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카피와 작곡 사이 [음악]

따라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
글 입력 2019.08.1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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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배우기까지



13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나에게 기타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음악보다는 그림을 좀 더 많이 그리던 시절이었고, 음악을 한다면 드럼 정도 쳐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갑자기 기타를 배울 기회가 온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기타를 배우기로 마음먹고서 며칠 지나지 않아 10만 원 남짓 하던 세고비아 통기타가 집에 도착했다. 어딘가 엉성해 보이고 완벽하진 않아 보이는 입문용 통기타였지만, 사실 어떤 기타가 좋은 기타인지도 몰라 신기할 따름이었다. 원래 줄을 누르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이었는지, 뚝뚝 끊기는 소리가 나는 건 내 실력 탓인지 도구 탓인지 알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통기타 입문 교재를 두고서 기타를 배웠다. 칼립소, 슬로 고고, 아르페지오 등등 처음 들어보는 낯선 단어들을 음악의 리듬과 연주법으로 치환 시켜 이해하는 것은 음악의 복잡한 만큼이나 더 큰 복잡함을 느끼게 했다. 정박에 팔을 흔들면서 연주하는 리듬은 겨우 소화할 수 있을 정도였고, 엇박이나 업 스트로크를 섞어서 쓰는 연주법은 머릿속으로 몇 번씩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쉽게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통기타 붐이 일어나기 전, 통기타를 배우려면 70~80년대의 곡으로 배워야만 했다. '연가', '조개껍질 묶어' 등의 노래들이 수록되어있는 교재들이 주로 통기타 입문교재였고, 통기타의 기초를 쌓을 수 있는 통기타 위주의 곡들도 그 당시의 음악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지도 못하는 노래들을 학습하며 익숙하지 않은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악기를 연주했다.


기타를 배우면서 충격이었던 것은, 내가 지금 배우는 것보다 기타의 세계는 넓고 깊다는 사실이었다. C 코드라고 알고 있었던 하나의 손 모양은 위로 올라가서 배우지도 못한 모양이 되더니 결국 같은 C 코드라고 알려주는 선생님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C 코드로 믿고 있었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며 지금까지 기타를 배워온 모든 노력이 기타 연주의 시작점에서 머물기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F코드는 나에게 '악마의 코드'였다. 손의 악력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손가락을 전부 사용해 누르는 F코드는 소리가 절대 날 수 없던 코드였다. 많은 사람들이 F코드의 난관에서 기타를 배우길 포기하듯, 나도 F코드 때문에 기타를 포기할 난관에 봉착했었다. F코드가 없는 곡을 연주하려 해도 F가 아니어도 샵과 프렛이 붙은 코드들은 F와 비슷하게 손가락을 전부 사용해 연주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정상적으로 칠 수 있는 곡은 극히 적었다.


그렇게 기타를 배운 지 1년이 지났을까, 중학교에 들어가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밴드부에 지원했던 날이 있었다. 통기타만 치던 나에게 밴드 음악은 낯설었지만, 기타를 배우고 공연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한 번쯤 지원해도 괜찮겠다고 생각을 하게 했다. 며칠 후 밴드부 오디션에 지원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구매했던 일렉기타를 들고 음악실로 향했다. 친구는 일렉기타를 들고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의 통기타 반주를 정직하게 연주하고 있었고, 나는 알아듣지 못할 캐논 변주곡을 엉성하게 연주하려 필사적으로 기타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오디션 현장에는 메탈리카를 좋아하고 파워 코드 반주를 강렬하게 연주하던 선배가 있었고, 음악 선생님은 '대박!'이라는 감탄사와 함께 오디션을 마무리했다.


나름대로 연습을 열심히 했지만 탈락했기 때문에 축 처진 기분으로 집에 돌아갔고, 동경하던 기타와 음악에 조금 아쉬운 기억을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오디션에 탈락한 이후 기타를 배울 일이 없어져 1년 정도 기타 연주를 쉬게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쯤 학교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 함께 통기타를 다시 배울 기회가 생겼다. 그때에도 여전히 옛날 노래를 배웠지만, 지루했던 스트로크가 아닌 블루스 반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기타를 배우며 좋아하던 기타 음악들이 몇 곡 생겼었고, 정말로 '연주해보고 싶은' 음악들이 있었다. 그래서 <Once>에 삽입된 'Falling Slowly'와 Depapepe의 'Start'와 같은 곡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타를 배우는 과정이 다른 학습기준이 아니라 '하고 싶은 곡'의 기준으로 바뀌자 기타 연습에 의욕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핑거스타일을 접하고 코타로 오시오의 'Twilight'라는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핑거스타일 입문곡이었던 'Twilight'은 정말 매력적인 선율을 가지고 있었고, 정말 한 번쯤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마 서너 달 동안 매일 학교에서 돌아와 두 시간씩 연습했던 기억이 났다. 악보 첫마디부터 천천히, 하루에 한 마디만 익혀도 그저 그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매일 연습을 하고서 결국 완곡을 하게 되었다.


