 색을 아는 방법은 그 어떤 옷을 입을 때도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범용성이 좋은 요소다. 우리가 어떤 인물의 스타일링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정보가 색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퍼스널 컬러를 찾는 것도 좋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달리 보자면 내 피부 위에 색을 올려두는 것과 같다. 무늬가 있는 옷이라면 여러 가지 색을 이리저리 섞어 올려 두는 게 될 것이고 서로 다른 색상의 옷을 레이어링 하는 경우에는 서로 다른 색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 연출하 던가에 상관없이 그 바탕이 되는 색은 각자의 피부톤이다.


단순하게는 쿨톤과 웜톤으로 구분하지만 세세하게 따지고 들자면 베이지, 아이보리, 화이트 베이지 등 채도와 명도에 따라서 끝도 없이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 일반인이 이토록 상세하게 자신의 퍼스널 컬러를 조합하는 것은 어렵기에 이러한 일을 대신해 주는 전문 업체도 생기는 추세다. 경제적인 여유가 된다면 업체에 의뢰를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자신의 피부에 맞는 톤 정도라도 알아둬야 한다. 톤 인 톤이니 톤 온 톤이니 하는 연출법들은 그 뒤에 따질 일이다.

 



나와 대화하는 것



내 몸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색이나 아이템도 완벽히 이해했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인테리어 업자가 정교하게 측정한 자료와 공을 들인 시공법으로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공간을 만들어 뒀다 한들 그 공간을 사용할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기술적인 면에서는 한없이 부족하고 볼품없다 한들 그 공간을 쓰게 될 이의 마음에 든다면 그것은 곧 최고의 인테리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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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reestocks on Unsplash

 


패션 MD나 패션 디렉터처럼 기업의 이익 창출 과정에 참여하고 있고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취향이 아닌 고객이 될 사람들의 수요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저 옷을 좋아하고 나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은 한 명의 일반인이라면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만 집중하면 된다.


다른 이들이 나의 패션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갖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고려 대상에 넣을 필요조차 없다. 패션이라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옷이라는 수단을 통해 겉으로 드러내는 행위다. 나의 세계에 타인의 요구를 반영할 것인가는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내 몸의 부분 부분마다 치수를 재고 피부의 톤을 알아보고 나와 어울리는 스타일과 내가 원하는 옷들을 알아보는 것에 투자 한 그 모든 시간 속에서 결론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다. 이 모든 과정들은 나와 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다. 나에게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끊임없이 물어보면 나는 그에 대해서 언제나 성실하고도 친절하게 답을 보내온다.


하지만 나는 꽤나 내성적이고 소심한 탓에 결코 먼저 자신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나가 아닌 남과 아무리 열심히 대화를 나눴다 한들 그 대화를 바탕으로 내 몸 위에 걸쳐낸 세계는 어딘가 찝찝하고 불편하다.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다.


나와 당신이 진정으로 깊고도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것은 남이 아닌 나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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