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느끼지 못해도 괜찮은 것들 [사람]

글 입력 2019.07.25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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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미술 전시회에 다녀왔다. 오랜만의 전시라 나는 꽤 들떴다. 평소 전시를 볼 땐 잘 대여하지 않던, 오디오 가이드도 대여해 들어갔다. 전시는 알찼다. 주제는 야수파와 입체파, 각각의 미술사조가 탄생하게 된 계기를 역사적 배경에 따라 파악해 볼 수 있게 전시는 잘 구성되어 있었다.


더불어 전시에 사용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던 트루아 현대미술관, 야수파와 입체파 거장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화상’들, 피카소와 마티스의 관계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시회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던 만큼 각 주제에 대한 설명도 많았다. 전시회장 이곳저곳을 채우고 있는 글자들을 하나하나씩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새로운 지식을 얻고 있다는 묘한 흥분감이 몸에 퍼졌다. ‘그래, 이게 전시회를 오는 이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글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다리가 슬슬 아파지는 전시회의 중반쯤 되자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야심 차게 빌린 오디오 가이드도 문제였다. 오디오 가이드를 듣느라, 그림을 보느라, 그림 옆에 적힌 설명을 읽느라,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려다 보니 내 집중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이다. 결국 전시를 다 보고 나자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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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을 나와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오며, 나는 내가 또 ‘오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시회장에서 많은 지식을, 그것이 아니라면 어떤 종류의 깨달음이든 얻어 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무리했던 경험이 이번뿐만은 아니었다.

 

작년 퐁피두센터에서 특히 그랬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온 유럽여행, 그중에서도 예술의 도시라고 불리는 파리, 그 파리의 3대 미술관 중 하나라고 불리는 퐁피두센터였다.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꼭 가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계획을 짰다.


입장 후에도 작품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거라는 마음으로 센터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녔다. 일정과 일정 사이 시간이 부족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너무 당이 떨어졌다 싶을 때면 가방 구석에 있던 초콜릿을 부숴 입에 넣으며 기어코 전시회장을 전부 다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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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지금 퐁피두센터에서 어떤 작품을 봤는지, 어떻게 감상했는지 떠올려보라고 하면 막막해진다.

   

물론 그때의 경험이 무의미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시간이 크게 의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때 전시를 적당히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면 그때의 시간이 오히려 더욱 알차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생각해보면, 전시뿐만이 아니라 여행, 영화, 독서 등 모든 문화 경험에서 나는 어떤 종류의 강박에 사로잡혀있는 것 같다.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는, 이 경험을 통해서 내가 성장해야 한다는. 아주 어려서부터 억지로 쓰던 수많은 감상문들과 일기의 영향 때문일까? 문제는 그런 강박이 오히려 문화를 향유하는 데에 있어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문화인이 되려면 꼭 읽어야 한다는 어려운 책들을 펼쳐 읽으려고 노력하다가 그 책 자체에 신물이 났던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비평가들이 극찬하는 영화를 끝까지 보려고 애쓰다가 ‘난 이런 영화를 좋아하지 않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경험이 있던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공감할 것 같다. 물론 내가 모르는 것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한계를 넘어서 ‘오버’하다가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것들을 너무 빨리 포기해버리거나 망쳐버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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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울리는 경험은 오히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찾아왔다. 무리해서 퐁피두 박물관을 둘러본 후, 나는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이 그가 생전에 희망하던 전시 환경 그대로 전시되어 유명한 곳이었다. 그만큼 사람도 많았고, 퐁피두 센터에서 무리해서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별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무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전시장을 꽉 채운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모네의 수련 연작을 겨우 관람하고 지하로 내려왔을 때였다. 익숙한 그림 하나가 보였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었다. 내가 다녔던 중, 고등학교 강당 한 편에 복사본이 크게 걸려있던 그림이었기 때문에 익숙했다. 하지만 복사본과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소녀들의 표정은 물론, 빛이 떨어지는 모습, 색감까지. 화려하면서도 부드럽고, 경쾌한 실물을 보고 일종의 충격을 느꼈던 것 같다.


르누아르, 하면 ‘예쁜 소녀들만 그리는 화가일 뿐, 왜 유명한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그때까지의 생각이 한 번에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나에게는 그 그림을 봤던 시간이 생생하다. 그러니까 그때 내 다리에 느껴지던 묵진한 피로감,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그 소리가 갑자기 싹 없어졌다고 느꼈을 만큼 나를 압도하던 그림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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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기에 나는 앞으로도 종종 ‘오버’할 것 같다. 내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읽고, 무리해서 전시회나 공연을 보러 가고, 졸음을 참으며 아주 어려운 영화를 볼 것 같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답답하거나 초조해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게 문화가 주는 즐거움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도록 기다리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 보고자 한다. 지금 당장 느끼지 못해도, 성장하지 못해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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