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실적인 비현실을 상상하라, 에릭 요한슨 사진전

불가능을 상상하라, 보일 것이다
글 입력 2019.08.0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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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k Johansson ⓒJakob de Boer, 2014.jpg
 


어릴 적 나는 침대 옆에 작은 문을 그렸다. 네모난 직사각형 안에 작은 동그라미가 들어간, 가장 간단한 모습의 문이었다. 한참 해리포터와 나니아 연대기, 타라 덩컨 등의 판타지 소설에 빠져있을 때여서, 어느 날 내가 그린 문이 진짜로 변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거라 믿었다. 아니면 하다못해 꿈에서라도 내가 그린 문이 열리길 바랐다. 한 번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은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에릭 요한슨의 전시회를 다녀온 뒤 문득 그때의 문이 떠올랐다. 전시회는 내가 만든 작은 문의 안쪽에 있는 이야기 같았다. 말도 안 되고, 기발하며, 한 번쯤 생각해본 비현실적인 세계 그 자체였다.




초현실주의 그림, 사진으로 재탄생하다



학교 교과서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처음 발견했을 때 한참 뚫어져라 본 기억이 난다. ‘빛의 제국Ⅱ’와 ‘이미지의 배반’, ‘피레네 산맥의 성채’였다. 낮과 밤이 공존하고, 기표와 기의를 분리하고 중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그림은 그림이기에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현실에서 지겹도록 보아온 현실 그대로를 그린 그림이나 사진보다 상상만 했던, 때론 상상도 하지 못해 전율을 주는 그림에 매료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Under The Corner.jpg
 


에릭 요한슨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사진전을 둘러보면 과거 초현실주의 작가의 그림이 모티프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사진이 몇 가지 있었다. ‘불가능한 탈출(Impossible Escape)’과 ‘코너의 안쪽(Under the Corner)’은 M.C.에셔의 ‘폭포’와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뫼비우스의 띠’처럼 펜로즈의 삼각형을 사진으로 형상화한다.


낮과 밤이 레버 하나도 바뀌는 ‘Daybreaker’은 낮과 밤이 한 곳에 공존한다는 점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L’empire des lumières)’과 비슷한단 느낌을 받는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밝은 태양 아래 검은 숲과 가로등이 켜져 있어 낮의 안에 밤이 존재하는 비현실적 세계를 그렸고, 에릭 요한슨의 사진은 해가 저물어 낮과 밤의 경계선이 생기는 것을 레버로 표현했다는 큰 차이가 있지만, 전시회에서 요한슨의 사진을 보았을 때 마그리트의 그림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Vasen.jpg
 


일반적으로 깨져야 하는 꽃병은 깨지지 않고 손이 산산조각이 나는 ‘Arms Vreak, Vases Don’t’라는 작품은 신발이 발가락으로 변하는 ‘붉은 모델(The Red Model)’과 비슷한 느낌을 얻는다. 사람의 신체와 물건이 뒤바뀌는 부분이 매력적이다. 또, ‘The Light keeper’라는 작품에서 사람에 비해 커다란 전구는 르네 마그리트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물건 확대하기 방법을 연상시킨다. ‘개인적 가치(Personal Value)’는 방 안에 침대는 작지만 빗과 잔은 크다.


일상적이고 작은 물건이 크게 바뀌면서 사람들은 위화감을 느끼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요한슨의 사진에서 사람이 전등을 안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저 커다란 전등을 멀리 보이는 등대에 끼울 거란 상상이 되어 더욱 생각하게 된다. 물건을 무작정 축소한 것이 아니라, 등대의 비출 만한 전등은 얼마나 클지에 대한 답을 주는 것만 같다.


실제로 에릭 요한슨은 사진작가보다 초현실주의 화가에게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시인한 적 있다. 연못의 물이 거울처럼 깨지는 사진은 비슷하게 호수가 조각나는 롭 곤살로스의 ‘Still Waters’에서 영감을 받았고, 커다란 바위와 바위 사이에 집으로 다리를 놓은 ‘Self-Supporting’은 마찬가지로 바위 사이에 집이 낑긴 야첵 예르카의 ‘Setters from Mars’와 흡사하다.



Self-supporting.jpg
 


전시회를 구경하다보면 비단 초현실주의뿐 아니라 우리가 자주 보는 영화에서도 닮은 꼴을 찾을 수 있다. 하늘을 날 리가 없는 생선이 하늘을 빼곡히 채우는 ‘Lost in the Rain’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떨어질 리 없는 음식이 하늘에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과 닮았다. 차가 거꾸로, 정방향으로 오는 ‘Common Sense Crossing’ 사진은 인셉션에서 꿈속임을 알아차려 도로를 90도로 올리는 장면과 비슷하다.




