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을날에 만난 풍성한 실내악, 루드비히 트리오 내한 공연

글 입력 2019.10.1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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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히 포스터 최종.jpg

 

 

선선함과 쌀쌀함 그리고 따뜻함이 공존해 종잡을 수 없었던 10월의 가을날,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을 가득 채운 루드비히 트리오의 두 번째 내한공연 무대를 감상하고 왔다. 지난 화요일인 15일은 아침 최저기온이 9도지만 최고기온은 20도에 육박하는, 일교차가 굉장히 큰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혹여 춥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신경을 쓰게 되었다. 공연장에서는 항상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게끔 되어 있는데, 그게 가을 겨울 시즌이 되면 관객 입장에서 약간은 썰렁한 듯한 온도로 와닿기 때문이다.

 

그러나 흡인력이 강한 연주자들의 무대를 볼 때면, 그 날 공연장의 온도가 어땠는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홀 안을 가득 채우는 그 음악의 세계를 따라가기에도 에너지가 모자랄 정도기 때문이다. 이번 루드비히 트리오의 무대를 감상하던 15일의 밤도 나에게는 그랬다. 트리오 중 그 누구 하나도 욕심 부리지 않고 그저 서로의 호흡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데에만 집중한 무대였기에, 그들이 보여준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 라벨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Program

 

L.v.Beethoven    Piano Trio No.7 in B flat Major, Op.97 'Archduke'
I. Allegro moderato
II. Scherzo: Allegro
III. Andante cantabile Ma pero Con Moto
IV. Allegro moderato

 

Intermission

 

S.Rachmaninoff    Trio elegiaque No.1 in g minor

 

M.Ravel    Piano Trio in a minor
I. Modere
II. Pantoum (Assez vif)
III. Passacaille: Tres large
IV. Final: Anime

 


 

 

첫 곡은 예정된 대로,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대공'이었다. 피아니스트 임효선의 부드럽고 여유로운 터치로 시작된 1악장의 초입은 뒤이어 아르나우의 첼로 그리고 아벨의 바이올린이 순차적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그리며 우아한 1주제를 연주했다. 당당한 기상과 귀족적인 우아함이 느껴지는 1주제는 점차적으로 각 악기에 맞게 변주되기 시작하는데 어느 파트 하나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고 적당한 박자와 셈여림으로 어우러지는 것이 참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1악장은 우아함으로 시작해 점차적으로 웅장해져 가는데, 1악장의 말미에서 느껴지는 힘 있는 피날레는 이 곡이 이번 무대의 첫 곡인 이유를 잘 보여주는 듯했다.

 

이어서 2악장은 아르나우의 익살스러운 첼로 선율로 시작되었다. 두 현악기의 익살스러움에 임효선의 피아노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그 익살스러운 분위기는 몽글몽글한 활기로 더욱 빛나보였다. 1악장에서 보였던 일련의 감정과는 또 다른, 유쾌하고 통통 튀는 선율은 이미 청력을 거의 상실했던 당시의 베토벤의 심경과는 완전히 대비되지만 오히려 그 역설적인 감정이 악성으로서의 면모를 더 잘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피아노가 당당하게 그려나가는 2악장의 인상적인 선율은 이번 무대에서 피아니스트 임효선의 손끝으로 더욱 빛을 발했다.

 

3악장은 더 말해 무엇할까. 개인적으로 '대공'을 찾아듣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3악장 때문이다. 마치 가사 없는 한 편의 찬송가를 듣는 것만 같은 이 악장은 왜 이 작품이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중 마지막 작품인지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낮고 부드럽게 읊조리는 피아노의 선율로 시작을 알리며 바이올린과 첼로의 아름다운 화음이 저며들며 펼쳐지는 3악장의 주제는 그야말로 완전무결하다. 삶 속에 내리는 축복과 은총, 행복과 좋은 그 모든 것들의 충만감이 음악이 된다면 바로 '대공'의 3악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루드비히 트리오는 그들의 명성처럼, 고결한 3악장을 들려주었다.

 

그 뒤에 바로 재치있는 피아니스트 임효선의 터치로 맞이한 4악장 역시 너무나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특히 몰아치는 듯한 임효선의 소리는 4악장의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이끄는 가장 큰 요소였다. 힘 있고 웅장하면서도 확장되는 듯한 느낌이 가득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베토벤의 재기와 화려함 모두, 루드비히 트리오의 손끝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13.jpg

 

 

2부의 첫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3중주 엘레지 1번이었다. 이 작품은 이번 무대를 앞두고 처음으로 듣게 된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은 주로 피아노곡, 협주곡이나 교향곡을 들었지 그의 실내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들어보니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런 슬픔을 그려낼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깊은 애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입부에서 아벨과 아르나우가 그려내는 물결처럼 일렁이는 슬픔 위에 임효선의 피아노가 어우러지기 시작하는 순간, 엄청난 애수가 홀을 가득 채웠다. 감미로우면서도 가슴 아픈 선율은 임효선에 이어 아르나우의 첼로가 이어받는 순간 더욱 깊어졌다. 이에 슬픔을 덧그려나가는 아벨의 바이올린 선율은 애통함과 격정을 함께 보여주었다. 어쩌면 이 곡이 인터미션 직후에 배치되었던 것은, 단순히 러닝타임만을 고려한 게 아니라 관객들에게 이 엄청난 슬픔의 소용돌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해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가슴 한 켠에 묻고 있는 그 애상을, 이 가을날에 다시금 꺼내어 곱씹어보게 만드는 무대였다.

