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짜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 -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인간의 '믿음'을 이야기하다
글 입력 2020.02.24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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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표면적으로 ‘누가 표도르 까라마조프를 살해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표도르의 네 아들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다혈질이고 정열적인,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순정을 가진 장남 드미트리와 철저한 무신론자이자 합리주의적인 이반,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독실한 신자 알료샤, 그리고 사생아로 취급되며 하인으로 일하는 병약한 청년 스메르쟈코프. 네 아들 중 누가 아버지를 살해했을까? 극이 절정을 향해 갈수록 서로에 대한 네 형제의 의심은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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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제의 갈등을 바라보며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누가 표도르 까라마조프를 살해했을까?’에 대한 답을 찾는 표면적인 소재 외에도 인간 본성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둘째 아들 이반과 셋째 아들 알료샤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던 인간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해보려 한다.

 

극의 초반, 둘째 아들 이반과 셋째 아들 알료샤는 표도르와 유산 문제로 다투다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공언하고 다녀 유력한 용의자로 수감된 드미트리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드미트리의 말을 믿어주는 알료샤와 달리, 이반은 모든 증거가 드미트리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며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진짜 드미트리 형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해?”라고 묻는 알료샤에게 이반은 차가운 웃음으로 답한다. “무수한 증거들이 드미트리가 살인자라고 말해주고 있어. 드미트리가 살인자인 이유는 그 살인의 증거들 때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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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한다. 합리주의적인 이반은 철저한 무신론자인 반면, 알료샤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독실한 신자다. 이반은 “네가 신을 믿는 증거는 대체 어디 있지?”라고 묻는 말에 알료샤는 단호하게 답한다. “믿음에는 근거가 필요하지 않아.”

 

이반은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믿는 알료샤를 비웃으며 한 소년이 실수로 한 장군의 사냥개에 상처를 입히자, 그 장군은 소년을 잡아 옷을 벗기고 사냥개들에게 그 소년을 향해 달리라고 명령하여 개들이 그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소년을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는 일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서 알료샤에게 묻는다. “이 장군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알료샤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도 하지 못하며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료샤는 믿음은 더욱 거칠게 흔들린다. 신과 선의지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과 그 믿음에 반하는 눈에 보이는 근거들 사이에서 알료샤는 치열하게 갈등한다. 그리고 결국 드미트리를 찾아가 그의 결백에 대해 다시 묻고, 드미트리는 흔들리는 알료샤의 눈빛에서 자신에 대한 불신을 발견하고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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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반 역시 흔들린다. 자기 내면의 악마와 말다툼을 하고 스메르쟈코프와의 대화를 통해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지 확인을 한 후, 이반은 알료샤에게 다시 한 번 질문한다. “그 장군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 두 번째 물음에서는 알료샤의 근거 없는 믿음을 비꼬는 말투가 사라진다. 대신 간절하게 그 장군이 구원받을 수 있길 애원하는 이반의 마음이 담긴다. 그리고 그 애원에 알료샤가 “아니, 그 장군은 사형이야”라고 답하자, 이반은 무너져 내린다.

 

두 형제를 보며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오세혁의 연출이 기획의도에서 언급했던 말이 떠올랐다. “초연에서는 서로의 생각과 말이 전염되어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에 집중했다면, 재연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말과 생각을 지켜내려고 끊임없이 투쟁하며 진짜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신과 선의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던 알료샤가 점차 드미트리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는 모습과 ‘근거 없는’ 신은 믿지 않는다고 수없이 단호하게 말하던 이반이 간절하게 구원을 애원하는 모습이 두 형제가 자신의 말과 생각을 지켜내려고 끊임없이 투쟁하며 진짜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이 아닐까.

 

 

*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 The Brothers Karamazov -



일자 : 2020.02.07 ~ 2020.05.03


시간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시, 7시

일 2시, 6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자유극장


티켓가격

전석 60,000원


주최/기획

과수원뮤지컬컴퍼니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컬쳐리스트 명함.jpg

 

 

[김태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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