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이란 준비되지 않았지만 준비된 것 - 지금 여기, 마임 [공연]

나이 듦과 나이드는 삶에 대해
글 입력 2019.09.0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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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마임>의 공연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놀라웠다. 몇몇 소리를 사용하는 마임이스트도 있었지만, 소리를 하나도 넣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사람들에게 눈물을 안겨주는 마임이스트도 있었고, 소리가 분명 없는데도 바람에 날려가는 장면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공연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임이라고 하면 현실보다 좀 더 춤에 가까운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또 다르게 신명 나기보다는 슬픔을 가진 공연도 꽤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 마임>을 관람했던 8월 24일은 5명의 마임이스트가 공연을 하는 날이었다. 5명의 마임이스트 모두 마임의 성향이 달라서 누가 가장 잘하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고, 그들 각자의 무대에 빠져드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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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공작소 판 대표 고재경



우선 첫 번째로 공연을 보여준 고재경 씨는 ‘여정’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삶의 길에서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 앞에서 당당하고 싶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마임은 실제로 놀라울 정도로 꼼꼼했는데, 거친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을 손으로 잡고 아주 세게 펄럭거리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또, 앞이 가로막힌 미로라고 가정한 공중에 손을 짚어가며 열심히 달려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이 우리의 인생을 시각화한다면 그처럼 필사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마임이었다. 어쩌면 실제로 우리가 겪고 있는 인생 그 자체보다 그가 보여준 무대처럼 혼자 등장해서 아무런 위험이 없는데도 위험을 겪고 있는 모습이 우리의 삶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나 자신의 고통이 절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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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공작소 판 대표 고재경



개인적으로 소리 없는 마임의 태초 본성에 맞는 형식을 잘 살렸다고 생각해서, 고재경 씨의 작품목록을 찾아보니 정말 작품들이 많았다. 마임이라는 것에 처음 접한지라 내가 본 것은 이번 작품이 처음이겠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직접 찾아가서 관람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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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산



두 번째로 본 공연은 최정산 씨의 ‘마당 쓸다가’였다. 최정산 씨는 후에 나온 ‘지구별 여행’ 작품에서도 그렇고, 웃긴 표정과 몸짓으로 주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공연을 주로 하는 듯했다. 그의 마임 역시 고재경 씨와 마찬가지로 아무 소품이 없는데도 삽으로 땅을 파고, 뭔가를 꺼내고 실망하고 기뻐하는 연기를 너무나 잘 수행했다.


최정산 씨는 그래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소리를 입으로 직접 내는 스타일인 듯했다. 놀라움의 표현인 듯한 “응~?”이라던가 삽으로 뭔가 상자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 “꽝”을 입으로 말했고, 흙을 퍼냈을 때는 흙을 묘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보다 입으로 내는 소리가 더 쉽다는 듯 “흙”이라고 말해서 사람들을 웃기곤 했다.


그의 공연과 앞선 공연을 비교하다 보니 ‘말’이란 게 짧은 감탄사, 단어로만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사람의 의사 표현을 보다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소리 없는 공연을 굳이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마임을 만들어낸 누군가는 마임이라는 공연을 선택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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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국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솔직한 내 마음을 말하자면, 세 번째 공연인 류성국 씨의 “사진” 공연에서 너무 조용한 나머지 통째로 졸아버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언니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젊은 사람이 처음에 나타나서 사진첩을 열고 여러 가지 기억들을 회상하고 결혼했던 기억, 아이를 낳았던 기억 등을 떠올리다가 나중에 문득 깨달았을 때 젊은 사람인 줄 알았던 주인공이 꽤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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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국



필사적으로 깨어보려고 해도 몸부림치다 공연 내내 졸아 아무런 기억도 없다는 게 너무 비통해서 슬펐고, 맨 앞줄에 앉고서도 계속 졸던 사람으로서 류성국 씨에게 정말 죄송하다. 혹시나 이 리뷰글을 본다면 절대 공연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컨디션이 줄곧 좋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같이 본 언니는 정말 좋은 마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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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산