 

*

 

이번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은 라벨의 피아노 3중주 가단조였다. 피아노의 오묘한 선율과 함께 바이올린과 첼로의 소리가 스며드는 1악장은 앞서 들었던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 비해 더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1악장은 별빛이 연상되는 아주 은은한 매력이 있었다. 피아니스트 임효선의 터치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아벨의 바이올린 선율은 그 느낌을 극대화시켰다. 안정감 있는 저음으로 풍부함을 더한 아르나우의 첼로도 물론 빼놓을 수 없는 묘미였다. 빠르게 몰아치다가도 다시금 민요적인 느낌이 나는 은은한 선율로 회귀하는 루드비히 트리오의 라벨 1악장은 정말 오묘함 그 자체였다. 서로의 기교와 호흡이 어우러지는 것도, 작품의 해석도 너무 매력적이었다. 1악장이 끝나고 나니 음원으로 들었던 것보다 더, 라벨의 작품이 좋아졌고 남은 악장들까지도 기대가 됐다.

 

1악장이 아스라이 빛나는 별빛 같이 와닿았다면 2악장은 훨씬 더 즉각적이었다. 특히 1악장보다 더 현대음악 같은 면모가 느껴졌다. 스케르초의 느낌이면서도 앞선 두 작품의 스케르초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판툼'이라는 시 형식을 사용하여 2개의 독립적인 악구가 대비되며 진행된다는 해석을 보았지만, 그 표현은 내가 체화할 수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짧으면서도 휘몰아치듯 지나가는 이 2악장이 조화와 부조화 사이의 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듯하며 통통 튀게 흘러갔다는 것만이 인상에 남았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임효선과 아벨, 아르나우 세 사람의 호흡이 얼마나 절묘하게 잘 맞았는지도.

 

3악장, 파사칼리아. 피아니스트 임효선은 저음부에서 파사칼리아 주제를 시작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강타했다. 그리고 이를 아르나우가 이어받아 아름다운 첼로의 5음계 선율로 발전시켰다. 아벨의 바이올린이 다시금 주제를 이어받는 순간, 마치 이 감정이 점층법처럼 큰 파장으로 와 닿았다. 임효선, 아벨, 아르나우 세 사람이 그려나가는 선율은 약간의 멜랑꼴리를 담고 있으면서도 아주 세련되었다. 그리고 미묘하게, 서양의 것이라 하기엔 이국적일 수밖에 없는, 동양적인 선율이 중간 중간에 느껴졌다.

 

4악장에서는 이러한 동양적인 선율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피아니스트 임효선은 이 이국적인 색채를 도입부부터 주되게 그려내었고 여기에 아벨과 아르나우의 현악 선율은 그 위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 같았다. 일렁이는 듯한 아르페지오와 부드러운 피치카토 그리고 힘 있는 선율과 트레몰로는 4악장의 신비한 분위기를 잘 설명하는 요소들인데, 루드비히 트리오는 시종일관 이 모든 영역들을 넘나들며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해주었다. 임효선의 웅장하고 힘 있는 터치와 아벨, 아르나우 형제의 아름다운 트레몰로와 함께 맞이한 마지막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운과 함께 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Ludwig trio.jpg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루드비히 트리오가 보여준 풍성하고 안정감 있으면서 매력적인 이 무대를 즐긴 객석이, 어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환호와 박수가 홀을 가득 채웠다. 그 뜨거운 연호에 힘입어, 루드비히 트리오는 앵콜을 연주했다. 페터 키에세베터(P. Kiesewetter)의 Tango Pathetique였다. 탱고지만, 그 선율을 뜯어보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의 메인 주제가 녹아 있는 작품이었다. 가을날에 어울리는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탱고의 선율로 무대를 굵고 짧으면서 강렬하게 마무리 짓는 루드비히 트리오에게, 객석은 다시금 뜨거운 박수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

 

세계적인 소속사 이베르카메라(Ibercamera) 소속으로 이미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베토벤 레퍼토리와 그 외 다양한 작품들로 무대를 꾸며온 루드비히 트리오가 두번째 내한무대를 꾸민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굉장히 벅찼다. 트리오로서 벌써 10년의 세월을 함께 해오며 호흡을 맞춰온 피아니스트 임효선, 바이올리니스트 아벨 토마스 그리고 첼리스트 아르나우 토마스 세 사람의 연주는 연륜에서 묻어나는 깊이와 마치 하나 같은 호흡으로 객석이 마음 놓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연주를 듣기 전까지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작품, 라벨의 작품까지도 너무나 오묘하게 잘 전달해주어 그저 가만히 마음과 귀를 열어놓기만 하면 되는 풍성한 자리였다.

 

비록 루드비히 트리오의 구성원 중 두 멤버의 주 활동무대가 유럽인 만큼 자주 한국에서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 내한공연 이후 두 번째 공연이 이뤄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루드비히 트리오의 유일한 한국인 멤버인 피아니스트 임효선이 이번 무대의 주최인 툴뮤직 소속 아티스트인 만큼, 이들의 세 번째 내한무대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열릴 수 있기를 기다려야겠다. 그 때에는 이 아름다운 트리오가 또 어떤 프로그램 구성으로 객석을 휘어잡을까.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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