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속삭임이 닿는 순간의 변화 – 연극 프라이드 [공연]

글 입력 2019.08.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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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몰랐던 이야기.
그래서 더 응원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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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영국 런던


필립과 실비아는 부부이고 실비아와 일을 함께 하는 올리버는 부부의 저녁 식사 초대를 받는다. 그때 필립과 올리버는 서로에게 강력한 이끌림을 느낀다. 이 1958년 그들의 이야기에서 가장 크게 다가온 건 필립의 감정이었다.

동성애를 병이라고 여기고 철저히 그들을 무시하고 반대하는 사회에서 평범하게 여자와 결혼해 사는 필립은 어릴 때부터 동성애를 느꼈지만 사회 분위기에 억압되어 이를 나타내지도 않았고 숨기고 생각을 억제하기 바빴다. 그런 그에게 다시 찾아온 사랑을 필립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성별만 다를 뿐, 원초적인 사랑일 뿐인데 그런 마음을 계속 숨기고 그를 거절하는 필립. 사회에서 학습된 사고로 만들어진 이성과 계속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감성이 충돌하는 시점이 필립에게서 너무나 잘 보였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알아갈수록 필립은 괴로워한다. 자신이 숨겨왔던 자신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순간 누구보다 ‘일반적인’ 사람으로서 잘살아온 필립이기에 더욱 혼란이 왔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동성애를 죄책감으로 받아들이고 그 당시 동성애를 병으로 진단하고 고칠 수 있다고 연구하는 의사를 찾아간다.

치료 방법은 굉장히 가학적이며 구역질이 나온다. 듣기만 해도 끔찍한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의사라는 사람이 그들을 “고치려고 한” 1958년이다.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정말 생각도, 상상도 못 한 상황이다. 결국 자신의 성 정체성을 피해 살아가는 그는 평생을 숨기며 남들이 말하는 ‘일반인’이 되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힘들게 살아간다.



2008년 영국 런던


필립과 올리버와 실비아. 이름만 같을 뿐 다른 상황에 있는 세 인물이다. 필립과 올리버는 사랑하는 동성 연인 관계이며 실비아는 그들을 응원하며 그들의 연애 고민까지 들어주는 착한 친구다. 올리버가 오럴 섹스 중독이라 필립과 결별하게 되고 이 연애 고민을 실비아와 함께 풀어가는 상황이 연극 내내 1958년의 이야기와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같은 영국이지만 성 소수자를 대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2008년은 전 세계적으로 퀴어 퍼레이드,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릴 정도로 변화한 사회다. 그 변화가 나타날 때까지 그들은 그들만의 프라이드를 가지며 사람들의 무시와 혐오 속에서 살아왔다. 성 소수자들의 자긍심을 살리고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목적인 이 퍼레이드가 전 세계에서 열릴 때까지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퀴어 퍼레이드 옆에는 ‘퀴어 혐오’ 문구를 달며 격하게 시위하는 단체가 존재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들의 시선은 2019년에도 계속된다.

하지만 이 극을 보면서 몰입하게 되는 것은 50년 사이 일어난 변화다.



우리의 변화



사회가 성 소수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들도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피하고 숨기며 살아가는 필립과
우리만의 역사를 가졌다며 솔직하게
올리버와 사랑하며 사랑싸움도 하는 필립.

필립을 만나며 자신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를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올리버와
게이 칼럼니스트로
자신의 자유분방함을 펼치며 다니는 올리버.

필립의 부인으로서 필립이 나보다 먼저
행복하길 바라는 실비아와
누구보다 내가 더 먼저 행복해지길 바라는 실비아.

2008년의 실비아는 현대에 맞게 자유분방하고 동성애에 대해 인정하고 동성애자와 친구가 되는 반면, 1958년의 실비아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느끼게 되는 필립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인이다.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지만,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여러 감정을 느끼며 결국 그의 외도를 알게 되고 그 상대가 자신과 같이 일하는 동료임도 알게 된다. 밤잠 못 이루는 하루를 몇 날 며칠을 보냈을지 감히 상상도 못 하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사랑했기에, 그를 떠나는 선택을 한다.


“이제 눈을 뜨면, 난 떠날 거예요.
당신 이마에 입 맞추고
행운을 빌며 조용히 떠날게요.
우리는 이 길의 끝에 도착했어요.
당신을 탓하지 않아요.”


