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우울은 어디에서 오는가.

관계에 의지하고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글 입력 2019.10.2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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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우울이 역병처럼 번지는 시대가 왔다. 물론, 예전에도 우울증이란 병은 존재해왔지만, 현대사회에서의 우울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최근 들어, '심리학'이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진학하고 싶어 하는 학과로 부상하며 입결이 엄청나게 뛰는 현상이 일어났다.(물론, 이는 심리학과가 정확히 어떤 것을 다루는 학문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기도 하다.) 또한, 면대면 상담부터 인터넷 익명 상담까지 '상담'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SNS의 종류와 양상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미디어에서는 '공감'을 주제로 새로운 콘텐츠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 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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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수 없이 많이 해왔다. 사람들은 모두 관계 속에서 쉽게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그 상처를 잊은 것 마냥 관계에 의지하는 모습도 보인다. 나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상처를 받는 것에 환멸이 나서 한때에는 관계 맺음 자체를 포기한 적도 있었다. 타인에게 어떠한 기대를 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나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고통만 낳았을 뿐이었다. 결국,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말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확실한 정언인 걸까? 하지만, 여기서, 인간의 본성이 정말로 사회적이라면 위에서 말한 문제점들은 왜 등장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인간의 본성은 사회적인가? 인간은 왜 사회 속의 관계에서 끝없이 고통받는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포스트모더니티와 소비 사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론을 펼쳐나가는 사회학자이다. 이 책, <리퀴드러브>에서 그는 '유대가 없는 인간'을 주된 서술의 대상으로 삼고 현대 사회에서의 관계 맺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흔히 사랑과 신뢰가 베이스가 되어야한다고들 말한다. 이상적인 관점에서 사랑은 이타적이다. 통념적으로 사랑은 이타적이라고 우리의 뇌 속에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사랑은 대상에게 나의 자아를 나누어 주는 것이며 동시에 대상의 일부를 정복하려하는 욕구도 함께 발생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결국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서로를 소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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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관계맺음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고려해보면 그렇지 않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SNS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소개팅/미팅 어플리케이션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사람들은 클릭 한번으로 자신의 인간 관계(위에서 정의한 사랑을 베이스로 하는 관계가 아니라 흔히 통념적으로 말하는 관계)를 너무나도 쉽게 넓혔다가 좁힌다. 여기에서는 얼마나 질 높은 대화를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타인과 연결을 많이 하느냐가 얼마나 관계를 잘 맺고 있느냐의 척도가 된다. 남-녀 간의 확실하지 못한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을 '썸'이라는 단어로 규정짓는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관계를 맺음은 굉장히 가벼워서 '관계'라는 단어보다 '연결'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더 적합하다. 이러한 현상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가 정의한 진정한 '관계'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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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관계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보려면 현대 사회에 대한 분석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현대 사회는 굉장히 유동적이다. 유동적이라 함은 '끊임없이 흘러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모습은 인간이 몇 세기 동안 이룩한 문명과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근대화 이후 유럽의 직선적 세계관을 통해 인간 세계에 끝없는 무한한 발전을 요구해온 거대한 사회는 끝끝내 개개인의 인간에게도 그러한 발전을 요구하게 된다. 즉, 자기 자신을 상품으로서 계속해서 발전시키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버려진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쏟아져 나오는 자기개발서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곧, '인간 소외'를 낳는다. 문명과 사회 구조는 인간이 만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다. 오히려 이에 지배된다. 결국 거대한 사회 구조에 침체된 인간은 자기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소외된 상태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개인이 고통스럽지 않은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첫 번째,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을 '셈'한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도 등장하듯이, 고리타분한 어른들은 모든 것을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통해 생각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집을 보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는 경제적 이득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타인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경제적인 이득을 ‘셈’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또한 그에게 어떠한 경제적인 이득을 주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끝을 바라보아야하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게 된다.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욕망과,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방어심리가 충돌하여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이러한 상황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은 더욱더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이 '사랑'이란 나의 자아를 대상에게 확장시키는 행위이다. 자아를 다른 대상에게 확장시킬 수 있으려면 자기애가 우선적으로 확립되어야만 한다. 즉, 다른 대상에 대한 사랑은 자기애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점은 바우만은 자기애는 '자신이 사랑을 받을 만한 대상이라는 것', '타인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 이 확인이 되어야 잘 성립될 수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인에게 자기애는 타인에게서 받는 사랑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자기애는 관계를 맺음에서 생성된다는 점에서 자기애와 관계 맺기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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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바우만은 자기애를 ‘자신이 타인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대상이라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의 근거를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모순적이다. 이 모순에서 유대 없는 인간의 우울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애의 개념을 비틀어, 자기애의 시작을 자기 자신으로 둔다면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 앞서 계속 언급했듯이, 인간 사이의 관계는 여러 이유로 인해 불확실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 불확실성 또한 받아들인다면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은 덜 해질 것이다.


이처럼, 자기 자신에게 근거를 두는 자기애와 관계의 불확실성 수용이라면 유대 없는 인간의 우울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같이 이루어져야 확실한 효과를 이룰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근거한 자기애를 통해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인다면, 서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관계가 와해되더라도 ‘자기애’라는 안정적인 영역으로 돌아갈 수 있다. 또한,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관계에 임한다면 각 개인은 모두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다양성이 인간 사회를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금 현대 사회에 팽배해 있는 관계로 인한 우울은 본능에 거스른 선택을 한 대가로 얻은 감기 같은 것이다. 바우만이 말한 것처럼 “지구화 시대에, 휴머니티의 공유라는 대의와 그것을 위한 정치는 인류의 오랜 역사와 수많은 운명적인 단계 중에서도 가장 운명적인 단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너무 뻔하지만 개개인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기 전에 자기 자신을 사랑함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계의 불안정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현대인이 빠져있는 깊은 늪과 같은 우울에서 조금은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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