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본 것을 네가 볼 수 있다면 [영화]

글 입력 2020.02.1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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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머리를 혼자 다듬고는 한다. 앞머리는 무난하게 정리할 수혼자서 자르는 것은 물론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은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내 뒷모습 어때?" 내 뒷머리의 안녕을 나는 모른다.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있다는 걸 우리는 종종 잊고 된다.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자신이 본 것 밖에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이 세상의 전부이고 진실인 것처럼 산다. 우리에게 맹점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이다. 세상의 전부는 커녕, 나의 뒤통수조차 어떤지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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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Hsi-Sheng Chen)와 샤오옌(Shu-shen Hsiao)은 일 년 중 가장 길한 날에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임신을 하고도 몇 달을 기다려 올린다. 하지만 마냥 좋은 일이 생기지만은 않는다. 아디의 헤어진 애인이 찾아와 소란스러워지고, 팅팅(Kelly Lee)은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간다. 때마침 옆집에 이사 온 리리(Meng-chin 'Adriene' Lin)라는 친구와 남자친구를 지켜보던 팅팅은 쓰레기 봉투 버리는 것을 잊고 만다. 한편 누나들의 짓궂은 장난에 삐친 막내 양양(Jonathan Chang)에게 아빠 NJ(Nien-Jen Wu)는 자신의 카메라를 건네며 달래준다.


할머니는 결국 아디의 결혼식 날에 쓰러지시고 만다. 혼수상태에 빠진 할머니에게 말을 걸기 위해 가족들은 각자의 사정을 간직한 채 할머니의 앞에 앉는다.


<하나 그리고 둘>의 원제 Yi Yi , A One And A Two의 'Yi Yi'는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하나 하나다. 일을 나타내는 한자의 한 획이 천천히 두 번 그어져 둘을 나타내는 한자가 되는 작은 부분조차 작품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 그리고 둘>은 당신이 아는 반쪽의 진실 하나와 나머지 반쪽의 진실 하나를 모두 담은 영화다.

 



나의 시선, 너의 시선 그리고 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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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자신의 머리를 찌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처럼 세상에는 나만 모르고 남은 아는 진실이 존재한다. 감독은 양양을 통해 '본다'는 것과 '시선의 간극'에 대한 화두를 계속해서 제시한다. 학교에 콘돔을 가져왔다는 이유로 혼나는 장면에서 양양은 선생님께 말한다.

 


"선생님은 듣기만 하시고 직접 보시지는 않았잖아요."



양양이 가져온 것이 콘돔이 아닌 풍선이라는 사실을 선생님은 모른다. 양양은 왜 내가 아는 진실과 다른 사람이 아는 진실은 다르고, 각자의 시선에서 보이는 것이 왜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각자의 눈에는 보이는 게 서로에게는 안 보이나 봐요.두 사람 다 보려면 어떡해야 하죠?우리는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앞만 보고 뒤를 못 보니까 반쪽짜리 진실만 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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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NJ는 양양에게 그래서 카메라가 필요한 거라고 답해 준다. 그 후로 양양은 카메라로 사람들의 뒷모습을 담기 시작한다. 스스로는 뒷모습을 보지 못하기에 내가 찍어서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영화는 양양의 사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앞만 보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현듯 뒷모습을 툭 보여준다. 감독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조화롭게 담아낸다. 그 모습에는 평소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까지 드러나 있다. 우리는 그런 맹점을 밝혀주는 영화들을 쉽게 잊지 못한다.



 

반영(反映)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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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간 카메라는 인물을 직접 담지 않는다. 인물들이 찍힌 CCTV 화면을 담거나, 인물과 카메라 사이에 유리창을 두거나, 창문에 반사되어 흐릿하게 비친 모습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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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하고 작은 인물들의 모습에 우리는 무심코 자기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 우리는 인생에서 한 번쯤은 양양이 되고, 팅팅이 되고, 민민 혹은 할머니의 입장이 되어 살아간다. 흐릿하게 반영된 인물들의 얼굴은 오히려 관객이 자신의 기억을 불러와 인물의 실루엣에 자신을 대입하게 한다. 그 순간 이 작품은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떤 장면이든 관객의 마음에 한 조각이라도 남게 되는 것이다.


