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얻은 삶의 지혜 [사람]

글 입력 2019.10.0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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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배우다


 

어린 시절 책장에 꽂혀 있던 《1Q84》라는 책은 내게 두껍고 어려운 책인 것만 같았다. 하나의 다른 세계 같았던 책과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나에게 먼 존재 같았다. 20대가 되어 청소년이라는 인식에서 스스로가 벗어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책을 마주하기로 했다. 책장에 꽂힌 그의 에세이를 읽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이후 그의 삶에 조금씩 흥미를 가지며 그가 가진 삶에 대한 자세와 문학 세계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보면 문체가 마음에 들고, 활자로 펼쳐놓은 삶에 대한 태도가 마음에 쏙쏙 박혀 감정을 울리는 작가들이 있곤 했다. 그럴 때 하나의 책을 마무리하면 다른 책을 찾아 읽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사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조금은 난해하고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의 글에 중독성이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국에서도 그의 골수팬이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지만 그의 문학에 애정을 표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확신을 할 수 있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존경을 표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면모는 그의 에세이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그의 글쓰기와 삶에 대한 태도를 여러 책을 통해 읽었다. 그는 70대가 된 지금에도 여전히 문학 소설과 에세이를 발간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성실한 작가다. 또한 평판이나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를 지켜나가고 있는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에세이 책을 살펴보면 정말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다. 내가 그의 글을 가장 처음으로 접하게 한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 여행에 대한 에세이, 재즈에 대한 에세이, 위스키에 대한 에세이 등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늘 글로 남기고 세상에 공유한다. 역시 글이 업인 사람답다.

 

그 중 그의 총체적인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이었다. 글이라는 ‘업’을 가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진중한 생각들과, 글 외에도 삶을 살아가며 가지고 있는 태도들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서 내가 가장 배우고 싶은 점, 존경하는 인생의 중요한 철학은 “꾸준함”이다. 그런 부분은 밑줄을 그어놓고 마음이 약해지고 태도가 나약해질 때마다 다시 읽곤 한다. 그에게서 얻은 삶에 대한 지혜 그리고 영감들을 이번 글을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꾸준함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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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이라는 단어는 내게 뭉클함을 주면서도 무서운 단어다. 20대 내내 나를 괴롭히던 고질병 중 하나가 꾸준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무언가 시작하여 같은 에너지로 흔들리는 기색이 없이 나아가는 일, 그것은 내게 중요한 삶의 덕목이지만 오랜 시간 해내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글이 좋다. 어느 글을 읽든 그는 지속을 해나가는 행위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평생 글을 쓰며 생활한 그의 간절하고 솔직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20대 시절 가게를 운영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소설을 쓰며 전업 소설가가 된 그에게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생활을 만들어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정기적인 출퇴근 없이 자유로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생활 규칙을 만들어야만 하고, 기복 없이 꾸준히 나아가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쪽의 작업에 관해서는 상당히 인내심 강한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때로는 지긋지긋하고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 또 하루, 마치 기와 직인이 기와를 쌓아가듯이 참을성 있게 꼼꼼히 쌓아가는 것에 의해 이윽고 어느 시점에 ‘그래, 뭐니 뭐니 해도 나는 작가야’라는 실감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실감을 ‘좋은 것’ ‘축하할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금주 단체 표어에 ‘One day at a time’(하루씩 꾸준하게)이라는 게 있는데, 그야말로 바로 그것입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책을 읽으며 따로 표시를 해두었던 페이지다. 공감이 되었다. 하루치의 몫을 꾸준히 해나가는 자는,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몸 안에서 ‘뭔가’가 일어난다. 나도 그 경험을 하곤 했었으니 그 ‘뭔가’라는 단어에 먹먹함을 느꼈다. 나처럼 나약한 사람에게 무척이나 강인해보이는 그도 매일 반복되는 행위에 지긋지긋하고 싫어질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감정의 몰아침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내적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고 묵묵히 나아갔기에 지금의 성과와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지속적이고 탄탄한 집필 역사를 보면 저절로 믿게 된다. 꾸준함이 주는 결과에 대해서. 그렇다면 그 강인한 뚝심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그는 달리기와 함께 ‘지속력’을 키웠다.

