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문화의 현주소 - 출판저널 515호 [도서]

글 입력 2020.03.0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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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상물은 기본적으로 향유자가 수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영화나 드라마는 청소를 하면서, 혹은 설거지를 하면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거실 텔레비전에 뉴스가 틀어져 있어도 스마트폰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책은 그럴 수 없다. 적극적으로 독서의 과정에 참여해야하기 때문이다.


능동적으로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놓아야 비로소 독서를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책을 읽는 일은 다른 문화 매체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 출판물과 영상물, 이 두 가지는 모두 비교적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매체이지만, 인간이 이를 수용하는 방식은 다른 것이다.


현대에 이는 더욱 심화되었다.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영상물 플랫폼들이 우리 생활에 침투하게 되면서 출판물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책은 더 이상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며, 영상물이 다루는 콘텐츠의 질과 양 모두가 발전하였다. 결국 독서율은 점점 줄어들고 출판계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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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 515호는 독서의 문화가 직면한 이러한 위기를 전격적으로 공론화시키며 우리를 독자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올해로 창간 33주년을 맞는 <출판저널>은 오늘날 우리 “책문화”의 실태를 진단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한다. 본 매거진은 다채로운 칼럼과 인터뷰들을 통해 도서라는 문화적 소재가 현대인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오늘날 새로 생긴 도서관과 북카페, 동네서점들이 탄생한 배경에는 도서에 대한 개개인의 철학이 담겨있어 흥미롭다. 책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재의 출판 시장 종사자들과 전문가들의 좌담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국내 책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과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엿볼 수 있다.

 


 

책과 생활


 

<출판저널> 515호에서는 우리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도서관이나 서점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공간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 사례들을 통해서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에게 책이 가진 의미들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1. 번역가의 서재 - 2018년 서울 서교동에서 탄생한 작은 서점이다. 전문 번역가가 지은 이 서점은 ‘번역가의 서재’라는 이름에 걸맞게 번역서만을 판매한다. 이 아늑한 공간은 서점 주인의 작업공간인 동시에 대중에게는 서점으로 열려있으며, 정기적으로 독서모임의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번역서는 서점 주인의 애정과 자신감이 깃들어있는 종류의 책들이다. 번역서라는 테마를 통해 하나의 문화공간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점이라는 공간은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인데, 책이라는 대상이 가지는 원형적인 이미지, 그리고 공간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온정 속에서 이 공간은 안식처로 거듭나게 된다.

 

2. 바람숲그림책도서관 -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은 강화도의 산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 도서관은,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를 한다거나 책가방으로 자리를 맡아놓고 잠시 자리를 비울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동네 도서관이 아니다. 바람숲그림책도서관에서는 책을 들고 산속에 들어가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거나 누워서 눈을 붙일 수 있다. 이 공간은 책을 수용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자연과 맞닿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혹은 책을 읽지 않더라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3. 예쁜약국 -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이 약국은 몸을 고쳐주는 의약품뿐만 아니라 마음을 위로해주는 책들을 구비하고 있다. 이 곳을 운영하는 정문영 약사는 독서에 대한 자신의 애정으로 약국을 꾸며 이 장소를 거치는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약국 곳곳에는 독서에 대한 정문영 약사의 열정이 드러난다. 약국의 책장에는 처방을 위한 의학서적 뿐만 아니라 그녀가 실제로 즐겨 읽는 책들이 비치되어 있어, 그녀의 메모로 가득한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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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장소는 걸핏 딱딱할 수 있는 책이라는 소재가 현대인의 생활공간 속에 스며들어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 공간들에는 두 가지 공통된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대중에게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상 매체들과 비교하여 책은 아날로그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책이라는 이미지만으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일종의 신뢰를 형성해준다. 독서는 충분한 에너지를 들여 적극적인 태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서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는 다른 관계에 비해 진솔하고 심지어는 무해하다는 느낌을 가진다. 각 장소의 아늑한 인테리어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간적인 유대감이 싹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책은 출판의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전달되었을 때, 단순한 정보 전달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룩된 이 사회에는 다양한 매체 속에서 정보가 범람하고 있다. 출판물로서의 책은 다른 정보들이 가지지 못한 고유한 특성이 있다. 종이책은 출판업 종사자들로부터 신뢰성을 보장된 정보를 탑재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독서 행위를 통해서 개개인에게 고유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를 통해서 정보화 사회의 흐름으로부터 독립적인 새로운 공간들이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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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의 현주소


 

이번호 <출판저널>에서는 특집 좌담으로 책문화생태계에 대해 고찰한다. 매거진의 구성을 보았을 때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의 책문화에 대해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 좌담에서는 국내 출판업 종사자들과 출판학 전문가들이 모여 출판시장과 독서문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독서율이 낮아지는 원인에 대한 분석이라든가 초·중·고 차원에서의 대책, 출판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해결책 등 오늘날 우리 출판문화의 실태를 이해할 수 있다.


처음 이 좌담을 천천히 읽어 보았을 때, 좌담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심지어 주변사람들보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도 좌담에서 다루는 내용 중 일부는 아예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중의 독서문화라는 것 역시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좌담의 내용은 교육계와 독서문화의 연관성에서부터 시작한다. 중고등학교의 커리큘럼이 독서의 능력과 무관한 입시에 맞추어지며 청소년기에 책을 읽는 경험을 하기 힘들다. 당연히 이러한 교육을 거친 사회구성원들에게 독서는 중요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출판 시장은 책과 출판에 관한 나름의 철학과 정신을 갖추지 않고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도서 콘텐츠가 부실하고, 정부에서도 영상, 게임 등의 매체에 비교하여 출판계에 대해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얽혀 “책문화”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출판시장이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누군가를 탓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출판시장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종이책이 유일한 정보의 창구였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매체들이 탄생한 영향도 크며, 이 위기는 단순히 대한민국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걸 반드시 ‘문제’라고 인식해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출판학과 출판시장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분명한 위기이다. 그러나 거시적인 현상으로서, 이는 “텍스트”의 사고방식으로 지식을 축적한 인류가 지식의 플랫폼을 디지털 미디어로 이동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책을 읽지 않는 인간은 책 이외의 수단으로 새롭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이전 인류의 사고방식을 잃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습득하는 과정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가능한 여러 가지의 사고방식 중 하나를 잃는다는 것은 분명 유의미한 손실에 해당하며, 이를 지킬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출판시장이라는 것은, 인류의 유구한 정보체계 중 하나인 ‘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하나의 공동체이다. 텍스트는 그 특유의 체계로 사고한다. 이와 같은 방식의 사고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소중한 도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출판저널>은 ‘책’이라는 도구가 담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지키는 사람들의 소중한 기록이라고 말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출판저널>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생각해봐야할 가치들을 담고 있는 매거진이다. 글은 개인의 지식이나 사상으로부터 완성되지만, 완성된 글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떠한 유통구조를 통해 전달되며 이 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책이라는 대상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진 채로 이 글을 맞이하게 될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은 가치가 있더라도, 출판문화나 책문화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신의 글이 적절한 기능을 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갖가지 이유로 글을 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출판저널>을 통해 책이 유통되는 구조를 이해하고 우리나라 출판시장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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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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