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욕망에서 혁명을 상징하기까지 - 야한 영화의 정치학 [도서]

영화史에서 에로티시즘, 여성은 어떻게 다루어졌는가
글 입력 2020.01.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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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표현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이 있다. 표현을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사고를 외적으로 창조하고 그 결실은 예술 작품이 된다. 그중 몇몇은 명작으로 남겨져 후세대 사람들이 다시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예술 작품을 이루어낸 주제 중 성(性)을 빠트릴 순 없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능적인 사랑에 대한 주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여러 형태의 예술로 표현될 것이다.

 

그런데 때론 영화건 소설이건 성적인 묘사 및 장면이 등장할 때,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그러한 묘사 및 장면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위해 작품이 존재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물론 사람마다 예술과 외설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기준은 다르며 내가 특정 작품을 보거나 읽고 느낀 감상을 모두가 똑같이 가지지는 않겠지만, 굳이 작품의 진행에 있어서 불필요해 보이는 성적 표현 및 여성의 성적 이미지 대상화가 드러날 때 나는 종종 불쾌감을 느낀다.
 
위의 경우 외에도 내가 성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풀어내는 영화를 온전히 무난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최근 들어서 여성 주체적인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이어지고 있다는 점, 더불어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를 창조한 감독이 사실은 촬영할 때 여성 배우들에게 강압 혹은 계약에 명시하지 않은 노출 및 연기를 강요했다던가 하는 식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오는 고발 및 이야기들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노출에 관한, 정사 장면이 몇 분이네 하는 영화들의 홍보 글귀를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작품에 대한 흥미보다는 경계하는 마음이 앞섰다. 물론 노출이 있는, 성을 소재로 한 모든 영화에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지나친 일반화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아직도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과정 속 여성에 대한 존중의 부재가 만연하기에, 또한 이는 곧 예술 속 여성의 이미지를 고착화 및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기에 나는 항상 그런 작품들에 경계의 시선을 놓지 못했다.

영화사에서 에로티시즘의 재현에 대하여 시대별로 서술한다는 “야한 영화의 정치학” 소개 글을 읽은 후 바로 이런 책을 읽고 싶었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 조금 더 분명히 영화라는 장르가 지금까지 에로티시즘을 어떻게 풀어왔는지 또 각 시대 및 나라별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제한 및 이용됐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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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17년 동안 영화를 연구하며 자신의 연구적 정체성을 확립해준 주제는 영화와 검열이었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성적 재현 및 담론을 규제하는 다양한 기제가 저자의 연구적 관심사로서 영화사에서 시대별로 에로티시즘이 재현되고 억압받는 양상과 기제에 주목한다고 언급한다.


할리우드의 경우 종교 단체가 행하는 권력이, 한국의 경우 60, 70년대의 독재 정권하의 영화 검열 시스템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며 통제했는데, 저자는 책에서는 이에 대한 에피소드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통제가 만들어낸 것에 대하여 서술할 것이라고 말한다. 즉 검열이라는 억압이 생산의 근거가 되는 아이러니한 예시들, 금기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 및 방식을 설명할 것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성 현대사의 흐름을 조명하는 지표로 읽을 수 있는 영화 작품들 및 영화 경향을 소개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총 6장으로 시대별로 나누어져 있다. 1장에서는 1950년대 이전의 고전 영화 및 무성 영화들의 성적 금기가 어떻게 암시되었는지를 분석한다. 1910년대 미국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후 피임지지 운동이 시작되며 이가 당대 영화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사례 및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 등을 소개한다.

 

2장에서는 혁명의 분위기가 휩쓸었던 1960년대 각 나라 별 영화의 대표작 및 당대의 인물들을 분석한다. 한국 영화에서는 독재정권 치하에서도 영화사에서 황금기를 기록했던 사례로 전쟁의 폐해로 인한 욕망을 소재로 한 영화 "산불"과 같은 작품을, 할리우드에서는 관습을 거부하는 젊은 영화감독들의 탄생 그리고 1장에 이어 히치콕의 다른 작품들에서 비치는 성적 상징성에 대해서도 조명 및 분석한다.

 

3장에서 저자는 1970년대의 키워드는 ‘억압’과 ‘해방’이라고 소개한다. 당시 한국은 유신정권 아래 사회 전반적인 폭압적 규제가 시작되었으며 영화계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대폭 강화되는 규제 속에서 산업화 시대에 가난한 젊은 여성이 성적 피해자로 착취되는 호스티스 장르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일본 내에서는 보수 세력이 집권하며 당대 한국과 일본의 대표 감독들의 작품에서는 패배주의가 짙어진다. 반면 검열제가 없어지고 표현의 자유를 얻어낸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속 성, 인종, 종교에 대한 표현이 자유로워진다.

