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더 나은 사회를 희망하는 개인의 고발, 연극 "킬롤로지"

글 입력 2019.09.25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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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입장했던 것과는 달리,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오늘 난생 처음 만난 세 명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마음이 무겁고 어렵고. 가끔은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용납하기 힘들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다시 되돌아올 수는 없더라도 그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또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보자, 다들.


2018년 7월 1일. 작년 여름, <킬롤로지> 초연을 보고 적어둔 메모다. 1년하고도 2개월 후, <킬롤로지>를 다시 만났다. 알란, 폴, 데이비.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화가 났다. 그들이 처한 현실이,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말이. 일 년 전 그때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내 감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어떤 ‘희망’이다. <킬롤로지>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괜찮은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고발하고 발화하고, 그리고 ‘희망’하고 있는 극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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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시작으로 한 게임을 개발한다. 이름하여 ‘killology’.


그런데 이 게임과 똑같은 방법으로 한 소년이 살해된다.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알란’은 복수를 결심한다. 폭력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 인물, 알란, 폴, 데이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란은 게임 ‘킬롤로지’를 ‘직감으로 익히는 살인 연습’이라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폭력을 연습하고 있다. 게임, 영화, 드라마. 매일 폭력을 보고 듣는다. 총격을, 폭발을 본 적이 없는데도 그 장면과 소리를 쉽게 떠올린다. 마우스 클릭 몇 번, 키보드 타자 몇 번이면 상대는 죽는다. VR이라는 새로운 게임 시스템을 통해서는, 폭력의 감각이 오감에 스며들게 되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빠짐없이 우리는 폭력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이 미디어의 탓만은 아니다.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은 미디어를 다시 따라하니까.


데이비가 살아온 삶은 그 ‘현실’을 보는듯하다. 미디어가 반영한, 미디어를 복제한 현실. 아버지는 만나기 어렵고, 함께 사는 어머니는 자신을 컨트롤하기 위해 집에 가둔다. 학교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바와 상관없이 소위 무서운 아이들의 기분을 맞춰야 한다. 그들을 건드리면 말그대로 ‘죽는다’. 데이비는 자신의 목숨 대신 아버지가 준 가장 소중한 선물, 메이시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다. 강자에게 다른 약자를 건네고 목숨을 부지한 데이비는, 그 분노와 처참함을 ‘무섭지 않은’ 대상에게 분출한다. 본인이 겪은 폭력을 답습하고야 만다. 9살, 13살, 16살. 그때의 데이비 나이였다.


폭력은 자주 반복되고 뒤집힌다. 강자는 또 다른 강자에게 약자가 되고, 약자는 또 다른 약자에게 강자가 된다. 그 사이에서 묵힌 분노와 슬픔은 애꿎은 자들을 향해 분출된다. 데이비만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폴에게 복수하려 했던 알란, 그런 알란을 무력으로 제압해 게임을 실현하는 폴. 그들 역시 그러했다. 참 이상하다. 서로의 고통을 그렇게나 잘 알고 있으면서, 폭력은 답습된다.


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학교 폭력의 현장에서 가해와 피해 현상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고 한다. 바로 '모방' 때문이다. 피해자였던 학생이 자신이 받은 행위를 모방하여 타인에게 행하는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에게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은 목격되고 학습되어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주관적 규범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모방된 폭력의 책임은 쉽게 분산된다. 그야말로 근원지를 알 수 없는 폭력의 ‘전염’이다. <킬롤로지>는 폭력의 악순환 속 사회를 현실적으로 고증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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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매일 밤 전 그 애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을 꿈꿉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 받아들이기 버거운 일들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자주 그런 상상을 한다. 알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후회를 넘어, 상상 속에서 데이비를 살려내기 시작한다. 그 아이가 될 수 있었던 여러 모습들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중에는, 병원의 일부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을 함께 지켜내는 데이비의 모습도 있다. ‘될 수 있었던’ 모습들- 지금은 사라진 그 가능성과 희망 안에서 알란은 매일 헤엄친다. 놀랍게도 그 모습들은 폴의 아버지가 어린 폴을 데리고 했던 말과 겹친다.


폴의 아버지 “폴리, 네가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다 해라.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손을 잡아주지 못해 뭐든 될 수 있었던 데이비를 놓친 알란, 뭐든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코 아버지께 인정받지 못했던 폴. 그들의 모습은 묘하게 서로를 마주본다. 참 아이러니다.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던 한 아이는 결여가 만들어낸 폭력성을 어떤 사회적 책임 없이 상품화시키고, 수 없이 많은 ‘될 수 있었던 모습들’을 가진 한 아이는 그 상품화된 폭력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비의 마지막 말은 ‘뭐든지 될 수 있었던 폴’, ‘알란의 상상 속 데이비의 모습들’과 이어진다.


데이비 "별을 향해.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결코 닿을 수 없는 별. 그 것은 하나의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의미하는 것만 같다. 도처에 존재하는 개인적 구조적 폭력으로 인해 결코 닿을 수 없었던 어떤 ‘미래성’ 말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었던 그 작은 희망.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대사는 그 희망에 대한 지지 요청이다. 데이비가, 알란이, 폴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관객이 알아주고 함께 해달라는 희망적 요청. 결코 닿을 수 없어 보이는, 결코 될 수 없어 보이는 그 모습을 실제로 성취할 수 있도록 분산되어버린 폭력의 책임을 외면하지 말라는 간절한 발화. 다시 만난 <킬롤로지>에서 나는 이런 새로운 감상을 만났다. 처절한 고발뿐만 아니라, 간절한 고백을 들었다.


알란, 폴, 데이비의 모습은 익숙하다. 다시 만나서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할 법한 그들의 모습 때문이다. 거리에서 마주칠 누군가의 간절한 고백을 아주 깊고 깊게 엿듣고 온 기분이다. 여전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들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만큼 여전히- 그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란다. 새롭게 발견한 희망만큼 더, 더. 새롭게 발견한 희망만큼 더, 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결코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그들의 희망과 가능성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기로 한다. 별의 빛이 그들에게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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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롤로지

- Killology -



일자 : 2019.08.31 ~ 2019.11.17


시간

평일 8시

주말 및 공휴일 3시, 6시 30분

월 공연 없음

*

8/31(토), 9/1(일) 6시 30분 공연만 있음

9/12(목) 3시, 6시 30분

9/13(금) 4시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0,000원


제작

(주)연극열전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25분 (인터미션 : 15분)






전문필진 태그.jpg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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