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냥 생존하고 싶지 않아, 난 살고 싶다고! - 월-E [영화]

불편한 사유와 철학이 필요한 이유, 영화 <월-E>
글 입력 2020.02.0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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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하철 안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대화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나 또한 버스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을 때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왠지 영화 <월-E> 속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월-E>에서 사람들은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를 떠나 우주선에 살고 있다. 고도로 발달된 첨단 기술 덕분에 우주선에선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해도 먹고, 자고, 노는 것까지 모두 다 할 수 있다. 모든 노동은 로봇이 대체했고, 바로 옆에 있는 친구와의 대화도 눈앞의 홀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진다.


의자는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선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고, 사람들은 그저 앞만 보며 앉아 있다. 편리하게, 잘 살기 위해 발명되었을 기술 덕분에 의자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스스로는 의자에서 떨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 앉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이들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가 처음 개봉하던 2008년에는 뚱뚱해진 채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단순히 영화적 표현으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은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조금은 섬뜩하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우리가 기술에 의존한 생존이 아닌 기술과 공존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또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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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는 지구에 홀로 남은 청소 로봇이다. 인간이 노동을 위해 만든 로봇이지만, 그 누구보다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로봇이다. 청소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자신만의 공간에 수집하고, 로맨스 영화를 보며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수백 년 동안 혼자 묵묵히 일했던 월-E 앞에 지구에 생명이 있는지 탐사하러 온 로봇 이브가 나타나고, 월-E는 이브에게 온 신경을 빼앗긴다. 월-E는 이브를 자신의 보금자리로 데려와 간직해왔던 수집품들을 구경시켜준다. 월-E를 경계했던 이브도 그의 수집품과, 손을 맞잡는 로맨스 영화 속 사람들을 보며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월-E는 우연히 발견했던 식물을 보여준다. 이브는 식물을 보자마자, 그 식물을 몸속에 보관하고는 전원이 꺼진 듯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놀란 월-E는 멈춰버린 이브에게 우산도 씌워주고, 함께 노을을 바라보고, 손을 잡으려 애쓰기도 하면서 애틋한 짝사랑을 이어간다.

 

월-E는 인간이 아닌 로봇이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소중히 여기고, 또 누군가에게 그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지녔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보고 행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월-E는 작동하는 게 아니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월-E는 멈춰버린 이브를 따라 우주선으로 향하고, 우여곡절 끝에 선장에게 식물을 전달한다. 우주선의 선장은 월-E와 이브가 가져온 흙과 식물을 보고 지구로 돌아가려 하지만, 선장실의 컴퓨터 로봇인 오토는 선장을 감금하고 방해한다.


 

“- On the Axiom you will survive.

 -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 여기에 있으면 생존할 수 있습니다.

 - 그냥 생존하고 싶지 않아, 난 살고 싶다고!”

 


아마 평생 의자에 앉아만 있었을 선장은 처음으로 스스로 발을 딛고 일어나 오토와 맞선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류 진화의 시작을 상징할 때 사용한 음악과 같다. 선장 또한 다시금 생존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일어섰다. 우주선 속 의자에 앉아만 있는 사람들을 다시 살게 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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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선을 따라 움직이는 우주선에서 월-E는 선을 넘고 길을 만든다. 그리고 주어진 선을 따라 움직이던 사람들과 부딪혀 사람들에게 선 밖의 세상을 보여주고, 의도치 않게 의자를 고장 내 홀로그램 밖의 세상을 보게 한다. 눈앞의 홀로그램만 보느라 주위에 수영장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메리’와 ‘존’은 서로를 보고 직접 대화하기 시작한다.

 

오토의 방해로 빼앗긴 식물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우주선 밖으로 나가게 된 월-E는 소화기를 이용해 비행한다. 비행 기능이 있는 이브는 월-E를 따라 나가 함께 비행하는데, 우주 속에서 춤추듯 함께 유영하는 월-E와 이브의 모습은 마치 예술 작품 같다.

 

월-E 덕분에 처음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된 메리는 월-E와 이브의 아름다운 비행을 목격한다. 그리고 지나가던 존을 붙잡아 함께 바라본다. 춤추는 월-E와 이브를 보며 손이 맞닿은 그들은 서로를 향한 좋은 ‘감정’,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각한다.



[크기변환]Space7.jpg

 

 

두 발로 일어난 선장은 오토를 제압하고 ‘지구 귀환 프로젝트’를 위한 장치를 실행시킨다. 기울어진 우주선에서 메리와 존은 서로 손을 잡고 아이들을 구한다. 모두 의자에서 내려오게 된 사람들은 서로의 손에서 손으로 식물을 전달해 장치 안에 넣는 데에 성공한다.

 

지구로 돌아온 사람들은 황폐한 풍경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다소 충격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선장과 사람들은 월-E가 지켜낸 작은 식물을 희망으로 다시금 지구를 생명의 땅으로 가꿔가기를 다짐한다.

 

하지만 월-E는 우주선에서 오토의 공격으로 크게 다쳤다. 죽어가는 월-E를 살리기 위해 이브는 월-E의 보금자리로 달려가 부품을 찾아 수리한다. 월-E는 살아났지만, 메인 부품이 바뀐 탓인지 이브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브가 월-E와 함께 본 로맨스 영화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잡자 기억이 돌아오고, 서로 얼굴을 맞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엔딩 크레딧마저도 인상적이다. 엔딩 크레딧은 미술사를 요약한 듯한 애니메이션으로 연출되었다. 황폐한 지구에 도착해 농사를 시작하는 인류가 로봇과 함께 문명을 다시 세워가는 모습을 처음에는 동굴 벽화로 시작해 이집트, 고딕, 유화, 점묘법, 인상파 등 회화의 역사적 흐름에 따른 그림체로 표현했다.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흐름에서 역행하여 우주선에서 그저 생존하던 사람들은 ‘인간다운’ 문명의 삶으로 다시금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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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의 사람들과 월-E의 차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움과 주변 상황을 인식할 수 있고, 취향과 주관에 따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산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서 700년 전 인류는 지구를 청소하는 데 실패했다며, 영원히 우주에 남는 게 쉬울 것이라 메시지를 남긴다. 하지만 선장은 그 메시지에 '쉽다고?'라고 반문한다. 그리고는 700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고 판단을 내려 수백 년간 따라왔던 오토의 명령, 즉 쉬운 길을 거부하고 지구로 돌아간다.

 

생존이 아닌 삶을 위해서는 사유의 불편함을 기꺼이 자처해 자신이 누구인지, 또 나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어진 길이 아닌 스스로 결정한 길을 가야 한다. 사람을 편하게 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을 만든 ‘사람’을 잊지 않는 사유가 함께 해야 한다. 영화에선 손을 맞잡는 행위가 중요한 메타포로 등장한다.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으며 형성되는 관계와 공동체, 연대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당연시되고, 학교에선 필수 과목으로 인문 교양보단 코딩을 가르치는 사회다. 기술의 발전을 외면하고 무조건 아날로그를 추구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과 사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도 함께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존이 아닌 ‘산다는 것’을 고민하고, 아름다움을 사색해야 한다.


타인과 손을 잡는 행위가 갖는 힘을, 그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월-E가 발견했던 작은 식물이 큰 나무가 된 것처럼, 그런 사람이, 희망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우주선의 사람들처럼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저 편하게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불편하게 사유하고 철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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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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