 

4장에서는 1980년대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미국 슬래셔 영화에서 여성의 성이 그려지는 경향을 분석한다. 더불어 당시 한국에서는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에로영화가 전성을 맞이하며 그와 함께 개봉한 당시 대표작들을 소개한다. 70년대 호스티스 장르가 계속 이어지며 스크린 속 여성은 욕망의 대상으로만 묘사되거나 희생 서사의 재현으로 이용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당대 한국 공포 영화 속 처녀 귀신 등 여성 캐릭터를 소개하며 공포 영화가 여성이 능동적인 역할을 갖출 수 있는 유일한 장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한다.

 

5장에서는 앞선 시대들보다 더 다양화된 욕망을 다루는 1990년대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여성 감독이 그려낸 극의 중심에서 여성 캐릭터가 욕망의 주체로 자리하는 이야기 및 “드라큘라”와 같은  고전 문학들이 영화로 재해석되며 일어나는 변화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2000년대 이후의 개봉작들을 소개한다. 6장에서 소개하는 영화들은 성을 때론 지지부진한 일상 중 하나로, 금기에 맞서는 혁명의 일환으로 표현한 작품들 및 남성의 시선에서 대상화되었던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극의 중심에서 주체적으로 이어가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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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책에서는 시대별 한국과 할리우드, 일본의 영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각 나라에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영화 제작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각 검열 및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제작자들은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이어지는 설명은 왜 이 책의 제목이 “야한 영화의 정치학”인지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국내외의 영화들에 대한 소개 중 내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한국의 70, 80년대 독재정권 시기에 제작된 호스티스 장르 영화들이었다. 당시 산업화 시대의 병폐,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 여성들이 겪는 성 착취 및 인권 유린에 대한 문제를 현실적으로 투영했다고 하나 호스티스 영화의 주인공들이 죽음으로, 그것도 잔혹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결말은 당대 현실을 투영하려는 의지보다 저자의 표현대로 “밝히면 여자는 다 죽는다.”라는 표현을 성실히 이행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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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벽 속의 여자"
 
 
국내 70년대, 80년대의 호스티스 장르 영화들에 대한 글을 읽으며 이전에 내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던 “벽 속의 여자”를 떠올렸다. 영화가 개봉했던 1969년 당시 서울지검 음란성범죄 특별단속반은 영화에 나오는 성관계 장면을 문제삼아 "벽 속의 여자"에 음란죄를 적용했다. 영화는 약혼자가 사고로 성불구가 된 후, 허 선생이라는 유부남과 관계를 가지는 미지라는 주인공이 결국 약혼자와 허 선생 두 남자를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영화 자체를 웰메이드라고 하기에는 몇몇 부분에서 허점도 존재한다. 그러나 “벽 속의 여자”보다 시간이 더 흘러 제작된 호스티스 및 성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의 줄거리와 결말에 비교했을 때, 극중 여성이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파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선택한 주인공을 그려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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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에 소개된 “피의 연대기”는 할머니와 어머니, 딸들, 그리고 저 먼 외국의 젊은이들이 함께 자신들이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는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생리는 여성으로 태어난 경우 지극히 자연스러운, 매달 겪는 신체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대놓고 말하기 민망한 주제로 분류되어왔다.

 

혹자는 “피의 연대기”를 앞서 책에서 소개된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봤을 때 이를 “야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성의 시선에서 생리를 낯선 것을 넘어 야한 것으로 여기는 몰이해가 아직 남아 있는 현 세태와 더불어 책에서 언급된 대부분 작품들이 남성의 시선에서 여성의 대상화를 표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피의 연대기"와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피의 연대기”도 남성 중심의 서사 속 이미지에서 주체적 인격으로서 오롯이 여성의 이야기로 스크린을 채운 영화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은 궁극적으로 여성의 몸과 성의 역사이자, 인간의, 혹은 가부장 중심의 문명이 그것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한다. 덧붙여서 더 나아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해결책은 적지 않았기에 이 책은 그에게 서막일 뿐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영화의 시작에서 현대까지의 흐름에 대한 기록이자 동시에 앞으로 영화가 나아갈 길에 대한 서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의 영화史는 어떻게 채워질까? 더불어 성적인 주제의 영화 및 여러 형태의 예술을 일구기 위해 누구도 상처받는 일이 없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날이 올 것인가?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그를 이루기 위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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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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