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발견과 발전, 명암의 역사 - '총보다 강한 실' 리뷰

글 입력 2020.03.2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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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학자들이 예측한 것보다 더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했다. 그만큼 실의 영역도 매우 광범위하다. 고대 이집트 미라를 감싼 리넨부터 동서양을 이어준 비단, 잉글랜드 제정의 엔진이었던 양모, 화려함과 사치의 상징이었던 레이스, 노예무역에서 기술혁신까지 광범위한 인간 생활에 긴밀한 영향을 끼친 면, 에베레스트나 우주와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특수 직물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발전과 함께 실을 다루는 기술은 계속 발전하면서, 직물의 종류와 쓰임도 다양해졌다.

 

책 <총보다 강한 실>은, 실이 처음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던 시기와 장소를 고고학적 사료로 파헤치며 여러 시기와 장소에서 실이 성취했던 각각의 의미와 용도를 묘사하는 한편, 역사의 명암도 가감 없이 그렸다.

 

 

역사는 긴 직물로 만든 돛과 그 돛 밑에서 움직이던 배들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던 굉장한 여행들로 가득 차 있다. (141)

 

 

우리가 흔히 실과 직물로 떠올릴 수 있는 제품은 옷이나 가구의 가죽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실이 익숙하게 존재하지 않았던 ‘발견’과 ‘발명’의 의미가 있던 때 직물은, 어떤 일의 가능과 불가능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돛이 대표적인 예다. 돛은 당시 하나의 발명품이었다. 이건 단순한 전제지만, 돛의 크기와 모양이 셀 수 없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항해의 가능성과 방향도 여러 갈래로 나뉘기 때문이다. 실이, 항해술과 직결되는 순간이다.

 

바다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인간은 실을 통해 추진력을 얻었다. 그렇다면 험하고 추운 얼음산에서, 산소가 없는 지구 밖에서 실의 역할도 가늠해볼 만하다. 당연히 몸을 보호함으로써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그런데 예상과는 조금 다른 내용도 알 수 있었다.


 

내가 15초 정도 서 있는 사이에 내 옷은 딱딱하게 얼어버렸다. 그때부터 우리는 모두 옷이 얼어붙기 전에 재빨리 몸을 굽혀 움직일 수 있는 자세를 만들었다. (264)


마이클 콜린스는 우주 비행사와 우주복의 관계를 ‘애증’으로 표현한다. “우주복은 하루 24시간 우주 비행사를 보호해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옷이었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주복은 아주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에 증오의 감정도 생겨났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순리대로 사랑이 이겼다. (309)

 

 

특정 장소에서 예측 가능한 옷의 기능 외에 직물은, 사람과 일종의 상호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책 곳곳에서 알 수 있었다. 실의 발견과 직물 기술의 발전은 분명 이뤄지고 있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황과 옷에 적응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적절히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당시 우주비행사들의 일화는 그때 인간이 복잡한 감정을 잘 보여준다. 


 

양모 교역은 12세기와 13세기 시토 수도사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들을 세속화했다. (176)


173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노예들이 가장 값싸고 가장 거친 옷만 입도록 하는 법이 통과됐다. (219)

 

 

어떤 역사든 모든 명암의 중심에는 인간이라는 변수가 있는 것 같다. 옷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게 해주었지만, 정작 레이스를 뜬 사람에겐 그것을 걸칠 기회는 아예 주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자유와 화려함을 과시하는 매체인 직물이 노예에게는 그들을 더욱 강하게 속박하는 일종의 도구에 불과했다.


어떤 이는 면 제조업 성공으로 부와 직업적 성공을 이뤘지만, 어떤 이는 그 공장에서 강도가 심한 노동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실은 수많은 사람을 연결했지만, 그 연결의 통로가 늘 사랑과 평화는 아니었다.

 

언젠가 대학에서 섬유 관련 수업을 들었을 때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하는 교수님의 한 마디가 있다. 늘 쓰레기통 같았던 학과실에서 교수님이 언젠가, 보통 스와치라 부르는 작은 천 샘플을 들고 얘기하셨다. 이 천이 바닥에 떨어지면 쓰레기, 우리가 포트폴리오에 넣으면 작품이라는 것이다. 실의 역사에 드러난 명암이 이와 비슷한 맥락 같았다.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운명으로 갈라진다는 점에서.


