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쪽바리? 조센징? 그냥 사람이면 안 되나요? - 혼마라비해?

우리는 알 수 없는 설움에 대해
글 입력 2019.09.2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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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때로 오해를 하며 산다. 이러한 오해는 대부분 편견에 의한 것이다. 외모적으로는 몸집이 크거나 타투, 피어싱을 한 사람을 보며 무섭다고 생각하거나 키가 작고 왜소한 몸집의 사람은 나이가 어릴 것이라고 단정하는 일, 직업적으로는 선생님의 경우 모두 착하고 상냥하다고 믿는 일, 인종적으로는 동양인이 주로 순종적이고 누구에게나 사근하며 흑인은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상황 모두가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연극 <혼마라비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재일한국, 조선인에 대한 오해를 대한민국에서만 자란 한국인의 시점에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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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신영주는 2009년 여름 극단 마사루의 작업을 돕기 위해 오사카로 향한다. 거기서 조선인 지숙이와 친해져 그가 하숙하는 츠루하시 시장골목 잡화점에 들어가게 된다. 잡화점의 액자에는 커다란 김일성, 김정일 사진이 놓여있다. 영주가 그들을 보고 간첩이라며 무례할 정도로 겁먹을 때, 그들은 웃으며 조선인일 뿐이라고 말한다.


조선인이란 무엇일까. 왜 난데없이 2000년도에 조선인이 나타났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도, 민속촌에 방문한 것도 아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일본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조선반도 출신자’라는 뜻으로 조선인이라고 불렀다. 이후 한일 조약이 체계됨에 따라 일본 정부가 남한 국적을 인정했지만 북한 국적은 아직 인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즉 재일조선인은 조선반도에 살았던 사람일 뿐 북한인이나 남한인 등 국적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명칭은 아니라고 한다.


영주의 편견으로 인한 오해는 이뿐만 아니다. 그들의 속사정은 모르고 무조건 일본인은 재일한국, 조선인을 차별하지만 한국인을 그렇지 않다고 남한 국적을 받으라고 주장한다. 또, 민족학교에서 북한식 교육을 배우는 것도 비난한다. ‘오사카 고교 무상화 차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별안간 민족 학교만 무상화 하는 차별적인 정책을 옹호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북한은 독재자가 다스리는 곳인데 이 때문에 이유 없이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의 사상을 배운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독재 정치는 나쁜 것이 맞고, 이 때문에 죽어가거나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극 중에서 지숙은 북한은 재일 한국, 조선인을 돕기 위해 기부를 하는 둥 도움을 주지만 남한은 그런 도움이 없다고 답한다. 일본 학교에 가면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극히 줄어들어 조선인으로써의 정체성을 다지고 언어를 배울 기회가 희박해지는데 영주의 말대로 하면 대체 어디에서 조선어, 한국어를 배우고 역사를 배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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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는 하나 더 있다. 숫자 ‘육’을 ‘륙’이라고 발음한다는 이유만으로 일주일 내내 현규를 놀린다. 극 속에서 영주 딴에는 친해지는 방법이라는 듯 넘어가지만 말투를 놀리는 행위는 누구에게도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육’이 언제나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말투를 고치기 위해 행동하고, 고쳐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있다. 서울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유월’이라고 발음한다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육월’이라고 발음하는 걸 놀린다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당연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쌍시옷 발음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쌀, 쌍 등의 발음을 해보라고 부추기고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비웃는 것 역시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표준어, 표준발음이라는 것이 지정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하나의 기준선을 만들어 둔 것이지 표준어 외의 모든 사투리가 틀렸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북한 어투와 남한 어투를 비교한다면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해진다. 어투나 발음에 친숙한 것은 있어도 옳은 것이란 없다. 발음의 차이를 놀리는 영주의 가장 큰 실수는, 공연장 내에서 모든 관객이 그러한 현규의 발음을 놀리도록 만든 것이다.


공연 중 영주는 나레이션으로 어느 날 현규가 그를 기타로 내리칠 뻔했다고 말하고, 상황을 재연하는 동안 ‘육’과 ‘륙’을 오가는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관객석에서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만일 이렇게 단순히 발음을 가지고 놀리고, 자신의 발음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걸 말하려면 기타를 들고 화를 낸 후라도 정정을 해야 했는데, 장면은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습니다, 하는 말로 끝난다. ‘육’과 ‘륙’의 차이를 지적하는 게 아무 문제도 없고, 단순히 웃어넘길 이야기일 뿐이라는 듯이.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관객인 ‘한국인’이 주로 이입하는 상대는 ‘한국인’이자 주인공인 영주일 것이다. 영주가 장난스럽게 말하고, 우진이도 장난스럽고 과장되게 ‘육’ 발음을 확실하게 말하는 와중에 주눅이 든 듯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현규의 ‘륙’ 발음은 웃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장면에서 바로 옳지 않은 상황임을 말하지도, 후에 정확하게 잘못된 상황임을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꾸만 걸렸다. 누군가는 자신이 웃었던 상황이 옳지 않음을 이해하고 가겠지만, 아무런 문제도 인지하지 못하고 누군가 ‘륙’이라고 하면 웃을지 모른다.