네 번째 마임 공연은 다시 최정산 씨의 ‘지구별 여행’이었다. 은박지 같은 빛나는 소재로 몸을 둘둘 감싼 외계인이 하나 나타나서 UFO를 타고 다니다가 내장을 끄집어냈다가 새로운 내장을 넣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자기 것에 넣고, 친구를 만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사실 내용 그 자체보다 속옷을 전혀 입지 않고 은박을 두른 것 같은 그의 비주얼에 사람들은 다 같이 비명을 지르거나 웃곤 했다. 남성의 신체를 드러냄으로써 개그 포인트로 이용하는 것이 마임의 목적 중 하나였겠지만, 마냥 웃으면서 볼 수만은 없는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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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규



요란한 극이 끝나고 다섯 번째는 24일, 25 일만 특별 출연하는 유진규 씨의 ‘있다! 없다!’ 였다. 한참 분위기를 달궈놓은 공연의 뒤에 하는 것만큼 부담스러운 것은 없을 텐데도 그의 연륜에서 오는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그가 걸어온 마임의 길에서 오는 노련한 덕인지, 의자를 가지고 있다, 없다 두 가지 단어만으로 이어지는 마임에 마음을 금세 빼앗겼다.


처음에는 의자가 있는 곳에서만 의자를 가리키며 “있다”라고 하고, 의자가 없는 곳을 가리킬 때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수차례 반복한 뒤에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있다”라고 말한다. 그것을 보며 물건을 소유해서 자신의 가치를 찾던 것에서 자존감을 느끼는 것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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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규



그 다음에는 성냥불을 지피며 죽음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다소 일반적인 마임과는 달랐다. 유준규 씨는 사람들에게 저주라고 부를 말을 마음껏 퍼붓곤 했다. 언제 당신들에게 죽음이 찾아올지 모른다며, 공연장을 나서는 문 앞에서 옥상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지나가는 차에 가려 머리가 바퀴에 끼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로 소름돋게 했다.


성냥불이 확 켜졌다가 순식간에 꺼지고,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펼쳐졌다. 어린 시절부터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거리며 뭔가를 보려고 애쓰던 버릇이 있었는데, 그 날 앉아있는 어른이 된 내 눈앞에도 마찬가지의 광경이 펼쳐졌다. 나는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눈을 감았더니 그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풍경. 그 암흑 속에서 들려오는 유준규 씨의 목소리, 당신이 죽을 때의 상황이라는 말을 절실하게 이해했다. 내가 죽고 나서는 아무리 앞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옆에 있는 이에게 말을 하려고 해도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할 것이다.


내가 죽을 때 누가 울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가 죽을 때 누군가 웃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가 죽고 나서 누군가 욕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를 여러 차례 말하며 촛불을 켰다 끄는 그의, 어쩌면 퍼포먼스에 좀 더 가까울 만한 마임은 죽음이란 것이 이제 나에게 마냥 먼 얘기인 것만은 아니란 것을 느끼게 했던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평범한 20대에 비해서 나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어린 시절에는 몸이 좋지 않아 일주일에 한 번 물리치료를 다녔다. 매주 토요일마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옆에서 내 침대를 찾아서 물리치료를 받았고, 물리치료가 끝나면 허리에 발라주곤 하던 그 시원한 약의 느낌을, 같이 물리치료를 받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원하신 지금도 아직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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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끝난 줄 알았던 노년기 체험은 지금도 계속된다. 가끔 시간이 되면 올라가는 달마사 공원에서는 할아버지들이 늘 운동을 하고 있고, 나도 그 옆에서 운동한다. 이제는 다 굳어가는 몸으로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늘리고 있는 할아버지도 있고, 팔 한쪽이 없지만 다리 운동이라도 하시는 할아버지도 한 분 계신다. 달마사까지 애써 올라와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할아버지들도 있고, 부부끼리 등산하는 나이 지긋한 분들도 꽤 많다. 일요일 오전 7시쯤이면 공터에서 라디오인지 국민체조를 틀어놓고 다 같이 운동을 하는 모임도 있는 것 같다.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도 한 명 보긴 했지만 대부분 사람이 건강을 되찾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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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해서 그들을 보고 있자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무섭다. 내가 즐기던 운동을 더 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무섭고, 아무렇지 않게 해내던 일상생활을 더 쉽게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무서워진다. 죽음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을 때는 가졌던 것들을 잃어가는 그 과정이, 그 상실 자체가 두렵다. 지금은 나의 것이던 어떤 소중한 가치가, 나이가 들어서는 다른 사람에게서 젊은 자신을 투영해보며 “나도 저랬을 때가 있었는데”라 거나 “젊은 게 좋다”고 아쉬워할 그 순간이 찾아올 것이 두렵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을 보면서 내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어떤 하루는 흔적도 없이, 누구에게도 기억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가도 많은 것들을 놓치고,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또는 많은 것들을 이루지 못하고도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저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의 삶을 사랑하게 된다. 나는 그래서 어쩌면 일부러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노력해서 만드는 하루하루가 앞으로의 나를 만들 것이라고 믿는 힘을, 그들의 연륜과 젊은 나를 향한 시선이 나에게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겁 많고 기운 없는 내가 계속해서 힘을 낼 수 있는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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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영



