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자기PR”이 “#자기학대”가 되는 시대 - ‘인스타 걸’

"#좋반" "#맞팔"이 불러 일으킨 자기 파멸을 이야기하다
글 입력 2020.01.0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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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걸.png

 

 

 

1. 기만의 연속, ‘인플루언서’에 담긴 무형의 폭력


  


언제 어디서든 최고의 상품이 되어야 했던 여자는 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열 손가락 날을 세워 손톱들을 파괴했다. 깨지고, 부러지고, 갈라지고, 찢겨 나가도,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처음 가비에게 손톱 손질을 받으러 왔던 그때처럼.

 

단 몇 분 간, 그 숨 막히는 광경 앞에서 가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완전히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툭 떨어졌다. 액정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 소리에 진주가 뒤돌아 가비를 쳐다봤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까만 눈동자. 의문스러운 기시감. 그녀를 둘러싼 소문들. 사람들의 기대와 환상.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지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빚어낸 완벽한 신기루가.” (p178.)


 

‘가비’는 강남구에 위치한, 결코 고급스럽다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의 네일샵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매달 월급은 월세를 내고 변변찮은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쓰기만 해도 금방 동이 나기 마련이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녀가 눈이 반짝거릴 때는 핸드폰 속 인스타그램을 들여다 볼 때다. ‘진주’라는 인스타그램의 유명 인플루언서를 동경하며 그녀가 업로드하는 게시물마다 좋아요를 누르기 바쁘고, 그녀처럼 인생을 화려하게 살아보는 것이 꿈이라고 소망한다.

 

어느 날, 거짓말처럼 진주가 그녀가 근무하는 네일샵에 네일을 받으러 온다. 그때 진주의 손톱은 가비의 묘사에 따르면 열 손가락의 손톱 모두가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진주는 자신의 반려견 때문에 손톱들이 그렇게 망가졌다고 말했지만 가비는 어딘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그렇게 신기루처럼 그녀가 네일을 받고 사라진 후에 진주의 세 친구들이 가비의 네일샵에 찾아온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진주는 우상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세 명 각자가 진주에게 표출하는 감정들의 형국은 다양했지만, 그 와중에도 공통점은 있었다. 세 명 모두 진주의 아름다운 외형과 재력, 완벽한 학력과 사람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를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진주가 어디에서 네일을 받았는지를 엄청난 검색 능력으로 알아내서(정확히는 진주가 올린 게시물에 가비가 작성한 댓글을 찾아냈을 것이다. 유명 인플루언서인 만큼 수백, 수천의 댓글이 달렸을 텐데 그 와중에 가비의 댓글을 찾아내리란... 엄청난 인내심을 요할 터다.) 가비의 변변찮은 네일샵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비와 네일샵의 사장으로부터 세 명은 네일을 받으며 끊임없이 진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진주가 타는 차, 진주와 교제하는 사람, 진주의 집안, 진주의 학력, 진주의 패션, 대화의 모든 내용이 진주를 둘러싼 소재들로 가득했다.

 

‘영지’, ‘수정’, ‘세린.’ 이 세 명은 모두 진주의 친구들이다. 그녀들은 진주의 친구가 맞을까? 정말로 그녀들이 친구라면 그녀들이 이야기하는, 진주에 대한 온갖 종류의 소문과 이야깃거리들의 진상은 진주로부터 직접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들은 단지 진주의 인스타그램에서 진주의 모든 것을 찾고자 고군분투를 했다. 이상한 일이다. 모든 것들의 출처가 스마트폰 안의 인스타그램으로부터 나온다. 당사자의 말과 같은 직접적인 창구가 아니라,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중심이 되는 SNS의 개인 공간 안에서. ‘개인 공간’이라는 표현은 과연 적절한 표현일까? 전혀 모르는 타인들에게 염탐의 대상이 되곤 하는 나의 계정은 과연 얼마나 개인적인가.

 

진주의 손톱이 멀쩡하지 않은 이유는 반려견을 돌보면서 상해를 입었기 때문이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이 주목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 수많은 사람들의 우상이 되어야 한다는 비뚤어진 사고방식. 속은 멀쩡하지 않아도 겉만 멀쩡하게 가꾸어서 사람들 앞에 내보인다면,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동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생각. 그녀가 자신만큼이나 재력이 뛰어나고 인스타그램에서 인지도가 높은, 자신의 남자친구 ‘현준’의 여동생 ‘한나’를 경계한 이유도, 또 다른 여왕벌이 나타나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실상은 진주건 한나건, 겉만 멀쩡한 척 치장하면서 가면에 불과한 여왕벌 행세를 일삼았을 뿐이지만.

