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Happy Deathday to me! : 연극 우리별 [공연]

연극 우리별 Review
글 입력 2019.11.20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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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난 지구. 여기는 코스모스 아파트 19단지. 우리 가족은 오늘 여기로 이사를 왔다. 난 태어나서 6억 년간 혼자였는데 이제는 주변이 꽤 떠들썩한 거 같다.
 
엄마와 함께 옆집에 인사를 간다. 나보다 조금 작은 여자애가 나온다. 이름은 달님이. 단짝 친구가 된다. 매일매일 붙어있지만, 조금씩 멀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씩 조금씩. 우린 언젠가 헤어지는 걸까...

 

 
빛의 속도로 1년을 꼬박 달렸을 때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한다. 1초에 30만km를 달리는 빛의 속도로 1년이면 약 9조 4,600억km, 얼마나 먼 거리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숫자이다.
 
하지만 우주는 이보다 훨씬 크다. 지구의 밤하늘을 메운 별 중에는 몇십억 광년만큼 떨어진 거리의 별들도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보는 별들의 불빛은 몇십억 년 전부터 별에서부터 달려온 빛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깝고 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밤하늘은 그래서 더욱더 신비롭다.
 
 
 
오늘도 이 별은 빛나고 있다. 우리 집, 우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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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리별>은 매일 반복되는 우리들의 일상을 언젠가는 사라질, 혹은 이미 사라진 별들의 이야기에 빗대어 표현한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 같은 직장으로 출근하는 아빠, 매일같이 집안일을 하고 저녁 준비를 하는 엄마, 다 같이 모여앉아 TV를 보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저녁. 지구네 가족의 따뜻하고 소소한 일상은 지구가 탄생하던 순간부터 소멸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일상은 너무나 소소하고 당연해서 언제까지나 그들 곁에 있을 것만 같지만,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함에 따라 시간은 흐르고 갑자기 다가왔던 지구의 탄생처럼 어느 순간 소멸한다.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 곁의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질, 혹은 이미 사라진 별빛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극 <우리별>은 이러한 일상의 반복을 규칙적인 랩과 비트 속에 녹여낸다. 반복되는 리듬 안의 소소한 변주와 주변의 익숙하고 친숙한 사물들을 나열하는 가사는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우리들의 일상을 위트 있게 표현한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 수 있지만, 극이 진행되는 내내 차분하게 깔리는 비트에 조용히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반복되는 지구네 가족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다.
 
 
 
죽어가는 내가 보고 있는 거야? 보고 있는 내가 태어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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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반복되는 지구네 가족의 일상은 결국 소멸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선생님과 남자는 시간의 역주행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시간을 돌린다면? 지구가 반대 방향으로 공전한다면? 하지만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우주의 거대한 순환 고리 속에서 역주행은 결국 흙, 죽음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이 연극에서만큼은 누구의 죽음도, 일상의 소멸도 슬프지 않다. 죽고 태어나는 것은 끝없이 광활한 우주의 순환 고리를 도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소중했던 것들을 추억하면 된다.
 
 

벌써 이렇게 멀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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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달님은 서로의 둘도 없는 단짝 친구이다.
 
소꿉놀이하던 시절부터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할머니가 되어 소멸하는 순간까지 함께인 줄 알았던 둘은 각자의 궤도를 달리며 점점 멀어진다. 무대의 작은 원 안에서 함께 놀던 둘의 거리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더 벌어져 무대와 객석만큼의 거리가 되고, 둘 사이에는 어릴 적 묻었던 타임캡슐만이 남는다.
 
모든 별은 저마다의 궤도를 달린다. 그리고 이 궤도가 우연히 겹치고 스치는 순간을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른다. 끝없는 우주의 순환 고리를 따르는 한 이 인연도 영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인연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인연은 각자의 궤도를 달리던 행성이 우연히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서로의 손을 잡고 남은 궤도를 달려갈 힘을 얻는 것이다. 멀어지는 것을 슬퍼할 이유도 없다. 그저 인연과 손을 잡았던 순간이 남긴 흔적을 가슴에 품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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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하늘은 가까운 과거와 먼 과거, 그리고 현재의 별빛으로 가득 차 있다. 죽어가는 우리들의 빛과 이미 죽은 이들의 빛은 시간을 넘어 우리들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비춘다. 그래서 결국 별빛이 될 모두의 소멸은 슬프지 않다. 모두의 아무것도 아닌 일상과 이미 소멸한, 그리고 소멸할 별들의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Happy Deathday to me!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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