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자기에서 발견한 비정형 속 매력 [시각예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도자 기법들
글 입력 2019.10.0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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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빛깔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멀쩡해 보이는 도자기를 망치로 깨부수는 모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일 것이다. 그저 스테레오타입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완성된 도자기의 품질을 따지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빛깔이기 때문이다. 고려청자의 시작은 옥빛을 재현하기 위함이었고, 소박해 보이는 조선백자 또한 흰빛을 내기 위해 원료 속 철분을 정제하는 세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조선 초기 유행했던 분청사기는 이 둘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분청사기는 조선 초기에 유행했던 양식으로, 잡물이 섞여 거친 느낌이 나지만청자와 같은 성분의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분청사기 또한 청자의 일종이다. (참고 - 이태호, 이야기 한국미술사, 2019, 마로니에북스, p.136) 또한 백토로 분장하기 때문에 청자에서 백자로 흐르는 과정적인 단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분청사기는 눈에 띄게 화려하지도 않을뿐더러 제작 과정도 백자나 청자와 비교했을 때 까다롭지 않아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분청사기는 백자나 청자와 달리 형식적인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웠다. 이러한 분청사기만의 매력은 오늘날 보았을 때 오히려 신선하고 세련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도 자유분방한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덤벙기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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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덤벙(분장문) 잔, 조선 16세기
입지름 11.5cm, 동아대학교박물관


덤벙기법이란 도자기의 아랫부분을 잡고 백토에 첨벙 담가 모양을 내는 기법이다. 상감기법이나 음각기법과는 대조적으로 명쾌하고 간편한 과정으로 이루어져 다른 기법에서 찾기 힘든 특징을 갖는다. 16세기 당시에 사용되었던 덤벙기법은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무늬를 내기 위함이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 잔은 실용적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에 새겨진 무늬는 공들여 새긴 무늬와는 다른 자유분방하고 시원한 멋을 자랑한다. 만드는 사람조차도 어떤 무늬가 완성될지 알지 못하는, 즉흥적인 과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즉흥적인 분장기법은 현대도예가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즉흥성’이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것은 이강효 작가의 작업이다. 그는 30년간 도예에 몸담으며 한국의 분청사기를 세계에 알린 도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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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 도예가의 분청사기 퍼포먼스

 
그의 활동 중에서도 대형 도자기의 태토 위에 화장토를 바가지에 담아 뿌리는 작업은 제작 과정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퍼포먼스이다. 그가 흰 화장토를 잿빛의 도자기에 흩뿌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작품의 일부가 되어, 완성된 도자기와 따로 떨어져서는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이 방법 또한 덤벙 기법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세부적인 디테일은 예상할 수 없다. 물론 무늬의 커다란 방향성은 작가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겠지만, 완성된 작품이 어떤 무늬를 갖게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분청사기에서 백토를 태토 위에 덮으며 시도되는 다양한 분장기법 이외에도,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기법으로 라쿠기법을 들 수 있다. 라쿠기법이란 초벌구이된 도자기를 뜨거운 가마에 넣었다가 곧바로 꺼내 급랭시키는 기법이다. 이로 인해 온도의 급강하를 겪은 도자기 표면의 유약에는 균열이 생기게 되고, 그 사이로 연기가 들어가며 독특한 효과를 낸다.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무늬는 예측할 수 없어 그야말로 이 세상에 하나뿐인 도자기를 만들어 낸다. 흔히 사람들은 모든 공예품, 작품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잘 어울리는 장르는 라쿠 도자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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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엽 도예가의 <비슬산의 파노라마>


라쿠기법은 일본에서 개발되었다고 알려져 있어 국내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라쿠 도예가는 양동엽 작가이다. 그의 도자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표면에 자잘하게 새겨진 검은 실금이다. 윤곽선이 배경과 한데 어울려 뭉개지는 자연적인 형상들은 유기적이고 날카로운 실금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지만 지루하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나는  가끔 기계로 찍어낸 듯이 깔끔하고 세밀한 것들보다는 편안한 멋을 찾는다. 대칭이 맞지 않는 스타벅스의 로고나 달항아리 등이 오히려 우리의 눈에 편안함을 준다는 비대칭의 미학처럼, 정형화되지 않은 모양새가 더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차고 넘치는 천편일률적인 인공물들 사이에서, 그들과는 완전히 대조를 이루는 자연물의 조화는 당연히 새롭거나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앞서 설명한 도자기들처럼 각자가 예상할 수 없는 매력을 뽐내는 것들이라면 더더욱이다. "이걸 어떻게 손으로 했지?" 싶은 정교하고 세밀한 무늬는 이미 공장제 상품에서 많이 보았으니 말이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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