 

하지만 실제로 노예들은 이론상으로 자신들에게 금지된 의류도 손에 넣을 능력이 있음을 멋지게 입증했을 뿐 아니라(조심스러우면서도 의식적으로) 흑인 고유의 미학을 창조해냈다. (221)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직물을 구입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301)

 

 

그런데도 악조건 속에서 결국에 꽃 피우는 게 취향이고 아름다움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노예 신분을 확언하는 자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오히려 주인의 옷을 화폐 삼아 훔치는 중세 노예들의 행동은, 모순적인 동시에 진취적이다. 그리고 굴하지 않고 그들 고유의 미학을 창조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실에서 시작하여, 결국 사람이다. 기능과 용도의 발전이 인간의 생존을 전제로 당연히 이뤄야 하는 인류의 과업이라고 한다면, 이제 어떤 방식으로 환경을 고려하는 아름다움을 발전해 나갈지 한 걸음 더 나아간 고민이 필요하다.

 

*

 

실은, ‘가장 처음의 것’을 은유하는 물질 같다.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아주 가능성이 무한한, 마치 점에서 시작되어 선, 면으로 그려지는 그림처럼. 색이 입혀지고 불규칙한 질감으로 가득 찬 그림에서 우리는 다시 면으로, 선으로, 점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책 <총보다 강한 실>은, 한 번 거꾸로 탐험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미 우리 생활에 너무 익숙하게 완제품으로 편재하는 모든 직물에서 실로, 정확히는 그 실을 만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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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전작 『컬러의 말-모든 색에는 이름이 있다』에서 '색이름'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들을 소개한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신작 『총보다 강한 실』에서는 그동안 다뤄진 적 없던 실의 역사에 주목한다. 총, 균, 쇠가 주류의 역사이자 힘의 역사라면, '실'의 역사는 총보다 강하게, 균보다 끈질기게, 쇠보다 오래, 인간의 역사를 움직여온 보다 우리 삶과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실과 직물을 만드는 것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일이 아니라 여성의 일이었으며, 그렇기에 기록된 글이라기보다는 입으로 전해진 것들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섬유 흔적이 발견된 동굴부터, 비단길의 흔적, 이집트 미라의 리넨까지, 실이 거쳐 간 역사의 흔적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다.

 

이 책에서는 직물과 실에 대한 13가지 이야기를 다룬다. 리넨으로 시체를 감싼 이집트인들, 고대 중국의 비단 제작의 비밀, 중세 유럽 왕족들의 레이스 경쟁 등을 만난다. 또한 남극대륙과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선택된 특별한 직물과, 인간 한계를 넘기 위한 우주복 이야기, 전신 수영복 이야기도 다룬다.

 

인류의 시작, 교역의 시작, 산업혁명의 동력, 과학의 발전, 그 모든 곳에 있었던 '실'. 이 책은 힘과 권력에 가려졌던 그 뒤에 숨은 인간을 따라가는 책이다. 엉킨 실타래를 인내심을 갖고 풀어내듯, 실과 직물의 흔적을 끝까지 찾아내 그것을 최초로 만들고 사용한 인물들과 그들이 움직여온 역사를 펼쳐 보인다.

 

작은 실 하나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라. '실' 하나로 풀어낸 역사의 참모습이 여기 있다. 그리하여 가느다란 실의 힘에 압도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머리말

 

1. 동굴 속의 섬유: 옷감 짜기의 시초

2. 죽은 사람의 옷: : 이집트 미라를 감싸고 벗긴 이야기

3. 선물과 말: 고대 중국의 비단

4. 비단이 건설한 도시들: 실크로드

5. 파도 타는 용: 바이킹의 모직 돛

6. 왕의 몸값: 중세 잉글랜드의 양모

7. 다이아몬드와 옷깃: 레이스와 사치

8. 솔로몬의 외투: 면, 아메리카, 교역

9. 극한 상황에서 옷 껴입기: 에베레스트와 남극을 정복한 옷

10. 공장의 노동자들: 레이온의 어두운 과거

11. 압력을 견뎌라: 우주여행에 적합한 옷

12. 더 튼튼하게,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신기록을 세운 스포츠용 직물

13. 황금빛 망토: 거미줄을 이용하다

 

맺음말 

감사의 글

용어 해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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