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대한민국은 단일 민족 국가다? 연극 "혼마라비해?"

단어에게 배척받는 사람을 위한 이야기.
글 입력 2019.09.0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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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단일 민족 국가다.


한국인 중 이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 굉장한 문장이다. 이렇게 대단하면서 널리 퍼진 문장은 좀처럼 찾기 힘들 것이다.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선생님은 장난스러운 어조로 다른 나라는 여러 인종이 섞여 복잡하고 문제도 많다, 한국은 하나의 인종만 있기에 좀 더 우수하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선생님 말씀이 정답이라고 믿었던 그때는 그렇구나, 생각했다. 어딘지 애국심이 차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 반에는 다문화 학생이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약 12년간 주변에 다문화 가정 학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단일 민족 국가다. 단일 민족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 거주하는 수많은 외국계 한국인이 교과서에 쓰인 저 한 마디에 한국인이 아니게 되었다. 20년도 채 되지 않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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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기도 전에는 ‘튀기’라는 비하적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 책에 쓰인 것 외에 ‘튀기’라는 단어를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태어난 이후엔 혼혈이라는 말을 주로 들었다. 최근에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단어를 쓰거나 외국계 한국인이라는 말도 종종 사용하는 추세다. 글을 쓰기 위해 소수의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어떤 용어가 비하적이지 않으며 서로가 불편하지 않을 수 있을 거 같냐고. 정해진 답이 없고, 당사자도 아니었기에 친구들에게 들은 답이 정답이라 확정 지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하나의 대답으로 쏠린다면 적어도 그 용어를 이 글에 쓸 생각이었다. 의외로 대답은 엇갈렸다.


혼혈이라는 단어는 순혈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단일 민족 국가라는 것과 비슷하다. 단일 민족에 포함되지 않지만 한국인인 사람은 순혈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보일 수 있다. 민족 우열 주의와 연결되기도 한다. 어떤 민족이 우수하고 어떤 민족이 열등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비록 단어를 사용할 때 순혈의 반대 의미로 쓰지 않더라도 사용하기 힘들어 보였다.


외국계 한국인이란 단어는 과거 미국인 친구에게서 답을 들은 적 있었다. 한국인 외에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지 않았던 나는 미국인 친구에게 너를 (되도록 구분하지 않은 게 좋겠지만, 부득이 필요한 상황에서) ‘흑인’이라고 말하는 것과 ‘외국계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것 중에 무엇이 낫겠느냐고. 친구는 자기는 ‘흑인’이 낫다고 답했다. 자신은 미국 출생이고, 가족도 미국인이라 ‘외국계 미국인’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흑인’이라는 말에도 혐오가 들어가 있지만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하나의 명사로 사용하는 건 괜찮다는 뉘앙스였다.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강조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렇다. 외국계 ㅇㅇ인이라는 지칭이 모든 사람을 포괄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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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다문화 학생은 교육과정에서 사용하는 용어라고 한다. 그러니 가장 적합한 단어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다문화 가정이나 학생이 아닌 한 사람을 지칭할 때는 쓰기가 매우 곤란했다. 다문화인은 이상하고, 다문화 아동은 어른을 지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많은 사람이 다문화라는 말을 없애자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다문화라는 용어를 만들어 따로 지칭함으로써 차별을 한다는 뜻이다.


자꾸만 다문화 가정, 학생이라는 말을 없애야 한다는 말이 맴돈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말을 하는 용어를 만들었기에 차별이 생기고 편견이 생긴다. 단일 민족이라는 말 아래 모두를 하나로 모아둔다면 적어도 그 안에서 민족성을 두고 싸움이 일어나진 않는다. 반대로 다문화, 혼혈 등의 말을 사용함으로써 나와는 다른 존재로 배척한다.


결론적으로 다국적,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을 말하기 위한 적당한 용어를 찾지 못했다. 언어는 이게 참 어렵다. 본래 단어의 뜻에 혐오가 없으면서 현재 사람들이 그 단어를 조롱의 의미로 쓰지 않기란 밤하늘의 별 따기다. 물론 당사자를 찾아 물어본다면 더 좋은 답이 나오겠지만, 친구 관계가 좁은 내게 지금 당장 물어볼 사람이 마뜩잖다.


지금도 어떤 용어를 써야 할지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어 고르지 못한 건지, 지나치게 관심이 없어 찾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나아가려면 조언을 받는 게 현명해 보인다. 다른 의견을 가진 분이 계신다면, 답을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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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깨달은 것이 있다. 대한민국은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튀기, 혼혈, 다문화 가정 사람, 외국계 한국인, 어떤 명칭이 적당한지 모르겠으나 이미 오랫동안 원치 않게 분류되던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굳이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배척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가위로 색종이 오리듯 잘라내 없던 일로 하는 게 된다는 것도 아니다.


연극 <혼마라비해?>는 바로 이런 고민을 담고 있다. 21세기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와 너, 한국과 일본, 한국인과 조선인, 국적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공연은 일본에서 실제로 자이니치와 만나 겪었던 일화에서 출발해 ‘헤이트 스피치’, ‘오사카조선학원 고교 무상화 차별 사건’ 등 일본에서 실제로 벌어진 인종차별 사건을 사실적인 대사를 통해 더욱 유쾌하고 재치있게 다룬다.


남한, 북한, 일본. 태어날 때부터 어느 한 나라의 소속이 되는 것에 자격이 있는 건지 고민하던 재일 교포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 신영주의 만남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한 번쯤 생각해볼 이야기이다.



대학로에서 연극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영주’. 2009년 여름, 영주는 일본 극단 ‘마사루’의 작업을 돕기 위해 일본 오사카를 방문하게 된다. 외로운 타지 생활이 될 뻔했으나, 거기서 알게 된 재일 교포 ‘지숙’의 도움을 받아 순탄하게 적응해 간다. 작품 번역 일을 위해 지숙의 도움을 받기로 한 영주는, 하루 날 잡고 연극연습이 끝난 후 지숙이 하숙하는 츠루하시 시장 골목 잡화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있는 김일성, 김정일 사진. 영주는 곧바로 얼어붙고 만다.


‘혹시 이들은 간첩?’



사건의 시작이 다소 유쾌할 거 같은 시놉시스를 읽고 나니 불쑥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한국은 단일 민족 국가라는 문장에서 유일한 장점을 찾아냈다. 간첩이든 아니든,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말. 한국인과 조선인, 재일 교포. 공연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의 민족적 정체성이 다르더라도 결국 우리는 한민족, 한인종이다. 같은 지구인이고 같은 우주인이다. 연극 <혼마라비해?>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아직 검은 상자 내에 들어가지도, 시작 전 두근거림을 느끼지도 못했으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해 어떤 견해를 녹여냈을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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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라비해?
- 극단 실한의 2019 두 번째 프로젝트 -


일자 : 2019.09.20 ~ 2019.09.29

시간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기획
극단 실한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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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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