그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바꿀 수 없는 영역에 도달했을 때 이를 끝내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를 묵묵히 응원하고 떠나는 모습이 너무나 완벽한 실비아였다. 차차 자신의 감정을 정리해 나가며 그가 마지막까지 행복하길 바라는 실비아가 그 시대에 얼마나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도 그런 실비아가 존재할까? 실비아의 상황에 내가 처한다면, 과연 내가 그녀의 선택과 같이 그를 보내주며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까?

나는 아마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극 내내 실비아의 대사, 행동 하나하나에 더 눈길이 갔다. 그리고 2008년의 실비아까지. 누구보다 내가 먼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친구들과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실비아의 모습이 너무나 당차고 멋있었다.
 
친구의 연애 고민도 잘 들어주고 그들이 화해하도록 도와주면서 자신의 사랑까지 챙기고 정말 멋진 사고관을 가진 실비아의 모습이 마치 남편의 행복을 빌며 한발 물러선 그녀가 시간이 지나 변화한 모습 같아 같은 여자로서 기쁘게 다가오고 그녀의 완벽함을 괜히 닮고 싶었다. 나는 그녀보다 부족하고 좁은 사람이라 느꼈기에.



타인들의 시선


실비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동성애를 죄책감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필립이라는 존재는 단지 성 소수자에 국한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에서 약자에 속하는 ‘소수자’들은 우리가 통상 정의하는 일반인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이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간다. 그들을 위한 제도나 법률도 존재하지만,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건 사람들의 ‘시선’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펼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타인들의 시선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의 모든 소수자에 대해 내가 깊숙이 이해하고 모든 것을 알기에 부족한 나지만 이들을 존중하기 위해 최소한, 그들을 거짓 없이 느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하나씩 부족하고 숨기고 싶은 면들이 있는데, 그런 우리가 사회에서 소수에 속하는 점들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고 혐오할 자격이 과연 있을까?

몇몇 사람들은 이런 생각에 대해 타인의 시선에 상관하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고, 개인의 태도가 문제라며 그들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소한, 선입견 없는 시선과 생각이 뒷받침되는 세상에서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정당한 시작 아닐까? 소수자가 원하는 건, 우리가 원하는 건 우대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과 동일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해주는 타인의 공평한 시선이다. 연극 속 1958년에서 2008년으로 가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듯이, 그런 기본적인 대우와 생각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연극을 넘어 2019년과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변화하길 희망한다.



그들의 역사, 우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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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이야기가 있어.

이야기가 있다는 말은,

곧 역사를 가졌다는 거야.”



필립과 올리버와 실비아. 이 세 명의 이야기는 더 이상 그들만의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 성 소수자들이 당당히 살며,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겪은 혐오, 저항, 프라이드가 담긴 우리의 역사다. 내가 잘 몰랐기 때문에 공연으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음이 감사했고 무거운 마음이 한결 나아지기도 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며 엄청난 비난과 혐오, 편견에 가득 찬 세상에서 그들이 프라이드를 갖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한 그 과정을 단순히 웃음거리로 치부하며 공연 내내 웃고 심지어 등장인물의 행동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화가 난다. 그들의 관크 행동은 연극뿐만 아니라 그들의 역사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용납할 수 없었다.

“단돈 몇 파운드에 내 인생, 내 역사, 내 영혼 전부를 샀다고 생각하면 곤란한 거야. 그래, 비록 너희들의 즐거움을 위해 쾌락의 의상을 입었지만, 나도 최소한의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라고.” 이런 대사도 나오는 극에서 배우라는 사람들이 낄낄대며 웃었다는 게 기본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너무 했다. 공연을 본 뒤, 계속해서 주인공들이 생각나 그들의 역사가 얼마나 힘들게 쌓아져 왔는지 마음 아프게 다가왔는데 지금도, 아직도 그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렇게 현실에서 느끼게 되어 통감했다.


“자기가 알고 있던
상식의 한계 따위를
박살 내버리는 거야.
천천히 장벽은 무너질 겁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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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두 프라이드를 가지며 자유롭게 사랑하고 당당히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는 것은 내 욕심일까? 1958년, 2008년, 2019년 그리고 그 미래까지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냈고 우리가 만들어나갈 것이다. 실비아가 속삭이는 목소리가 나에게 닿은 듯, 내가 속삭이는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고 당신이 또 다른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열심히 속삭일 것이다. 속삭임이 닿는 순간의 변화가 멈추지 않길.


“내가 멀리서 속삭일게요.

내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타인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길 바라는 의지,
거기서 오는 용기,
용기 있는 목소리만이 갖는 프라이드.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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