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폐기 [사람]

사람 폐기
글 입력 2019.09.0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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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침 무기력증도 해소할 겸, 오래 살아서 친해진 사장님이 계신 집 앞 편의점으로 출근한다.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냥 정리 좀 하고 청소도 하고, 겸사겸사 폐기도 얻어서 밥값도 안 드는 그런 삶. 나름 좋다.


그러다가 문득, 내 인생도 폐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어서 팔릴 수 있는 물건이었는데, 시간이 지났다나는 이유로 그 물건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나도 그런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나의 가치가 있었던 사람 같았는데, 요즘은 내가 봐도 내 가치는 0이다. 정말 똥만 싸는 기계 같다고나 할까. 차라리 페기라면 다른 사람이 먹어도 되는데, 나는 누군가에게 다시 먹힐 수도 없어서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는 폐기 같다.


그래도 쓸모 있는 폐기라도 되고 싶어서, 나름대로 나를 꾸며도 보고 나를 설명해 본다 하더라도, 내가 폐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를 선택하는 사람도, 폐기를 선택하는 사람처럼 극소수겠지. 모두에게 공개된 그런 것이 아닌,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보고, 선택권으로 선택하기 보다는 ‘그나마’ 나은 것이 나의 한계점인 것 같아서 폐기를 볼 때마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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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릴 적부터 폐기가 아닌 사람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정상 상품이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남보다 좋아서 선택당하기보다는, 차선의 방법으로 선택 당해왔다. 나는 늘 최선이고 싶은데, 나를 뽑는 것이 최고여서 뽑히고 싶었는데, 언제나 나는 차선책이었다.


달에 한 번씩 뽑는 반장 선거에 3월부터 꾸준히 나가는 아이었다. 하지만, 늘 10월 달에 반장이 되는, 정말 뽑을 사람이 없어서, 그때서야 반장이 되는 아이. 아아.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 폐기가 된 것이 아니라, 늘 폐기 같은 차선책이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언제나 나의 삶은 그래왔다. 친구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뭔가를 부르기에는 일번으로 불러 주지 않는 아이. 두 번째로 생각나는 아이, 있음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그런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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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선택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서 노력해왔는데, 물론 남들에게는 남들의 시선이 뭐가 중요해 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 거짓말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남들에게 멋있고 선택당하고 칭찬받기를 원한다. 그런 나를 모르는 척, 나에게 집중하는 척 했지만,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남들의 눈에 예쁘고 그리고 선택당할 수 있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언제나 특별한 척 하곤 했지만, 사실 특별한 거 하나 없는 나이다. 무엇하나 엄청나게 예쁘지도 그렇다고 글을 번쩍 잘 쓰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많이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남들이랑 그나마 다른 점이라고는 우울증이나 조울증이 심하다는 것. 오히려 그런 것으로 내가 거기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우울한 내가 특별해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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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 말씀하신다. 송희씨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내가 과연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나에게 집중한다고? 그러면 나의 못난 모습이 너무나 잘 보이는데, 어떻게 나에게 집중을 해? 나의 못난 모습을 보기도 싫고 그렇다고 남들에게 보여주기도 싫고 내가 폐기라는 본질을 보여주기 싫어서 바득바득 정상 상품인 척 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와서 내가 폐기인 것을 보여주라고? 나의 실제 모습인 폐기로 존재하면 지금의 선택마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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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지금처럼 거짓으로 꾸며낸 모습으로, 그나마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 사람들도 나의 진짜 본질을 알면 떠나버릴 것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정상 상품인 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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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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