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설이 영화가 되는 일 Part 1 - 살인자의 기억법 [영화]

살인자에게 치매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글 입력 2020.02.0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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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영화가 되는 일



영화가 근대 예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소설은 영화의 참조점이었다. 서사 장르의 주도권이 영화로 이동해가고 웹툰이 영화 기획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지만, 검증 받은 이야기 장르로서 소설은 꾸준히 영화의 관심사이다. 소설의 영화화는 주로 ‘각색’으로 지칭되다가 기술의 발전과 플랫폼의 다양화에 따라 OSMU(One Source Multi Use)라는 프레임으로 설명되어 왔다.


원소스 멀티유즈는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가지 다른 미디어의 콘텐츠로 전환하여 활용함으로써, 적은 비용으로 부가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효율적인 마케팅 방식을 뜻한다. 효용의 차원에서 수익형 비즈니스 마케팅 전략을 명명하는 이 프레임은 문화콘텐츠의 경제적 가치는 부각하고 있지만 문화적 가치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또한, OSMU의 스토리텔링은 A라는 동일한 스토리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표현하는 방식으로 A라는 동일한 스토리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표현하는 방식을 일컬으며 각 미디어의 특성에 따라 일정 부분의 편집, 변형은 가능하나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동일하게 유지"4) 되는 방식, 즉 이야기의 반복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완득이, 살인자의 기억법 등) 영화와 소설 두 작품의 주제가 다른만큼, 상이한 주제를 생성하기 위해 동원된 스토리 라인도 역시 동일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실제 사례에서 나타나는 미디어 전환 스토리텔링 역시 원소스 멀티유즈의 개념과 거리가 있다면, 굳이 마케팅 용어로 소설의 영화화를 탐색할 필요는 없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은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프레임이다. 명명 자체가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전제로 미디어 간의 경계를 넘는 매체 전환의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트랜스란 가로지르고 초월하고 경계를 통과하는 과정으로, 전이하고 Transfer, 초월하고Transcend, 침투하고Trespass, 위반하는Transgress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미디어의 경계를 넘은 이야기가 동일한 스토리를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이야기의 변형과 확장을 적극적으로 탐색한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오늘날 '소설의 영화화'는 이와 같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해당 내용은 [정혜경 (2018). 소설의 영화화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살인자의 기억법을 중심으로. 국어문학, 67, 257-289]을 참고, 직간접 인용했음을 밝힌다.


이 글은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영화화한 사례를 살펴본 간단한 글이지만, 위의 논문에서 언급하는 대로 “현상을 어떤 프레임에서 설명하고 인식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소설의 영화화를 인식하는 바람직한 프레임을 제시하는 관점을 소개하고자 일부를 인용했다. 또한 작품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해석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출처를 밝혀둔다.




살인자에게 치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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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에게 ‘기억상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유리한 것일까 불리한 것일까.


먼저, 살인자에게 기억상실은 완벽한 알리바이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소설 속 내용처럼 오랜 시간동안 들키지 않은 완벽범죄의 형태라면 더욱 그렇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도 진술에서의 일관성을 유지하거나, 거짓말 탐지기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재 자신에게 혐의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그 기억을 잊는다는 것은 완벽한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 자부심이나 비밀의 폭로에 대한 욕망으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실수로 언급하게 될 일도 없을 것이다. 혹 이야기한다 해도 치매로 기억을 잃은 노인의 살인 이야기를 신빙성 있게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살인자에게 기억상실의 유리함은 양날의 검이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범죄를 알아차렸을 경우, 스스로를 치밀하게 변호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연속성이 끊어져 정체성을 상실하고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더욱이 소설에서처럼 과거에 살인자였고, 기억이 퇴행함에 따라 살인의 습관과 기억만 선명해져가는 상황이라면 스스로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혹은 살인자가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조각나고 빈틈이 숭숭 뚫린 기억을 가진 치매환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소설의 서사는 전적으로 치매환자이자 살인자인 김병수의 관점에서 사건이 전개된다. 우리는 치매환자인 김병수의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치매 환자인 그가 주장하는 대로 그는, 정말 살인자인가? 살인자가 맞다면, 지금 벌어지는 살인도 그의 행각인가?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소설의 서술방식에서 생겨나는 주인공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의 문제와 의문점(혹은 가능성)을 토대로 빈칸을 채워나가고 있다.




살인자에서 살인자 ‘아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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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가장 큰 변화는 서사구조다.

