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하지 않으면 재미없는 청춘인가요 [사람]

해외 생활을 열망하지 않는다는 것
글 입력 2020.02.29 21: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pexels-photo-346885.jpg

 

 

최근 SNS를 보다가 읽게 된 의미심장한 글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과대평가하는 것 두 가지는 연애와 여행이다.” 이 말뜻을 독해해 보자면, 곧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애와 여행을 즐기지 않으면 마치 인생을 헛살고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는 의미가 되겠다. 이때 만약 내가 이 두 가지를 누구보다도 성실히 즐기는 유형이라면 전혀 공감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결국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두 가지 중에서도 바로 여행이다. 타인과의 사랑과 결혼이 필수가 아니게 된 요즘 세상에서, 연애는 신념에 따른 선택사항 중 한 가지가 되었을 뿐인데 반해 여행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섣불리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 혹은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문제 있는 사람처럼 바라보는 것은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행동이 되었지만, “젊을 때 배낭여행 안 가면 후회한다.” “유럽여행 한 번쯤은 대학생 때 꼭 가 봐야 해.” 등등의 말은 아직까지도 너무나 쉽게 들려온다.

 

물론 어느 정도 동감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국적인 어딘가에서 찍은 화려한 인생샷들이 점령한 지인들의 SNS를 보며 부러운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러나 내가 부러움을 느꼈던 것은 그들의 경제력보다도 행동력이었다. 어딘가에 가고자 하는 열망을 원동력 삼아 어떻게든 돈을 모아 비행기표를 끊고 계획을 짜고,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길을 물어물어 어딘가로 향하는 바로 그 행동력 말이다. 성인이 되고 주어진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도 내가 한 번도 배낭여행을 꿈꾸지 않은 것은 내게 그러한 열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pexels-photo-2087391.jpg

 

 

그러나 이러한 부러움은 동시에 일종의 불안감이기도 했다. ‘남들이 넓은 세상에서 유의미한 경험을 하는 동안 나는 좁은 한국에서 시간 낭비만 하고 있는 걸까?’ ‘왜 나는 그런 일들을 추진할 만한 의욕이나 열정이 없지?’ 그래서인지 대학 생활이 2년가량밖에 남지 않은 지금, 교환학생이라도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남들과의 비교에서 시작된 조급한 등 떠밀림에 불과했다. 그래서 결론도 명쾌하지 못했다. ‘나중에 해외 생활이 하고 싶어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따지고 보면 나에게 해외, 외국이란 설렘보다는 낯섦이 앞서는 세계였다. 나는 그 까닭이 내 성격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근원을 숙고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소극적인 사람도, 밖을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절친한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간에 누구든 만나 대화를 이끄는 것을 좋아하고, 또 새로운 구경거리를 반가워하는 사람이었다. 도전을 그다지 두려워하는 편도 아니었다. 무엇이든지 일단 시도해 보면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여기곤 했으니 말이다.

 

이런 내가 자유로운 해외 생활에 거리낌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답이라고 여겨지는 기억을 찾아냈다. 그 기억은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살이었던 나는 엄마와 언니, 내가 아버지의 직장 생활을 따라 미국에서 1년 동안 생활해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버지의 직장 동료 중에서는 다른 가족들을 한국에 남겨 두고 홀로 떠나시는 분도 계셨지만 우리 네 가족은 절대 떨어질 수 없었으므로 온갖 가방에 짐을 싸들고 다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wing-plane-flying-airplane-62623.jpg

 

 

그리고 얼마 전,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언니와 대화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의 나는 걱정은커녕 설레 보였다고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버텨야 할 학교생활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어도 난 별생각 없이 디즈니랜드에 빨리 가보고 싶다고만 대답했단다. 참으로 속 편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다지 두렵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예상처럼 쉽지 않았다. 그곳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유일한 아시아인은 나와 언니뿐이었다. 지금과 다르게 유독 방어적이었던 나는 낯선 곳의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몇 명의 백인 여자아이들은 나를 따돌려 학교에 가기 싫다며 아침밥을 먹다 울기도 했다.

 

물론 그때의 경험 중에서는 다시 겪지 못할 소중한 추억들도 수없이 많다. 그때만큼 여행을 질리도록 한 적도 없고, 네 가족이 작은 아파트에 돈독히 뭉쳐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갖가지 기억들도 생생하다. 그러나 이런 좋은 추억들과 마찬가지로 그때 안게 된 작은 상처 역시 마음속 한구석에는 여전히 남아 있었나 보다. 물론 좋든 싫든 1년을 버텨야 했던 그때의 상황과 즐거운 취미생활일 뿐인 해외여행을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내가 해외 생활을 그다지 꿈꾸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로는 나름대로 타당하지 않을까.

 

결국 나는 내 속마음보다도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에만 집중했던 셈이다.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해외 생활을 갈구하지 않는 것이 마치 잘못된 일인 양, 내 의욕이 부족해서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생기는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고들다 보니 다른 문제가 있었음을 짚어냈다. 오래전의 편치 못했던 기억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회가, 미디어가, 혹은 주변인들이 아무리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해도 내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나는 전혀 인정하지 못했다. 다들 맞다고 말하는 것이 그냥 맞는 줄로만 알았고 모두가 치켜세우는 일에 내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나의 문제로 치부해 버렸다. 결국 내가 구분 지어 버린 경계선 바깥에서 내 솔직한 마음은 무시당했고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명쾌하지 않은, 어물쩍 질문을 앞날로 미뤄 버리는 미련한 결론이라고 여겼던 ‘나중에 해외 생활이 하고 싶어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가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완벽한 답변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마음을 1순위로 고려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식상하기 그지없는 구절을 연상시키는 뻔한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구절이 식상한 까닭은 그 말뜻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테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이 곧 내 마음을 위한 기다림인 셈이다.

 

이제는 내 머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내 마음을 채찍질하지 말아야겠다. 그저 나만의 계기가 내 마음을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 줘야겠다. 그리고 내 감정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검열받으려 하지 않아야겠다. 한시의 감정이 순간 올바르지 않을 때가 있기야 하겠지만, 그 감정이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지는 말아야겠다. 순간의 감정들을 붙잡아 솔직한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더 중요할 테니 말이다.

 

*

 

언젠가 내 마음속에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감정이 싹트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회의적인 감정을 덮는 때가 온다면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분위기에 휩쓸려 내 진심과 평행하지 않는 선택지를 택하는 것보다야 가치 있는 경험을 마주하지 않을까.

 

 

 

컬쳐리스트유수현.jpg

 


[유수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