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로나19, 우린 누굴 욕해야 하나? [사람]

감염 경로와 함께 확산된 냉기
글 입력 2020.02.28 17:2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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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작가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선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의 질병으로 시력을 잃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백색 질병’이라 불리는 이 병은 접촉하지 않아도 옮길 수 있는 막강한 전염성을 지닌 채,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 일반 성인을 비롯해 노인, 아이까지,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은 없었고 이내 사회는 급속도로 황폐해진다.

 

주제 사라마구 작가는 이 무시무시한 사회의 실상과 사람들의 공포심을 아주 솔직하게, 가감 없이 묘사한다. 이를 읽고 있노라면 작가 본인이 실제로 겪은 일인지,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눈이 멀진 않을지 등과 같은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소설 속 세상이 아무리 무섭게 전염됐을지라도, 이는 한낱 판타지인데 말이다. 그런데 요즘엔, 내가 책에서 느낀 판타지가 어쩌면 사회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한폐렴 혹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처음엔 ‘실시간 검색어’,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던 이 키워드는 어느새 ‘코로나19’라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이는 책 속에 등장하는 ‘백색 질병’과 비교하면 가볍게 느껴질 수 있으나, 타인에 쉽게 전염된다는 특성과 백신이 없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꽤 심각한 감염질환이다.

 

처음엔 서울 및 수도권 중심으로, 해외 경력이 있는 소수에게만 퍼졌던 코로나19는 어느덧 전국에 확산돼, 그 확진자가 약 2,000명(2월 28일 기준)이 넘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백화점, 영화관, 은행, 식당 등 확진자들이 다녀간 곳곳이 폐쇄됐으며 늘 활기를 보였던 놀이공원, 시내 중심은 한산한 모습을 띠고 있다.



‘길을 걷다가 자기 쪽으로 다가오던 사람의 표정에 갑자기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보곤 했다. 곧 그 얼굴에서는 지독한 공포의 모든 표시들이 나타났다’

 

- 눈먼 자들의 도시, 177p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언제 눈이 멀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타인으로부터 적대감을 가진다. 누군가에 대한 온정이나 유대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는 어쩌면 전염병에 대한 공포감과 더불어, 하나의 생존본능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공포와 본능으로부터 나온 혐오감은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 사이에선 중국인을 혐오하는 이른바 ‘혐중’ 정서가 극대화됐다. 코로나19의 발병지가 중국 우한시의 한 수산물 시장이었고, 그 발병 원인이 시장에서 판매된 박쥐 요리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가 박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중국을 향해 화살을 던졌고, 더 나아가 일부 중국인들의 특이한 식성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과거 국내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저 기이한 음식이라고 소개됐던 중국인들의 박쥐 요리는, 순식간에 원흉이 되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19의 확산 초기 당시, 한국에 있는 중국인들은 길거리를 지나가기만 해도 따가운 눈빛을 받았다. 이들이 보균자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발병 전부터 한국에 있었던 사람들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중국인에게 던졌던 화살은, 이제 방향을 바꾸어 정치인들과 일부 확진자에게로 향했다. 화살의 형태는 특정 확진자에 대한 악성 댓글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원으로 이어졌다. 이는 대안과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이 사태의 원인을 전가하기 위한 태도임이 분명했다. 엄중한 비판이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무자비한 비난이었다.



‘소란을 틈타 몇 사람이 식량 상자를 빼돌렸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가져갈 수 있는 만큼은 다 가져갔다. 분배에서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모든 불의를 넘어서는, 노골적으로 신의를 저버린 행동이었다’

 

- 눈먼 자들의 도시, 151p


 

모두의 혼란, 그 혼란 속의 공포를 기회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감염의 확산으로 마스크 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몇몇 사람들은 마스크를 사재기한 후 중고시장에 비싼 값으로 내놓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유튜버는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는데도, 확진자인 척 행세하는 영상을 유포해 조회 수를 높였다.


이들 때문에 필요한 마스크를 얻지 못하고, 괜한 공포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개할 수밖에 없다. 또 한편으로는 현재 위기 속에서도 실익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감염 경로에 따라 냉기도 함께 확산되는 것일까.


 

주석 2020-02-28 173118.png

 


하지만 다행히 아직 사회의 온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국에서 고군분투 중인 의료진들을 비롯해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얻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꼭 기부가 아니더라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도왔다. 이러한 노력은 사람 한 명 다니지 않는 공간에 조금이나마 활기를 불어넣었다.

 

코로나19는 언제쯤 말끔히 종식될 수 있을까? 아직 미지수의 상태이지만, 분명한 점은 서로를 끊임없이 탓하고 이용하는 것으로 이 사태는 진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속, 앞을 보지 못하는 주인공들은 서로의 어깨를 지팡이 삼아 길을 걷는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는 기꺼이 눈먼 이들의 눈이 되어준다. ‘의사의 아내’ 또한 눈먼 사람들로부터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들이 주고받는 선한 영향력은 위기를 직접적으로 해결하진 못하지만, 이를 더 강인하게 버틸 수 있도록 한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 또한 ‘선한 영향력’일지도 모른다. 특정인을 향한 화살보다 고생하는 의료진에 대한 지지, 함께 극복하려는 의지가 우선되어야 한다. 무섭고 막막한 이곳에서 서로의 어깨가 되어주면서.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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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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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오늘
    • 맞습니다. 불안이 혐오라는 이름으로 변질되는 현 상황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사람들간의 차별,혐오,폭력이 더 위협적으로 작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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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남원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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