섬세를 낚시하다



에릭 요한슨의 사진은 관람자에게 그림보다 더욱 실제 상황처럼 보이게 하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마구 펼친다. 그는 그림의 장점과 사진의 장점을 적절히 잘 합친다. 관람하면서 가장 놀란 건 빛의 이용이었다.


‘Falling Asleep’을 보면 밖에서 스며드는 달빛과 전등 빛, 천장의 전등에서 반사되는 빛이 다양한 방향을 비추는데 사진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마치 물에 들어간 듯 부유하는 여성의 머리와 얼굴은 전등 빛을 강렬히 받고 있고 다리 부분은 달빛을 더 많이 받는다. 사진에서는 두 빛 모두 잊지 않고 적절하게 표현한다.



Falling Asleep.jpg

 


2019년을 사는 사람 중 에릭 요한슨의 사진이 포토샵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빛의 굴곡이며 표현은 포토샵을 잘한다고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빛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사진을 찍기 전부터 계획하지 않으면 이토록 섬세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빛을 섬세하게 잘 표현한 것은 비현실적인 사진에 현실감을 불러일으킨다. 포토샵으로 만든 사진이란 느낌이 들지 않고, 정말 자연스러운 상황을 찍은 듯 보인다.


에릭 요한슨의 그림에서 섬세함이 돋보이는 건 이 사진뿐만 아니다. ‘Dreamwalking’이라는 작품에선 문에서 문으로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을 뿐인데 어떤 상황인지 느껴진다. 왼쪽에 있는 문은 서류가 잔뜩 나와 있고 문도 깨끗하다. 반대로 오른쪽의 문은 스티커가 붙어져 있고, 가정에서 쓰는 전등과 실내 카펫이 튀어나왔다. 문의 디테일을 통해 지금 회사에서 집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Dreamwalking’이라는 제목이 아니더라도 남자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회사의 문에서 집으로 가는 문으로 향하는데 가운을 입고 물을 들고 실내화를 신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남자는 가운을 입고, 물잔을 들고 침대에 가서 잠을 청했거나, 가던 도중 너무 피곤해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디테일한 부분은 관람객이 더욱더 오래 그림을 보고 상상하게 만든다. ‘Cumulus&Thender’에서 양 이발사가 구름을 만들기 위해 하얀 양의 털을 잘라내는 것이라면 먹구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의문은 옆을 보면 바로 해소된다. 검은 연기를 뿜어대는 까만 양이 양 이발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을 땔 때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는 검은 연기가 몹시 웃기다. 만일 그저 검은 양만 놔뒀다면 이처럼 많은 상상이 피어오르지 않았을 텐데, 검은 양에게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나도록 해서 뭉게구름을 서서히 어둡게 만드는 비구름과 먹구름의 정체까지 모두 파악하게 한다.



Cumulus and Thunder.jpg
 



밝지만은 않은 이야기



에릭 요한슨의 사진을 쭉 보고 있자면 마냥 기발하고 웃긴 사진만 있지는 않다. 어딘지 위태롭고 불안정하며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한 사진도 많다. 언뜻 보면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보면 볼수록 사진 속 상황이 안타깝거나 걱정된다.


‘End of Line’은 언뜻 보면 구름 위에 건물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만 하다. 올림포스 신이 사는 성을 닮기도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기차역 앞에서 하늘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노인이다. 짐을 들고 있고, 기차역에서 기차가 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 건물과 연결된 계단에 서 있는 사람도 노인이다.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는 듯 구름 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에서 노인을 발견하는 순간 그림이 말하고 있는 바가 첫인상과 정반대라는 것을 알게 된다.


‘End of Line’이라는 제목은 삶의 마지막이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건물은 요양원처럼 느껴진다. 일생을 모두 보낸 사람이 자식이나 보호자가 찾아와주길 바라며 건물에 갇히듯 사는 이야기가 상상된다. 더는 하늘에 떠 있는 건물이 신기한 존재로 보이지 않고, 고립된 공간으로 보인다.