 

 

 

그리고 지속력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무라카미 하루키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달리기다. 그는 기초 체력에 대해서 무척 강조를 한다. 소설이라는 가상의 세계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에 고도로 집중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시간 외에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즐거운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특히 그는 달리기를 통해서 소설의 세계를 떨쳐내고 그의 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아주 오랜 시간 노력해왔다. 달리기를 주제로 책 한 권을 쓰는 그를 보면 짐작이 될 것이다. 전업 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삼십 년 넘게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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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껏 작가라는 세계에서 육체적인 단련의 행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을 수도 있다. 소설가라 하면 술과 밤의 힘을 빌려 달빛 밑에서 작품 하나를 써낼 것만 같은 상상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기초적인 체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에세이에서 역시 말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너무 건강해져서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냐며 비웃음을 쳤다고 하지만, 그의 신념은 결국 독자들에게 그가 여전히 찬사를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지속력을 위해서 끊임없이 육체적인 단련을 하고, 그것을 인생의 의미로 두는 그를 보며 또다시 배운다. 매일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만들고, 나와의 약속을 지켜나가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뭔가’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느끼는 것의 반복이 이상을 성취할 수 있는 진전되는 삶이 아닐까.

 

꾸준함 그리고 그것을 위한 지속력에 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통찰은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아직도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나에게 여전히 쉽지는 않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일도, 매일 아주 사소한 일을 지켜나가는 일도 말이다. 여전히 무너지고 자주 멈춰있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참된 인생을 위해서 노력하는 그를 보면, 젊은 나는 한없이 반성을 하게 된다.

 

 

 

업에 대한 이야기


 

그를 생각하면 꾸준함, 그것을 뒷받침하는 강인한 체력에 대한 이야기와 덧붙여 흔들리지 않는 업에 대한 소신이 떠오른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소설가의 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문학상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아 왔다. 그는 묵묵히 집필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사회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단 생각이 든다. 그는 오래도록 가져온 생각을 마침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한 파트로 소신껏 드러낸다.

 

 

아마도 ‘참된 작가에게는 문학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라는 것이겠지요. 그 하나는, 자신이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이고, 또 하나는 그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독자가 –그 수의 많고 적음은 제쳐두고-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실감입니다. 그 두 가지 확실한 실감만 있다면 작가에게 상이라는 건 어떻게 되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런 건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혹은 문단적인 형식상의 추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글을 보며 업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고, 그것을 위해서 하루씩 채워나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과 사회적인 인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업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업에 대한 애정과 그로 발생하는 가치에 대한 동의가 마음속에서 충족이 된다면, 그 외의 인정이나 명성에 대한 것은 군더더기나 부가적인 산물일 뿐이다.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회로 들어서기 전 많은 청년들이 끊임없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고민한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잘 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서 결국 괴롭지 않을 수 있는가와 같은 고민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어떤 일이든 겪어봐야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고민에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무척이나 많은 수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좀처럼 설레는 구석을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을 하기는 내 인생이 너무나 소중하다. 가슴은 뛰면서도, 괴로움을 견디고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일에 뛰어들고 싶다. 그 일로 인한 결과물들이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부합한다면 더없이 멋진 업을 가진 것이 아닐까.

 

우연한 순간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운에 뒤따른 그의 꾸준한 노력과 흔들리지 않는 이러한 소신들은 그를 오랜 시간 소설가로 사랑받게 하고, 문학사에 이름을 굵직하게 남기게 한 이유일 것이다. 그의 생각은 20대인 나에게 큰 영감이 되어 아직도 마음 속에 꿈틀거리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그의 소신과 통찰을 깊이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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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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