이렇듯 공연 <혼마라비해?>는 한국에서 자라 한국인만 보고 살아온 영주의 시선으로 진행되다 보니 대부분 한국에서 자라 한국인만 보고 살아왔을 관객은 영주가 편견을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영주의 의견과 말은 필요 이상으로 길고, 반면 이에 반박하는 지숙의 말은 짧게 지나가 아쉬움이 남았다.


또, 연극적 허용으로 자리에 앉아있을 대부분 관객이 이해하는 한국어로 말해주어도 될 장면을 일본어로 말해 몇 장면은 분위기로 추측해 의미를 이해할 뿐 정확한 뜻을 알기 힘들었다는 점도 다소 아쉬웠다. 일본의 여학생의 ‘헤이트 스피치’ 장면에서 지숙이 그의 말을 해석해주긴 하지만, 여학생의 외침이 너무 크고 통역과 겹쳐 말하는 부분이 있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물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인종을 비하하는 장면이니 일부러 그렇게 겹쳐 의미가 제대로 들리지 않게 했을 수도 있으나, 그렇다면 장면을 축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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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점도 분명 많다. 부끄럽게도 재일한국, 조선인이라는 명칭 자체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점이 분명 가장 큰 소득일 것이다. 영주가 왜 갑자기 조선인이라고 말하느냐고 소리칠 때 관객들 역시 왜 조선인인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후에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에 대해 인식하고 이해한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며 멸시받고 한국에서는 쪽바리라며 욕먹으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그들의 이야기와 상처를 듣다 보면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무관심이, 멸시가 부끄러웠다.


공연을 보고 있자니 문득 하나의 사건이 생각났다. 요 근래 일본과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물론, 곳곳에서 ‘NO 아베, NO 재팬’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에서는 그 ‘NO 아베, NO 재팬’ 현수막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노인이 그 현수막을 모두 떼어갔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이러한 현수막 때문에 한국에서 살고 있을 일본인이나 한국과 일본 양쪽의 피가 섞인 아이들이 피해를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고 한다.


헛된 걱정은 아니다. 불매 운동이 시작되면서 일본식 음식점에서 일하는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에게 욕을 하고 갔다는 이야기, 먹지도 않을 일본 제품을 사 실온에 한참 놔둬 상하게 만든 뒤 반품했다는 이야기 등이 인터넷상에서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한국인 남성이 일본인을 폭언, 폭행하는 범죄가 벌어졌다. 단순히 반일 감정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겠지만, 현수막을 떼어간 분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한국은 결코 모든 인종에 평등한 국가가 아니다. 특히 과거의 고통과 상처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상황에서 일본에 대한 시선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의 아픔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재일한국인, 조선인, 혹은 일본인이 상처를 받는다면 고통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일본인도 아니고 일본에서 살아본 적도 없으므로 그들이 무슨 이유로 ‘헤이트 스피치’를 하고 조선인의 저고리를 자르는 둥 가해를 끼치는지 잘 모르겠지만, 단순히 누군가에게 가해를 끼칠 수 있다는 권력에서 오는 즐거움이라면 이를 강력히 처벌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인종 차별을 유발할 수 있는 일은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21세기다. 더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노예가 없고, 차별이 나쁘다는 것도 모두 인정한 시대다. 연좌제가 폐지된 현재, 죄를 짓지도 않은 무고한 사람을 비꼬고, 괴롭히고, 가해하는 행동은 결코, 무슨 이유를 들먹여서라도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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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란 사람의 집단이 모인 뒤에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보호받기 위해 탄생한, 개념에 더 가까운 사회 현상이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는 대부분 그러한 나라의 개념과 거꾸로 가고 있다. 재일한국, 조선인은 일본과 조선반도, 두 국가에 속해있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그들은 한국인이자 일본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를 알지 못하고 배척하기만 한다.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나라는 의미 없는 허상일 뿐인데도, 그들은 특히 극 중 광식이 아저씨는 자신의 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무례한 욕을 먹는 것을 참는다. 이젠 국가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줄 차례이다.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지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한민족이라며 마냥 품어주는 것도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자신이 정한 정체성이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한국인이든 무시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 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쪽바리도 조센징도 아닌 그저 하나의 인격으로 말이다.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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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그녀
    • 편견없이 그 사람으로 바라봐주자로 시작해서 영주가 주인공인게 싫다로 끝난 느낌도 있네요... 극 줄거리만 보면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와 견우가 떠오르기도하는데, 그녀가 영화상에서 했던 행동들을 현규에게하면 현규는 기절하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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