 

소설에서 박태주는 주인공 김병수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실제로는 박태주가 그를 추적하는 경찰이고, 그와의 사건은 모두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은희는 딸이 아니라 오래전 죽인 어린아이이며 요양보호사의 이름이다. 결국, 김병수는 치매로 인해 조각나고 상실되는 기억의 틈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살인자’이다.


반면 영화에서는 민태주(=박태주)와 딸은 실존하는 인물이다. 바람 핀 아내가 낳아 피가 섞이지 않은 딸이지만 김병수에겐 지켜야하는 소중한 인물로써 존재하고, 경찰이라는 지위 밑에 숨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민태주 역시 김병수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인물이다.


치매로 인해 조각나고 손실되는 그의 기억을 보며 그의 진술의 신빙성에 의심을 가지게 되지만 민태주가 살인자임을 암시하는 퍼즐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고 녹음기라는 소재를 통해 극적 순간에서 밝혀지게 된다. 영화감독은 소설 작품을 ‘허상을 지키려 노력했던 전직 살인자 치매노인의 이야기‘에서 ’치매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것을 위협하는 존재(살인자)로부터 딸을 지켜내는 전직 살인자 - 아버지'의 이야기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허상과의 대립이었다는 반전을 통해 여운과 충격을 주던 원작에 비해 해석의 여지가 줄어든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재해석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빈칸을 채워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에서 보여주는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대립구도는 익숙하고 명료해서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그것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원작 작품이 독자에게 선사하려했던 혼돈의 경험 또한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는 점도 영화의 강점이다. 즉, 원작의 기조와 장점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해석을 곁들임과 동시에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신경을 쓴 작품이라 하겠다.


캐릭터의 변화도 살펴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영화에서는 민태주와 성장한 딸 은희를 환상이 아닌 실제 인물로 등장시킴으로써 서사구조를 다르게 이끌어 가는 것이 가장 특징적이다. 특별히, 은희를 아내의 바람으로 임신되어 피가 섞이지 않은 딸로 조형한 것이 인상 깊다.


김병수라는 인물을 보다 명확하고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도 특징이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살인을 자행하는 인물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사건을 통해 쓰레기 같은 인간을 ‘청소’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로 만들었고 실제로 살해할 때는 나름의 이유가 부여된다. 유일하게 부끄러움을 느끼던 아버지의 살인을 가족들이 도왔던 부분도 혼자 방에서 살해하는 것으로 변형시켰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딸로 키워왔던 은희를 지키기 위해 민태주와 대립하는 과정을 통해 나름의 부성애를 강조하고 안타까움을 심화시키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오프닝으로 보는 살인자의 기억법



작품을 분석하는데 있어 오프닝 시퀀스는 빼놓을 수 없다. 작품의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그 역할은 아주 크다. 오프닝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작품이 앞으로 흘러갈 방향을 제시한다. 첫 문장(장면)은 단순히 처음 쓴 문장(처음 찍은 장면)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맨 앞에 배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첫 장면은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거나, 전체적인 주제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 영화에서 오프닝 시퀀스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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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김병수가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갈 때 나타나는 징조로, 원작 소설에서는 1인칭 진술로만 서술하던 상황을 시각적 언어로 탈바꿈하면서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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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하얀 운동화를 쳐다본다. 하얀 운동화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폭발해 살인하게 만드는 소재이다. 그러므로 하얀 운동화는 살인자라는 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장치이며 소설에서 “아버지는 나의 창세기다”라고 표현하는 그의 살인의 시작과 ‘청소’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자행하는 그의 동기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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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오프닝 시퀀스 바로 다음 장면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 경찰서에 간 장면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딸과 녹음기가 등장한다. 핵심 소재인 치매 이외에 녹음기와 딸이 사건을 끌어가는 중요한 소재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녹음기는 치매를 잘 표현하는 소재이다. 동시에 작품에서 딸과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소재이다. 또한 민태주의 정체가 밝혀지는 핵심 사물로 활용된다. 작품 전체를 살펴볼 때 원작보다 녹음기에 대한 에피소드가 초반으로 앞당겨져 있는 것은 분명히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과 흡입력있는 문체로 씌여진 소설이다. 기억상실 모티프는 흥미롭지만 클리셰가 된 소재이기도 한데, 치매와 살인자라는 설정과 결합시켜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소설 원작을 효과적으로 변주하는데 성공했다. 소설과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지, 매체의 특성과 서로의 작품을 참고해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글은 극장판을 기준으로 작성했다.  영화의 경우 극장판과 감독판의 이야기가 다르니, 세 작품을 함께 비교해 보시길 추천한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태그 김인규.jpg

 




[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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