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구차하고 찌질하고 궁상맞아도 - 찬실이는 복도 많지

글 입력 2020.02.19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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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구차하다고 느낀다. 찌질하다고 느낀다. 좋게 포장하면 세심하다는 건데 내가 생각하는 나는 작은 것에 예민하게 구는 귀찮은 부류다. 특히 연애하면 더 예민하게 군다. 메신저 답장시간을 따진다. 나는 곧바로 답하는데 왜 너는 그렇지 않은지. 그런 피곤한 생각에 열중이다. 별 것 아닌 일에 의미를 붙여서 확대 해석하고 상대의 반응을 확인하려 혈안이다. 내가 생각한 만큼의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내 못남을 되새긴다.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다.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면 자격을 따진다.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할만한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저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인지 묻는다. 나는 박탈감과 피해의식에 찌든 사람이고, 그것들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투사한다. 병적인 생각, 자존감의 결여. 이 찌질함을 정의하는 수많은 문장이 있지만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구차함이다. 나는 구차하다.


며칠 전 내가 구차하다고 말한 적 있다. 못나고 멍청하고 피곤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스스로를 깎아내리기만 하는 사람. 나는 내가 정말 그렇다고 느꼈다. 솔직하게 말한 것이었다. 어떤 친구는 오히려 그런 게 건강하다는 증명이라고 했다. 내가 어떻게 부족한지 아는 거니까. 다른 친구는 자기가 찌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찌질하지 않은 거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고맙기도 하고 좀 더 자신을 변호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삶도 찌질한 거 아닐까. 명확한 기승전결의 서사를 갖춘 경험보다 지지리 궁상에 지지고 볶고 내 바닥까지 보여준 경험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 그런 경험이 마음에 인장으로 남아 종종 환기됐다. 구차함이 내 삶의 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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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나는 구차한 인물이 등장하는 서사를 좋아한다. 배우들의 구차한 얼굴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오정세를 좋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정세의 얼굴은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인데 거기서 그는 추락과 상승을 모두 경험한 배우 역할이다. 그는 별 것 아닌 일에 질투하고 종종 열등감에 매몰돼서 자기 지위를 확인하려 들고 아무튼 찌질한 군상이지만 종국엔 자기 구차함을 받아들인다. 살아갈수록 계속 구차해질텐데 이제부터라도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쓸쓸한 듯 보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웠다.

 

내가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기대하는 것도 그런 것이다. 찬실은 자기 인생의 거의 전부였던 영화작업을 지속할 수 없다. 불러주는 이가 없다. 수상한 트로피의 이름을 되뇌며 자기 성취를 확인해보지만 그는 당장 영화와 무관하게 살아야 하고 다른 밥벌이로 생활해야 한다.

 

예고편에서 찬실은 “남자를 안아본 게 10년만”이라고 말한다. 울먹거린다. 그는 영화 말고 다른 것들이 개입하지 못하게 자기 인생을 꾸렸을 테다. 그만큼 영화가 좋았을 거다. “남자를 안아본 게 10년만”이라는 대사는 다른 인물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자기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10년 만에 삶의 다른 경로에 진입했음에 대한 환희나 후회의 언어라고 짐작한다.

 

시놉시스와 예고편만 접했지만 찬실은 구차한 인물처럼 보인다. 웃지 못하고 표현에 서툴고 현재 자기가 처한 환경이 자기가 원하던 그림은 아니었거다. 그러니 구차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구차하다는 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뿐이다. 태도가 우물쭈물하다는 것뿐이다. 삶은 흐르고 흐르는 것들은 모두 변하는데 떳떳하지 못하고 확실한 태도를 가지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거다. 나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구차함에 대해 변명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구차함을 사랑하자고 말했으면 좋겠다.

 

멋지고 예쁘고 잘나보이는 구도에서 자기를 조명하려 들지만 우리 모두 삶이 찌질하고 버겁고 구차한 성질임을 알지 않는가.


 


 


찬실이는 복도 많지

- LUCKY CHAN-SIL -


각본/감독 : 김초희
 

출연

강말금, 윤여정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장르 : 드라마

개봉
2020년 03월

등급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 9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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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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