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요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문화 전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를 읽고
글 입력 2019.09.2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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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의미는 다시 빈칸이 되었다. 언론인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멀어지면서 언론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했다. 더이상 종이 신문을 사 읽지 않게 되었고, 즐겨 읽던 시사 주간지의 구독을 취소했으며, 정치적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그렇게 해도 전혀 불편한 일이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나 아닌 다른 이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무엇을 위해 신문을 읽었을까. 신문 읽기가 나에게 의무였을 때에는 이 질문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아침 일찍 편의점에 들러 신문을 사고, 도서관 책상에 앉아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좋았던 기사는 오려내 노트 사이에 꽂아두면서 나는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선거 제도 개편안에 대해 아는 일, 중남미국가의 빈곤 문제를 들여다보는 일, 누군가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하는 일은 왜 그리도 중요한 것으로 다가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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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표현하는 데 흔히 사용되는 단어들은 꽤 낯익지만,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 그것의 실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도 모르게 새로운 문제는 또 생겨나고, 그 갈등의 여파는 서서히 퍼진다. 그리고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난제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프랑스의 시사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 디플로)는 이 난제의 실체를 드러내 보인다. 어렴풋이 의문을 가져왔던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하나하나 천천히 파헤친다. 누군가는 코르시카섬이 가진 트라우마의 원인이 자국의 역사적 잘못에 있음을 밝히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간과되는 빛 공해 문제의 정치적 철학적 논점들을 제시한다. 읽다 보면 접근조차 어려웠던 문제들이 손에 잡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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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면에 실린 [‘어두운 밤’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라!]는 사회학자 라즈미그 크쉐양의 글이다. 필자는 빛 공해가 심각해진 오늘날 어둠도 하나의 권리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기사의 한가운데에는 윈슬로우 호머의 그림 <여름밤>이 있다.


그림 속 ‘어둠이 있기에 빛나는’ 것들은 사실상 오래전 우리 곁을 떠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잃어버린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빛 공해 문제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르 디플로는 이미지를 통해서도 말을 건네는 듯하다.


르 디플로의 필자들은 너무도 담담하게 세계의 여러 갈등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분명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지만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차근히 여러 차원에 접근해가고, 논의에 필요한 지점들을 제시하며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질문을 받은 나는 잠시 글에서 눈을 떼고 생각에 잠긴다.


당연하게도 모든 사안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이는 세계 안에 공존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책임이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삶을 전할 의무를 진, 앞선 세대로서의 책임이다. 나아가 눈과 귀를 막고 혼자 사는 세상인 양 살아서는 그 무엇도, 아주 사소한 문제조차도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닫는 데서 오는, 나 자신을 위한 책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책임은 아직 희망이 존재함을 증명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함께하면

또 다른 세계도 가능하다”


- 자크 데리다



르 디플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나서야 1면 하단에 있는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두려움의 실체를 보고, 사유하고, 또 토론하고, 행동할 때, 지금과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르 디플로를 읽으며 깨달은 이 새삼스런 사실을, 마치 처음 알게 된 것인 양 마음에 새긴다. 르 디플로가 펼쳐 보이는 넓고 복잡한 세계 속에서 나는 덜 외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덜 불안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앞에 놓인 수많은 질문 앞에서 조금은 고요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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