Imminent.jpg



‘Imminent’라는 그림은 대놓고 불안하다. 마을의 위에 언제라도 굴러갈 것 같은 원형 돌이 놓여있다. 자세히 보면 원형의 돌 아래 얇은 철봉 여러 개가 있다. 마을로 굴러떨어지지 않게 막아두었다. 마을 크기만 한 이 돌이 굴러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 마을 사람은 모두 죽을 것이다. 마을 사람은 이를 알면서도 삶의 터전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마을 위에 돌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 수도 없다. 머리를 들면 바로 보이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사진을 들여다보면 뒷배경에도 원형의 돌과 그 아래 마을이 보인다. 모든 마을이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사는 것이다. 돌을 치우지 못하고, 단지 얄팍한 철봉 여러 개에 안전을 의존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의 초기 제목은 ‘다가오는 위협’으로 평소에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기후변화 또는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Leap of Faith’는 언뜻 보면 애니메이션 ‘UP’처럼 느껴진다. 밝은 색채에 가벼운 분위기가 나도 저렇게 하늘을 날아서 회사에 가고 싶다는 꿈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작품을 가까이서 본다면 점프대의 글씨를 발견할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날아보세요! 모든 행동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단, 풍선은 인당 1개입니다.’ 글을 읽고 사진을 다시 보면 이제 곧 풍선을 들고 날아가려는 남자의 모습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풍선이 하늘을 날게 해준다면 쥔 순간부터 조금이라도 떠올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남자는 건물이 이어진다면 건물의 지면을 밟을 것처럼 미동도 없다. 곧 그냥 떨어질 것만 같다. 하늘을 날아보라고 말하지만 위험의 책임은 나에게 있고, 풍선은 하나 이상 없다는 말도 의미  심장하다. 좋게 해석하면 위험을 감수하라고도 모험을 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남기지만 다르게 본다면 고작 풍선 하나에 내 목숨을 거는 도박처럼 보인다.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희망찬 이야기일수도, 파멸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을 읽고나서 꾸준히 불안한 이유는 왜일까.


그뿐만 아니라 ‘Fishy Island’를 보면 물고기 위에 집과 섬이 있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럽고 기발하게 보이지만, 물고기 쪽을 자세히 보면 그가 사는 호수는 좁은 어항처럼 작다. 물고기는 위의 섬과 집 때문에, 그리고 그에게 너무나 좁고 얕은 호수에 사는 바람에 몸을 뒤척일 수가 없다. 물고기의 표정을 읽어낼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상상을 하게 된다. ‘Breaking Up’에서 집이 반으로 갈리고 도로와 나무와 전봇대가 무너지는 건 한눈에 빙하가 녹는 현상이 떠오른다.



Fishy Island.jpg
 


‘Expecting Winter’, ‘Cutting Dawn’, ‘The Light Keeper’, ‘Daybreaker’, ‘The Cover-Up’ 등의 사진은 언뜻 보면 가을이 가고 눈이 오거나, 해가 지고 뜨거나,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등을 재치있게 표현한 듯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을 사람이 일하는 것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어딘지 거북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 혹은 기계가 해결한다고 믿은 일이 사실 수작업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가게가 깨끗하도록 유지하고, 물건이 진열대에 항상 올바르게 놓여있고, 의류 상품이 깔끔하게 개어져 있는 모든 것은 사람의 손이 닿은 것이다. 잔에 든 커피를 홀짝일 때 보통 커피를 심고 콩을 따서 말리고 한국으로 보내고 굽고 갈아 내리는 모든 과정을 상상하지 않는다. 기억하지도 않는다. 에릭 요한슨의 많은 사진이 이를 얘기하는 것 같다. 귀엽고 웃기고 재치 넘치지만, 그렇게 넘길 수가 없다.



The Cover-up.jpg
 



현실적인 비현실을 상상하라



에릭 요한슨 사진전의 카피라이트는 ‘Impossible is possible’이다. 불가능은 가능이다. 전시회장을 들어가면 상상하라고 적혀있다. 상상해본다. 어릴 적 꿈꾸던 미래를 상상하고 나만 몰랐던 비밀이 있다고 상상하고 어젯밤 꿈에 대해 상상하며 조작된 풍경에 대해 상상한다. 그리고 눈을 떠 전시회를 둘러보면, 내가 상상한 모든 것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에릭 요한슨 전시회의 상상은 어른의 상상이다. 밝고 현실과 무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소 무겁기도 하고 현실과 결합한 상상이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비현실적이며 위대한 생각이 있진 않지만, 하여 더 매력적이다. 전시회를 나와 주변을 살펴보면 내가 사진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내 몸이 떠다닐 거 같고, 미술관 밖으로 나와 밑을 보면 구름이 반겨줄 것 같다. 에릭 요한슨의 사진은 전부 현실적인 비현실이라 더 강렬하게 남는다.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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