이후 핑거스타일에 빠져 새로운 기타도 돈을 모아 구매했다. 40만 원 정도 되는 돈으로 품질 괜찮은 국산 기타를 구했는데, 소리가 이전에 사용하던 입문용 통기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래서 새 기타를 가지고는 스트로크를 한번 쳐보고 통의 울림을 잔잔히 감상하는 등 기타의 소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날마다 기타 연습을 하던 중, 하루는 아빠가 나를 안방으로 불러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기타를 전공으로 배울 건지, 아니면 취미로 할 건지. 전공으로 배울 거라면 지원해 줄 것이고, 아니면 기타 치는 시간을 좀 줄이고 공부에 매진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왜인지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나는 고민하지 않고 공부를 하겠다 말했다. 그렇게 나의 기타 연주는 취미가 되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기타 치는 시간은 틈틈이 내어 연습을 이어갔다. 그때 시작했던 연습이 블루스 즉흥연주 연습이었다.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와 일렉기타를 집어 들고는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계속 연습했다. 즉흥연주를 연습하는 건 그전까지 했던 연습과는 조금 다른 방법이었다. 즉흥연주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연주를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한 명의 연주자로서 할당된 시간을 채워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고, 온전히 자신이 설계한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 것이었다.


즉흥연주를 연습하는 것과 함께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가사 있는 음악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곡을 이런 곡 저런 곡 듣다 보니 노래의 코드 변화와 코드가 만드는 노래의 색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직접 곡을 만들어보면서 이런저런 곡을 연습 삼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노래를 시작하는 코드는 몇 도에서 시작할지, 그리고 이어지는 코드는 얼마나 넓은 간격으로 떨어트릴지, 그다음 선택지들도 직접 선택하면서 곡을 완성해나갔다.


즉흥연주를 계속하다 보니 한 가지 Key와 Scale에서 하던 연주를 다양하게 변형 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습관적으로 쓰는 연주방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취미생들의 꿈인 다른 사람들과 잼 세션을 실제로 해봤을 때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작곡 또한 계속 이어나가다 보니 주변 친구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 친구들은 나의 음악을 좋아해 주고 기다려주기 시작했다.


즉흥연주를 하는 것과 곡을 쓰는 것의 공통점은, 모두 직접 내 손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따라 하는 것과 참고하고 소화하는 것은 달랐다. 어떤 곡을 그대로 연습했을 때엔 마치 운동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특정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과 수련이었고,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 반대로, 직접 만들어가는 것은 내가 가진 배경을 바탕으로 자신의 목소리와 색깔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창작물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나의 색은 언제나 묻어났다. 사람의 생김새, 목소리가 완벽히 똑같지 않듯이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각자의 표현법은 달랐다. 어디서 얼마나 쉴지, 어느 음을 강조할지 본능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표현하는 습관, 연주자의 손길이었다. 그래서 내가 마음 가는 대로 곡을 쓰다 보니, 다른 친구들이 내 음악의 특징을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나다운' 음악이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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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하기와 표현하기 사이



사실 완벽한 표현과 테크닉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음악의 이론도 시대와 스타일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어서 어느 소리가 완벽한 표현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었다. 지미 핸드릭스의 음악이 엄청난 혁신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만을 단독적으로 감상할 때엔 느낄 수 없었다. 그 당시의 음악을 비교하면서 들어야 그의 음악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비틀스 또한 지금의 음악과 비교하면 엉성한 측면도 있고, 완벽하지 못한 곡들도 있다. 하지만 비틀스의 음악이 좋은 이유는 그 당시의 음악들과 비교해 특별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전은 전해져 내려오는 고전으로서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미적 표현과 취향은 맥락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내가 가진 실력에 주저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내 표현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좋은 음악이라고 느낄 사람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가 듣기 좋은 곡이 좋은 음악이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새로운 배움을 그만두어서도 안 됐다. 한 가지 색으로만 작업하다 보면 쓸 수 있는 소재는 금방 고갈되고 말았다. 창작의 영감은 끝없이 샘솟는 샘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창작의 환기가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색감을 찾아 배워나갔다. 재즈 이론을 완벽히 배우진 못해도,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찾아가면서 나의 것으로 천천히 만들어나갔다. 때로는 어두운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 때로는 아예 다른 장르의 표현법을 배워 나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 색의 범위를 넓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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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하기와 표현하기 둘 다 예술적 작업이다. 지금의 예술을 의미하는 단어인 'art'(아트)는 라틴어 'ars'(아르스)에서 유래한 단어이고, 'ars'(아르스)는 그리스어 'techne'(테크네)에서 기원한 단어라고 한다. 기술을 의미하는 영단어 'technique'(테크닉)은 같은 'techne'에서 유래한 단어로, 'art'와 'technique'은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의 예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예술가이자 기술자였다. 그는 미술, 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만큼, 그는 정말로 기술적이고 미적인 예술을 만들던 예술가였다.


따라하기가 테크닉이고 표현하기가 아트라면, 예술의 경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 두 과정 모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며, 다른 것을 추구하며 찾아가는 밖을 향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카피만 하는 연주자가 있을 수도 있고, 창작에만 집중하는 작곡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카피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며, 자신의 창작물에만 집중하는 작곡가는 결국 자기 반복만 계속할 것이다. 예술을 하는 일은 따라하기와 표현하기를 모두 포함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예술을 하는 과정에서도 가끔은 자신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내고, 밖으로 향해 주변 것들을 둘러보자.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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