 

‘진주’와 맞팔로우를 하기 위해,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가비는 도대체 무엇을 얻고 싶었을까. 그녀가 원했던 건 단지 신기루에 불과한 유명세였다. 진주처럼 화려한 인플루언서와 친분을 맺고 있다는 걸 인스타그램을 통해 과시함으로써 자신 역시도 그녀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리길 바랐다. 남자친구인 ‘훈’과 데이트를 할 때 가비는 형편이 여의치 않음에도 굳이 값비싼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몇 달치 월급을 당겨 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고가의 핸드백을 구매했다. 굳이 진주의 친구인 수정이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옷을 샀다.

 

네일샵에서 달마다 넉넉하지 못한 월급을 받으면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그 네일샵의 사장이라고, 한 술 더 떠서 네일샵이 위치한 건물의 건물주라고 거짓말을 했다. 진주의 생일파티를 포함해서 진주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자신도 따라가서, 심지어 진주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게 아님에도 마치 진주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는 척 게시물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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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작가 (사진_김경식)

 

  

진주는 가비에게 우상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진주로 인해 가비는 완전히 망가졌다. 허울뿐인 명성만이 그녀를 맴돌았다. 그녀가 자신에 대해 말한 모든 것들은 거짓이었다. 가비뿐만이 아니었다. 앞서 서술했듯이 SNS에서 비추어지는 진주의 휘황찬란한 삶은 모두 과장되고 거짓투성이인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녀가 거주하고 있다던 타워팰리스는 단지 그녀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갤러리의 손님이 잠시 관리를 맡긴 집에 불과했다. 졸업 후 로스쿨을 다니고 변호사가 되겠다던 그녀의 말도 진심이 아니었다. 재력이 있는 집안의 아들과 결혼을 하고자 꾸며낸 허황된 진로 계획이었다.

 

그녀들의 친구도 그녀와 다를 바 없었다. 쇼핑몰을 운영하던 수정은 대학 시절에 집안이 어려워진 탓에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가방을 판매하는 편집 매장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때 지금의 친구들이 자신에게 보냈던 경멸스러운 눈초리를 참지 못하고, 사업이 어려워지기 이전의 소비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술집에 드나들며 많은 돈을 벌었다. 그녀가 자신의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옷들도 명품을 흉내 낸 모조품에 가까웠다. 돈독한 친구 사이로 보였던 진주, 영지, 세린, 수정, 한나의 관계는 전부 거짓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도구로,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기 위한 도구로만 취급했다. 영지는 진주와 한나에게 밉보인 결과 무리에서 완전히 배척당했고,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삭제하며 종적을 감췄다.

 

이때 한나가 영지에게 모욕을 주고 폭력을 휘둘렀던 장면들은 동영상으로 찍혀서 익명의 폭로 계정에 전부 업로드되었다. 여기에는 술집 여자처럼 행세하는, 가비와 닮았지만 결코 가비가 아닌 여성의 사진들도 올라가 있었다. 익명의 팔로워들은 한나와 영지, 가비를 모두 비난했다. 가비는 순식간에 술집에 드나들었던 여성으로 낙인 찍혀 조롱을 당했다. 가비는 왜 자신이 거짓말로 이렇게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분노한다. 재밌는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그녀 역시도 인플루언서로서의 자기 자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날조된 모습으로 꽉 채웠다는 점이다.

 

폭로 계정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세린이었다. 그녀는 단지 일반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일상이 너무 무료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거짓된 말로 사람들의 호감을 먹고 사는 행위는 너무나도 기만적이면서 공허하다. 화려한 인플루언서로서의 삶을 꿈꾸는 가비와 인플루언서들이 보여주는 자기기만적인 행태, 그 기만을 먹고 자라는 예비 인플루언서 지망생들과 인스타그램 속 이미지들이 진짜라고 생각하며 좋아요와 댓글, 팔로우를 쏟아내는 수많은 사람들. 거짓과 과장의 연속은 이처럼 무형의 폭력을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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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보면서 계속 개츠비가 생각났다.

