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신화를 부수고 나온 여신들 -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그리스 신화를 재해석한 페미니즘 입문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글 입력 2020.02.2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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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년배들, 그러니까 90년대생이라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생소한 사람들은 많이 없을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은 지금처럼 보고 즐길 것이 차고 넘치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콘텐츠들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만화책 시리즈였다. <ㅇㅇㅇ에서 살아남기>, <ㅇㅇㅇ에서 보물찾기>, <메이플 스토리>, <마법천자문> 등 만화책들의 신간이 나오면 하나씩 사모아 책장에 꽂아 넣는 것은 그 당시 많은 초등학생들의 취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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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그중 사랑, 질투, 배신, 복수 등 초등학생에게는 꽤나 자극적인 내용들부터 예쁜 그림체까지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던 홍은영 작가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 당시 베스트셀러이자 동시에 스테디셀러였다. 안타깝게도 20권 즈음부터 작가가 바뀌며 급변한 그림체로 수많은 초등학생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며 잊히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렸을 적 재밌게 접한 신화는 이후 접하게 되는 여러 문학 작품, 미술작품, 영화 등에 숱하게 차용되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읽어보는 그리스 로마신화는 어딘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완전 ‘막장’인 건 둘 째 치고, 신들의 왕이라는 제우스는 허구한 날 사랑에 빠졌다며 인간부터 님프와 여신들까지 다 겁탈하고, 헤라는 질투에 사로잡혀 제우스가 아니라 제우스에게 겁탈당한 여자들을 벌하고 다닌다.


위엄 있게 등장하는 다른 남신들과 달리 여신들은 헛된 정념에 빠져 있는 것처럼 그려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거기다, 메두사나 판도라 같은 여성 캐릭터들이 재앙의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메두사는 포세이돈에게 겁탈 당한 이후로 모습이 그렇게 변한 것이고, 판도라는 제우스의 계획대로 만들어진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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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산치오 - 신들의 회의

 


신화란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던 인간들이 만들고 전했던 이야기이다 보니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레 반영된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귀족 성인 남성에게만 참정권을 주었던 강력한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였기에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신화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 들었던 신화 수업의 교수님께선 이러한 고전 신화 텍스트들을 현대적 시각으로 비판적 독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저 비판적 독해를 하는 것만으로는 영 부족한 느낌들이 있었는데, 여기 창작집단 LAS가 이런 가려운 구석을 긁어주는 연극으로 돌아왔다.


 

시놉시스

 

제우스의 명으로 올림포스의 12신이 소집된 날. 모임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게 된 헤라와 아프로디테, 그리고 아르테미스.


과거 아름답고 도도하기로 유명했지만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에 질투의 화신으로 전락한 헤라, 사랑의 여신으로 불리며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지만, 실상은 매일 밤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욕정의 여신 아프로디테,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오리온을 깊이 사랑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가벼운 참견으로 시작된 세 여신의 대화는 점차 서로에 대한 비난으로 변해가며 숨겨진 진실들이 드러나는데...


본인의 능력을 꽃피우지 못하고 남편 뒤만 쫓는 한심한 여신이 되어버린 헤라, 진실한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 색을 탐하는 데만 집중된 아프로디테, 본인의 욕망을 접어둔 채 처녀임을 고집하고 집착하는 답답한 아르테미스. 서로를 비난하던 그들이 마주하는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과연 비난의 칼날을 거둘 것인가?

 


페미니즘 입문극이라고도 소개가 되고 있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고전 텍스트인 그리스 신화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여 풀어낸 공연이다. 올림포스의 12신들 중 왜 하필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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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포스의 12신들은 모두 각자가 관장하는 역할들이 있다. 제우스의 아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헤라는 결혼 생활의 신이며, 아프로디테는 여성의 성적 아름다움과 사랑의 욕망을 담당하는 미와 사랑의 여신이고, 달을 상징하는 아르테미스는 처녀성과 순결을 맡고 있다. 결혼, 성적 아름다움, 처녀성과 순결. 이 세 가지는 모두 “여성성”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여성성의 상징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좀 더 손쉽게 남성 권력 체제 안으로 속박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까지도 이러한 여성성의 신화들은 끊임없이 재생산 되어오며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고 있다. 여성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버린 여성은 진실된 자신의 능력, 감정 그리고 욕망을 마주 보지 못하게 된다.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도 아름다운 여신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아래에 그들의 삶은 말라 갔을지 모른다.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이러한 이데올로기 재생산의 고리를 끊기 위해 이 세 여신들을 재해석하여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여성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신화 속에서 굳어져 버린 여신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여성으로서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에게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신화를 부수고 나올 여신들의 모습들이 기대가 된다.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 페미니즘 입문극 -



일자 : 2020.02.29 ~ 2020.03.29


시간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장소 : 콘텐츠 그라운드


티켓가격

전석 40,000원

  

주최/주관

창작집단 LAS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90분


 


 

 

창작집단 LAS

 

 

창작집단 LAS는 즐겁게 공연을 하기 위해 모인 젊은 예술가들의 집단입니다.

 

우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고 감각적인 표현력으로 무대화하려 노력합니다. 이는 연극, 문학, 무용, 음악, 미술, 영상 등 어느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 한층 진보된 무대언어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나타날 것입니다. 또한 이 시도가 관객들에게 생소하고 일방적인 소통방식으로 다가가는 것보다 이성적, 감성적인 공감으로, 신선한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놀이'에서 출발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연극은 놀이다'라는 개념을 잊는다면 우리가 시도하는 과정들이 결코 즐거워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즐겁게 공연하는 창작집단 LAS입니다.

 

 

 

이지현.jpg





[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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