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 속에서 피어오른 아름다움 : 도서 '치유미술관'

글 입력 2019.11.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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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sing of the Cross, Rubens (1610)

 

 

그림은 힘이 세다. 사람들을 감동에 몸을 떨게 할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그림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치유미술관> 중에서

 

 

플란다스의 개에 등장하는 네로는 '천상의 그림'이라 일컬어지는 루벤스의 작품을 대면하는 것을 평생 꿈꿔왔지만, 애달프게도 가난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작품을 조우한 네로는 추위 속에서 파트라슈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작품을 눈앞에 마주선 네로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으리라.

 

미술은 기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는 것과 보는 것, 단 두 가지의 행위만으로 메마른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고 격정 속의 감정을 잠재우기도 한다. 결국 루벤스를 마주한 네로처럼, 우리는 종종 미술작품 속에서 다양한 감상과 위로를 얻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어떻게 우리의 곁으로 오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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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와 분출, 격정과 안정, 충격과 치유, 그리고 위로. 미술 작품을 통해 얻는 수많은 감상들은 ‘보는’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작품을 그려내는 예술가 또한 이를 느끼고, 표현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곤 했다. 뭉크, 세잔, 모네, 프리다칼로, 고갱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예술가는 서로 다른 아픔을 지닌 채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그 아픔은 결국 명화가 될 수 있었다. 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을까. 도서 <치유미술관>에서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아픔과, 작품에 담긴 깊은 속내를 만나볼 수 있다. 

 

책 속에서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뭉크, 고흐, 모네, 드가, 세잔과 같은 저명한 예술가 부터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모리조, 젠틸레스키, 클로델 등의 예술가까지 총 15명에 이르는 이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왜 절규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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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절규>

 

 

불타오르는 듯이 붉은 하늘과 요동치는 강물. 그 아래에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명을 지르는 듯 보이는 미라같은 인물. 우리는 이 그림을 보면 뭉크의 작품이며, 그 제목이 ‘절규’임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교과서에서, 혹은 미디어에서 수차례 접해왔기에 이 작품이 그저 친숙하게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뭉크의 불행한 삶에서 기인한 아픔이 내재해 있다.



뭉크 : 하늘이 갑자기 피처럼 붉은 색으로 변하는 느낌이었어요. 온 세상이 구불구불 정신없이 섞이고 있었고, 검푸른 피오르 바닷물이 모든 걸 집어 삼킬 듯이 솟아오른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닥터 소울 : 이 순간 뭉크 씨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이 나나요?

 

뭉크 :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듯 했어요. 그래서 난간에 힘없이 기대고 이는데 갑자기 세상 끝에 닿을 듯한 큰 절규가 들려왔어요.  

 

<치유미술관> 중에서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남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점점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 뭉크는 극심한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다. 작품 속 비현실적인 풍경은 공황장애로 인해 숨이 멎을 듯한 고통 속을 헤매던 뭉크가 눈앞에서 만난 현실이었다. 절규, 혹자는 '비명'이라 주장하는 이 작품은 뭉크 자신의 내면의 고통에서 기인한 절규와 비명의 메시지였던 것이었다. 마음 속 깊숙히 자리잡은 아픔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계속해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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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아픈 아이>

 

 

뭉크 : 우리 집안의 이 병약함과 우울함은 유전일 텐데…, 나 역시 우울하게 살다가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따라 죽고 싶기도 했어요.
    

닥터 소울 : 심리 상담에서는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 남은 가족들을 ‘자살생존자’라고 불러요. 뒤따라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해요. 달리 말하면 가족의 죽음은 그만큼 전염성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해요. 남은 가족들의 삶을 통째로 집어삼키죠.  

 

<치유미술관> 중에서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모든 예술가를 미술심리치료사 '닥터소울'의 내담자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예술가와 닥터소울이 주고받는 대화를 보고있자면 예술가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심리학에 기대어 이들을 향해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는 닥터소울의 문장들은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가려져 있던 그들의 을 파고드는 대화를 통해,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감상이 남는다.

 

 

 

아픔으로부터 시작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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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untala, Camille Claudel (1905)


 

뮤즈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로댕의 그림자에 가려 살았던, 결국 아픔 만을 남긴 절절한 사랑을 했던 클로델. 그녀의 조각 '사쿤탈라'에는 단순한 사랑의 아닌 사랑을 갈구하는 누군가의 간절한 외침과,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애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그녀의 삶이 개입되는 순간, 어쩐지 그 애절함이 더해진다. 


화려한 색채와 역동성을 가진 작품을 선보이던 에드가 드가는 주로 여성을 그려 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배신으로 인한 심각한 여성혐오증을 갖고 있었고, 특유의 구조적 요소를 더해 인상주의의 발전에 발돋움이 되었던 세잔은 아버지의 무시로 인해 지독하게도 대인관계를 불신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꽤나 친숙하게 여겨지는 고흐는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고 살아가며 평생을 가난과 우울, 외로움과 싸워야 했으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스타일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낸 프리다 칼로는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남편의 지속적인 외도와 세차례의 유산을 견뎌내며 살아갔다.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다. 삶의 도처에 자리매김한 아픔과 치유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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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틸레스키 <수산나와 두 노인>

 

 

젠틸레스키 : 사실은 화실에서 치근덕댄다는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 선생님 얼굴을 살짝 그려 넣었어요. 이렇게라도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네요.
    

닥터 소울 :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충동이나 욕구를 예술-종교 활동 등으로 바꾸어 충족하는 것을 우리는 ‘승화’라고 불러요. 그림 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거든요. 이렇게 조롱의 대상으로 타시를 그려 넣으면, 타시 면전에 대고는 할 수 없었던 말들을 가상으로 한 셈이 되는 거예요.

 

<치유미술관> 중에서

 

 

<치유미술관>에서는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해 얻은 아픔을 스스로 위로하며 여성의 권리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해나간 젠틸레스키, ‘외설’이라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꿋꿋이 확고해나가던 에곤 실레 등 그간 익히 듣지 못했던 예술가나, 남성이라는 주류에 가려져 있던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만나볼 수 있다. 결국, 예술을 넘어 누군가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로 전해질 때, 마음의 움직임은 그 방향을 달리 하며 더욱 증폭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작품을 볼 때, 모든 요소를 배제한 채 '그 자체로' 감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무수한 사회적, 인문학적 요소와, 누군가의 삶이 담겨 있다.

 

'모네는 인상파의 창시자다.'
'세잔은 인상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처럼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이들의 삶 속에는 당신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혹자는 예술계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이들의 작품세계를 보며 그저 천부적이거나 혹은 뒤늦게 얻은 ‘천재성’이 발현된 것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삶 속에 자리한 아픔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모든 작품에는 삶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더해지는 순간, 우리가 살아가며 매 순간 느끼는 것처럼, 단순히 ‘보고 느끼는 것’을 넘어 한층 더 깊은 감상들이 우리를 맞이하곤 한다. 이는 명화라 불리우는 이들의 작품들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이며, 우리의 삶이 가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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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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