(사진: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2. “주류”라는 단어의 양면성


 

주류가 되고 싶다는 것. 주류의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는 것. 이 말들은 무엇을 내포하는가. 표면적으로는 어쩐지 상식의 층위에서 거론되는 말들인 것 같다. “남들처럼” “상식적으로” 행동하고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상식의 선에서 말이다. 우리들은 남들처럼 정규교육을 받고 여러 교육기관들에 진학해서 졸업장을 받아 직장에 취직해 사회인으로서 정돈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일반의 상식을 공유한다. 일반적인 노선에서 적든 많든 일탈을 시행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관점에서는 개성이 강한 존재로, 부정적인 관점에서는 괜한 치기를 부리는 트러블메이커로 비추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장에서 대량 상품을 찍어내는 것 마냥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형화된 루트를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한국사 전반을 통틀어서 지금처럼 “개방적인” 시대도 없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표현의 자유, 권리의 보장과 같은 주장들은 개개인의 개성을 충분히 존중하겠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 지배적인 풍토로 자리 잡았던 “장기적인 목표”에 대한 강박적 집착도 오늘날에는 많이 흐려지고 있지 않나. “소확행”이라는 트렌드가 생긴 것만 보아도 말이다. 그래서 상식의 층위에서 주류에 관한 표현을 검토하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따로 없다. 여전히 정상적인, 일반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다양성은 보장해주겠다니, 눈치껏 분위기를 살피면서 상황에 맞게 행동하라는 걸까.

 

표면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우상(偶像, Idol)을 만들어내는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표현은 모순적이다. “아이돌”이라는 말은 현대에서 특정한 사람에 대한 찬사, 찬양, 어쩔 때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 등으로 표상된다. 확실한 건 이 단어에 부합하는 사람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보통의 사람들과 결이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아이돌로 자리매김한 존재, 일명 “셀럽(셀러브리티)”들은 하나같이 각종 SNS 매체나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빈번히, 시시각각, 지속적으로 노출되곤 했다. 그건 2020년대에 진입한 현 시점에서도 매체만 달라졌을 뿐 동일하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또 다른 특징을 언급하자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한편 가장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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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전혀 상관 없는...? 사진이다.

그래도 파리에 갔을 때

인스타그램 업로드 용도로 사진을 참 많이 찍었어서...

 

 

이들은 이렇게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든 디지털 이미지나 동영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지각 범주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 혹은 그녀의 존재를 접하는 모든 사람들은, 셀럽들에게 친숙함을 느끼는 동시에 엄청난 거리감을 느낀다. 제아무리 친숙한 이미지로 자신을 현혹하더라도 은연중에 나와는 삶의 궤도가 다른 사람으로 정체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SNS 이용자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러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전시 상황에 물량을 전폭적으로 공급하는 것 마냥 쏟아지는 좋아요 수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팔로워 수. 그에 걸맞은 화려한 피드들.

 

이런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렇게 살면 어떤 기분일까. 굳이 스마트폰 너머에 보이는 상대방에 대한 동경이 수반되지 않더라도 나와 똑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적어도 피드나 SNS 개인 공간을 살필 때에는. 이처럼 대중적인 인지도와 대중으로부터의 거리감을 모두 확보한 상태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동영상들에 의존해 사람들의 관심을 양분으로 취하는 아이돌, 스타들은 그러한 이중적인 특징을 지녔다는 점에서 주류가 된다.

 

너도나도 만날 수 있지만 그 사람처럼 화려하게 살아가기란 매우 힘들거나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저 사람이 노는 물과 내가 노는 물은 명백하게 다르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머릿속을 파고든다.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한다는 면에서, 상식적인 루트에 따라야 한다는 주류적 성격을 강제하는 이 사회에서 이들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적극 활용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또 다른 주류가 된다. 주류의 의미가 이토록 양면적이다. 정말이지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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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에 불과한 개츠비의 이미지

 

  


3. #그저 #샵 #하나 #달았을 #뿐인데


 

이렇게 모호하기만 하다면 차라리 갸우뚱하고 넘어갈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모호함은 공포로, 개개인의 인격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주류의 양면성이 너무나도 개인적으로,개인의 삶에 밀착된 형태로 적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속성은 대다수의 사람들 대 소수의 사람들, 그러니까 사회 구성원 일반으로서 지니는 주류성에 크게 의존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주류성을 크게 벗어나는 듯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 미묘한 벽을 제공하는 형태로 적용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양면성이 대다수의 사람들 대 “또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봐 왔던 억만장자나 한류 스타, 엄청난 지식인들은 너무나도 뚜렷하게 나 자신과 생활 세계가 달라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에 해당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인스타그램 속 돋보기 아이콘에 서식하는 접근성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나와 다르게 잘 사는 것 같다는 감정을 느낀다. 이 감정선은 전자의 사람들로부터 기인한 감정선보다 더욱 위험하다. “내가 저 애랑 그렇게 다를 건 없어 보이는데”와 같은 열등감과 시기심, 자괴감이 목을 죄어 오기에 그렇다.