마지막 공연은 유홍영 씨의 ‘2019 꿈에~’라는 공연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사오십대 가장의 모습을 말 한마디 없이 표정과 연기로만 아주 잘 보여주었는데, 처음부터 술에 취해 택시를 잔뜩 놓치고 길거리에 오줌을 찔끔 찔끔 누는 연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웃음을 빼앗았다.


집에 겨우 들어와서 잠을 자고, 알람을 듣고 바로 일어나서 회사갈 준비를 하고, 회사에서 전화를 받고 서류를 잔뜩 제출하지만 거절당하고, 다시 회사가 끝나 회식을 가고 소맥을 말아서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상사들 비위를 맞춰주다가 어제랑 같이 반복되는 오늘을 살아가는 가장. 마지막에 어떤 노래에 맞춰 휴지를 끝없이 뜯어내는 모습을 보며, 언니는 ‘마지막에 미친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고 말했다. 휴지를 뜯어내도 그는 결국 서류를 제출하고 퇴출당하고, 화장실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다시 의지를 다진다. 그런 하루하루가 반복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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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영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책임감이 느껴져, 나는 과연 그 정도의 책임감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에 빠졌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 나이와 비슷한 때에 우리를 키워갔을 텐데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전부 참고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 마냥 다른 세계의 이야기인 것 같다. 우리 대학에 모든 것을 양보한 우리 아빠는 아직도 차 한 채 갖지 못했고, 회사 내 직위가 높아서 회식비를 모두 아빠가 내는 것처럼 보였다. 담배를 끊었기 때문에 용돈을 안 받았는지도 오래된 아빠라서, 나는 매주 용돈을 받아갈 때마다, 그리고 그 용돈이 부족할 때마다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하다.


누군가는 이미 돈을 벌고 있을 나이에 나는 여전히 용돈을 받아서 쓰는 모습에서 때론 스스로 경멸감을 느끼기도 하고, 얼른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나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돈에 쫒기는 일을 성급하게 선택해도 되는 걸까 망설인다. 또 한편으로는 일주일에 50만 원 단기아르바이트를 요청하는 퇴사한 회사의 유혹에, 공부해야 하는 나의 삶을 미루고서라도 눈앞의 돈을 선택하고만 싶어진다. 나의 모든 욕심, 나의 모든 갈등과 트라우마의 원인은 돈이라는 것도 종종 새롭게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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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닌데도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끌어낸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요즘 컨디션이 계속 좋지 않아서 내가 보려고 하는 만큼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 날이지만, <지금 여기, 마임>은 내 생각보다 더욱더 훌륭했다.


프리뷰를 작성할 때 청각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임이 어떤 것일지 기대했었는데, 그들의 언어와는 확실히 달랐다. 청각 장애인들은 그저 우리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마임은 우리들의 모든 삶을 빨리 감기 하듯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로 겪는 것에 비해서 훨씬 작아 보이며 심지어는 우스워 보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란 것도 잘 느껴졌다. 타인에게는 가볍게 보일 나의 고통이 사실은 만만치 않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청각 장애인들을 대할 때 어찌해야 할지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비하하거나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 내가 새로운 누군가를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그 사람을 직접 봐야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청각 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이 청각 장애인이라고 다 같은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그들을 위한 매뉴얼을 따로 마련해두는 것만큼의 차별도 없을 테니. 그냥 나는 원래대로 준비되지 않았지만, 준비된 사람으로 행동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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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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