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4개월, 3주...그리고 2일 [영화]

영화 4개월, 3주...그리고 2일
글 입력 2019.12.1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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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공감이라는 감정은 대부분 내가 겪어봤거나 상상이 가능한 일에 있어서 발생한다. 그 외의 일에 관련해서는 딱히 공감이 되기보다는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사람마다 개인이 가진 공감과 이입의 능력은 모두 다르지만 많은 이들이 몇몇을 제외한 남들의 사정에는 잠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도 뒤돌아서면 잊곤 한다. 이것은 나쁘다곤 할 수 없을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때로 이러한 일이 나타나면 안될 상황에서도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는 것이다. 바로 임신에 관한 문제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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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개월, 3주…그리고 2일>은 2007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모든 좋은 작품이 꼭 상을 수상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굵직한 상을 수상한 작품은 한번쯤 논해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 또한 그러했다.

 

영화는 1987년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의 루마니아는 독재정권 하에 있었고 인구를 늘리겠다는 정권의 목표 하에 모든 피임과 낙태가 불법으로 취급 받기에 이른다. 결국 수 많은 여성들이 불법 낙태를 선택하게 되고 그로 인한 감염과 사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4개월, 3주…그리고 2일>은 이러한 국가적 상황 속에서 벌어진 평범한 인물들을 조명한다. 영화는 여대생 ‘오틸리아’가 기숙사 룸메이트인 ‘가비타’의 부탁을 받아 이곳 저곳 다니며 돈을 빌리기도 하고 호텔 예약을 확인하러 가는 등의 일을 벌이는 초반부로 시작이 된다. 영화 초반 내내 관객들은 도대체 무슨 일로 그들이 행동하는지 알 수 없어 궁금증이 커져간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그 이유는 바로 가비타의 임신중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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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불법낙태 시술을 해 줄 의사 ‘베베’를 만나 호텔 방까지는 왔지만 그는 가비타가 임신 4개월이나 되어 만약 걸리면 자신의 형량도 커질 수 있다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최대한 빨리 더 많은 돈을 충당해 주겠다는 그녀들의 말에도 베베는 되려 큰소리를 내고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며 당장 떠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쉬운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며 말이다.

 

베베는 그녀들에게 돈 이외에 그 어떠한 요구조건도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은 가비타를 위하는 거라 말하면서도 계속적으로 협박하는 태도를 보이던 그는 결국 원하던 것을 얻어내고야 만다. 바로 성관계였다. 오틸리아는 친구를 위해 의사와 성관계를 한다. 이해하기 힘든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친구의 절실함과 그 두려움에 대해 그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영화 내내 오틸리아는 가비타를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가비타가 임신하게 된 결과의 상대방은 단 한번의 언급도 되지 않고 등장하지 않음에도 말이다. 책임의 당사자보다 더욱 공감해주는 것은 그 심정을 아는 오틸리아 뿐이었다. 언제든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그 두려움의 실체까지. 그녀는 이미 그 상황과 그녀 자신을 분리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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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만큼 오틸리아의 남자친구 ‘아디’를 향한 분노는 더욱 더 이해가 간다. 아디의 끈질긴 부탁에 결국 가비타를 잠시 뒤로하고 남자친구의 집으로 향한 오틸리아는 그의 부모님에게 잠시 인사만 하고 나온다고 들었지만 온갖 일가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불편하고 어색하게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은근히 무례한 말들을 듣게 된다. 설상가상 아디에게 가비타의 상황에 관해 털어놓으며 만약 자신의 일이었다면 어떡할 거냐는 질문을 던지지만 돌아오는 남자친구의 답변에 그녀는 분노한다.

 

 

“임신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아디는 혹여 그런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많은 남자들은 여자들이 임신한 후에 벌어질 일들에 관해 걱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내가 책임지지 않을까 봐, 낙태를 하라고 할까 봐 등등. 그래서인지 여자를 안심시키려는 마음에 아디처럼 말을 한다. 내가 다 알아서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마, 근데 일어난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미리 상상하고 걱정하는 거야?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컷을 자르지 않고 길게 찍는 롱테이크 기법을 쓴다. 그런 장면들은 마치 한 장면 장면을 유심히 바라보고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버려진 태아의 모습, 그런 태아를 아파트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의 오틸리아의 동선, 아디의 집에서 무의미한 말과 무례한 질문들 사이에 앉아있던 오틸리아의 모습까지 길게 호흡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들을 지긋이 바라보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이런 질문들 속에는 예민한 논쟁거리들이 은근히 담겨있다. 낙태 찬반에 관한 논쟁부터 당시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의 문제들까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진정으로 던지고 싶었고 논하고 있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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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오틸리아와 가비타가 호텔 레스토랑에 앉아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짧은 이야기와 긴 침묵을 나누는 그녀들을 카메라는 바로 옆에서 비추는 듯 하다. 그러나 끝나기 몇 초 전, 화면에는 유리창에 비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나타남으로써 그녀들과 카메라 사이에는 유리 벽이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순간 오틸리아가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응시하며 끝이 난다.

 

아디의 답변이 오틸리아의 불안감을 지워주지 못한 건 그가 이러한 상황과 그것에 대한 그녀의 불안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임신 후의 벌어질 상황이 아니라 임신 ‘그 자체’이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기에 걱정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공포인 지점이다. 물론 그 이후의 상황도 공포의 가중에 힘을 실어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든 확률적으로 찾아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대상이 상대방이 아닌 나라는 점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만약 임신의 주체가 알 수 없는 규칙에 의해 랜덤 하게 여성과 남성 중 한 명으로 선택된다면 아디는 절대 그런 식으로 대답하거나 관계 시 덜 조심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아디는 임신의 주체가 될 일이 없고, 그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냐 아니냐와는 별개로 임신이라는 일이 일어나도 그의 신체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절대로 완벽히 오틸리아에게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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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오틸리아에게 완벽히 동화될 수 있는가? 영화는 마지막 장면으로 그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그녀와 카메라, 즉 그녀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이 존재하고 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확실하게 존재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그녀들을 동정하거나 경멸한다. 그러나 그 뿐이다. 영화 속 일 일뿐이고 지금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들 또한 아디처럼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는 제 3자일뿐이다.

 

오틸리아와 눈이 마주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녀는 영화 속의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당장 내 친구, 가족, 지인, 애인, 혹은 나 자신이 될 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4개월, 3주…그리고 2일>은 수다스러운 장면들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차분한 장면들과 불안한 인물들의 표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의 과거, 현재, 미래를 뒤돌아보거나 미리 알아볼 수 있다. 그러한 간접 경험을 통해 조금이라도 자아의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다면 이 영화는 개인에게 나름의 의미를 가질 것이고 또 그러하길 바란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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