 

선도적인 주류의 삶을 살고 있는 내 주변의 사람도, 근본적으로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하게 사회의 주류적인 노선을 밟으며 성장했을 텐데. 왜 화면 속 저 사람은 “나보다” 저렇게 인생을 짜임새 있게 잘 살아가는 걸까.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다르냐는” 의문이 개입한다. 어느덧 이 의문은 인플루언서들을 볼 때도 들기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나 빼고 온 세상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면서 사회의 트렌드를 이끌어 나가는 주류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당장 인스타그램 하단의 돋보기 버튼을 누르면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피드들이 쏟아져 내린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야 않겠지만 스크롤을 내리면서 마주쳤던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불행하다”고 규정하는 모습으로부터 멀어 보였다. 아름답고 멋진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그 가운데에는 몇 백, 몇 천, 몇 만의 좋아요를 받는 피드들도 많았고 그에 화답하듯 더욱 멋지고 화려한 이미지들로 피드를 가득 채우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타고 타고, 옛날에 싸이월드가 성행했을 시절 ‘파도타기’라고 불렀던 방법을 통해 SNS 매체에서 타인의 개인 공간을 무수히 방문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한두 시간 정도 가볍게 쓰는 건 물론이고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타인의 피드 엿보기에 할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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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이 부분 시행 중이라고 말했던

'좋아요 숨기기' 기능 베타 테스트.

제발 상용화 좀 되었으면 좋겠다.

 

 

동경을 하건,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은 감정을 느끼건, 불쾌한 감정이 들건,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느 과정을 거치든 그 수많은 샵의 향연들 속에서 헤매고 또 헤맨다. 저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내 삶은 어떤가. 나는 저렇게 “즐겁게, 멋지게, 아름답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빈틈이 많고 어설픈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닌 삶인데, 저들은 나와 무엇이 그렇게 달라서 비슷한 나이대인 나와 달리 온 세상의 즐거움을 한껏 맛보며 기쁘게 살아가는 걸까. 내 친구는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를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이러한 정신적 소모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드 자체를 훑어보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지만 그로 인해 생겨나는 온갖 종류의 감정들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자신을 괴롭힌다고 말했다.

 

나도 동의했다. 그저 샵 하나 달았을 뿐인데. 샵 하나만으로 이런 저런 비교와 우울함을 느끼게 하다니. 트렌드라는 겉치장과 함께 주류는 보다 일상적으로 우리를 압박해온다. ‘너는 저들만큼이나 매력적인 사람이니?’, ‘너는 트렌드를 얼마나 잘 소화할 수 있니?’ 근본적으로는, ‘나는 적어도 너보다는 보람차고 멋있는 인생을 살고 있어.’

    


“인스타그램을 끊고 나니 가비에게 남은 연락처는 나 원장뿐이었다. 한나도, 수정도, 세린도, 영지도, 그리고 유진주도 누구 하나 전화번호가 없었다. 아무도 사라진 가비를 찾지 않았다.” (p182.)


 

SNS 속 그들의 소통은 끊임없는 학대의 과정이었다.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든 타인을 향한 것이든, 그녀들은 계속해서 학대를 저질렀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어떤 형태로든 주류가 되고 싶어 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듬뿍 받으며 누가 보기에도 트렌디하고 화려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척 연기하고자 했다. 그저 샵 하나만 달았을 뿐인 삶. 샵의 연속은 자기학대로 이어졌다. 학대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핸드폰 안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어쩌면 우리들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류를 벗어나면서 독보적인 주류가 되고자 하는 허울뿐인 욕망, 그 욕망은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가비와 진주, 그 외의 인물들이 겪었듯이. 결국 저렇게 공허한 결말을 맞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욕망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인스타그램의 수많은 팔로워들을 보면서 떠올린 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자크 라캉의 말이었다.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자, 주체를 단단하게 하고, 때론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타인의 욕망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성향과 그 욕망의 방향성은? 무엇이 내 욕망인지 모른 채 타자의 욕망에 다다른 순간 아무것도 없이 투명해지는 모습을 그려 내고 싶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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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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