감독은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탄생과 죽음을 게임과 연결 지어 보여준다. 태아의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며 컴퓨터 게임의 세계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깔린다. 컴퓨터 게임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이 그저 태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태아의 탄생과 게임 소프트웨어의 성장을 연결 짓는가 하면, 후반부의 살인사건을 게임 화면 속 캐릭터가 상대를 때리고 죽이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현재 컴퓨터 게임이 서로 때리고 죽이는 형태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오타의 대사는 이 폭력적인 게임 장면을 통해 증명된다. 실제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인간들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기에 컴퓨터 게임 역시 폭력의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감독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여겨지는 컴퓨터 게임 속에 인간의 삶을 투영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공존의 세계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처럼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면을 지니고 있다.


좋은 학교에 항상 들고 다니는 책까지, 팅팅은 겉보기에 흠잡을 데 없는 모범생으로 보인다. 하지만 리리와 남자친구의 관계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자기 때문에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죄책감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자신이 느끼는 부조리한 상황을 터놓을 곳은 쓰러진 할머니의 곁뿐이다.


엄마 민민은 의식을 잃은 할머니에게 얘기하면서 자신의 삶이 의미 없이 그저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고 절에 들어간다. 빈껍데기 같은 자신의 삶, 1분이면 끝나는 매일의 일상에 그는 지쳐 있던 것이다.

 

길일과 사주에 집착하는 아디는 한 해 중 가장 길한 날을 골라 결혼하지만, 어머니는 쓰러지고 전 애인은 결혼식장에 나타나 소동이 난다. 아이는 이름도 없는 채로 자라고 있고, 사주도 안 좋은 것 같다. 심지어 믿었던 친구는 돈을 받고 중국으로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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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팅은 리리를 그저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자친구인 '뚱보'와의 관계도, 엄마와의 관계도 불안정한 위태로운 아이다. 정직하고 가정적인 아빠처럼 보였던 NJ는 언제까지나 자신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던 남자였고, 일본에서 그녀와 데이트를 즐긴다.

 

각각의 인물들의 사정이 드러날 때마다 한편으로 씁쓸해진다. 모든 인물이 우리의 바람처럼 선하고 평화롭지 않다. 단적으로는 여성부를 후원하는 여성 편력을 가진 국회의원처럼 인물들은 다양하고 모순적인 양면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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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은 우리 생각과 다른 걸까요?이렇게 눈을 감고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요."



실제 세상이 내가 바라는 모습과 다를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눈을 감은 채로 세상을 살 수는 없다. 하지만 팅팅이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겨우 잠이 들 수 있던 것처럼 현실이 아닌 세상이 우리를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숨 쉴 수 있게 한다. 우리의 세상은 하나 그리고 하나가 모여 둘이 되듯이 내가 보는 세상과 내가 바라는 세상이 조화를 이루며 감싸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아프고, 지치고, 추하지만 때론 아름답다.



"나도 이제는 다 컸나 보다"



양양은 아직 이름이 없는 어린 사촌을 보며 성장을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성장과 노화 그리고 죽음은 그리 다르지 않다. 다른 듯이 보이지만 모두 연결되어 순환되고 있다. 결혼식과 장례식, 생명의 탄생과 살인 사건, 만남과 헤어짐.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혼재된 아름다운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게 해주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면 즐거울 것 같다는 양양처럼 에드워드 양(Edward Yang)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본 삶을 그려냈다. 언젠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불안하고 외로운 장면이 아닌 삶의 다른 장면을 마음에 담고 싶다. 생각보다 인생은 복잡하지 않다고, 별거 없다고 말할 날을 기대해 본다.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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