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대 그리스의 아름다움을 목도하는, 그리스 보물전 :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글 입력 2019.07.21 21:4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90614_공식포스터_메인_370_520_알렉산드로스-대왕.jpg



현재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시 중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전시를 다녀왔다. 바로 그리스 보물전 전시였다.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라는 부제를 달고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KBS와 그리스문화체육부의 공동주최로 이루어졌으며 그리스 문명의 서막인 신석기 시대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기까지의 그리스 유물들을 통틀어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 구성


1부: 그리스 문명의 서막, 에게해
2부: 미케네인들
3부: 호메로스, 신화와 역사
4부: 아케익 시대의 귀족들
5부: 쿠로스와 코레
6부: 운동선수들
7부: 아테네인들
8부: 필리포스 2세
9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새로운 시대의 서막




 

키클라데스인물소상(좌상).jpg

©The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그리스 본토와 에게 해 지역에 사람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으나, 고대 그리스의 문명의 발달은 신기하게도 본토가 우선이 아니라 에게 해 지역에서 먼저 일어났다.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에게 해 지역의 키클라데스 문명이 바로 그것이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은 고립되기 쉽기도 하지만 키클라데스 제도는 다양한 섬들이 모여 있어 고립되기 보다는 다양한 주변 지역 문화를 두루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지역 특성을 유지해가며 청동기 시대에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나갔다.


키클라데스의 유물들은 주로 인물 소상이 많았다. 여성을 형상화하되 굉장히 간략한 선으로 인체를 표현한 키클라데스 인물 소상들은 사람의 코와 가슴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양 팔을 배 위에 두르도록 한 형상을 하여 다른 문명권에서 보던 인물상들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물들은 특히나 대리석으로 제작되어 있었는데, 기원전 2~3천년 전에 흙으로 구운 인물상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인물상을 만든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131.jpg

©The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한편 기원전 3천년 경에서 천백년 사이에 크레타 섬에서 미노스 문명 역시 발달했다. 마찬가지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했던 미노스 문명은 뛰어난 금세공 기술과 활발한 해상 무역으로 화려한 유산들을 남겼다. 특히 통치계급의 등장과 다양한 행정조직의 구축이 나타나 유물들에서도 그러한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기원전 17세기경 테라 섬(산토리니)에서 일어난 대규모 화산 폭발로 인해 미노스 문명은 점차 쇠락한다.


황소머리 장식의 헌주잔은, 처음에 유물을 보고서는 잔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모양새다. 그러나 머리 뒤쪽으로 사입구가 있고 코에 사출구가 있어 미노스 문명의 공식 행사에 중요하게 쓰였다는 이 헌주잔은 발달한 미노스 문명의 뛰어난 세공 기술을 엿볼 수 있다. 황소의 미간 사이로 흘러내리는 털의 표현이 아주 세밀했고, 뿔은 아주 매끈하고 섬세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가멤논의황금가면.jpg

©The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뒤이어 드디어,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문명은 미노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는데, 미노스에서 발달했던 통치계급과 행정조직의 발달은 미케네에 이르러서는 더욱 구조화되었다.


이는 매우 뜻깊은 유물로도 현장에서 확인해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미케네 문명의 유물들은 이미 키클라데스 문명보다 화려해 보였던 미노스 문명의 유물보다도 더욱 세공의 수준이 높고 휘황찬란했다. 마치 호메로스가 미케네를 황금으로 뒤덮인 도시라 일컬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가멤논의 황금가면은, 미케네 문명이 얼마나 번창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었다. 키클라데스에 비하면 미노스 유물들이 화려했다. 그러나 앞서 본 유물들은 미케네 유물들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정교함과 화려함 모두 미케네 유물들이 한 수 위였다. 이렇게 화려한 아가멤논의 황금가면 복제품과 더불어 선형문자 B서판을 보니 고위세력의 엄청난 부와 동시에 고도로 발달된 사회 구조였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다양한 사회계층의 다양한 생산물 및 제조물에 대한 기록들을 남긴 것을 보면 미케네 문명은 그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발전했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행정 구조 역시 갖추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케네는 와낙스(Wanax)로 불리는 최고 통치자 아래에 귀족, 행정 관료들과 세리, 공방 감독, 종교관 등으로 구성된 사회였다고 한다. 다양한 사회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을 만큼 풍요로운 사회였다는 것이 다양한 유물들로 증명되는 듯했다.



투구와 입을 가리는 금 장신구.jpg

©The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미케네 문명의 몰락 이후에는 한동안 암흑기라 불릴 정도로 그리스 문명이 침체되었다. 그러나 외부 세계와의 교류는 단절되었을 지언정 내부적으로는 폴리스 공동체가 형성되고 부족 제도와 자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귀족 계급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족제의 시기만이 지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점차 해외에 식민도시를 건설하고 외부 문화권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번영을 시작한 그리스 문명은 기원전 600년 경부터 아케익기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고전기 이전의 눈부신 바탕이 되는 이 아케익기에, 점차 민주정 체제와 도시 국가 형태의 사회조직이 그리스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케익기의 유물들은 제례에 쓰인 용품들이 많았다. 투구와 입을 가리는 장신구 유물은 전쟁에서 쓰였을 것 같지만 제례를 집행할 때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청년상인 쿠로스와 여인상인 코레 역시 신전에 봉헌물로 설치되었던 유물들이다.


학창시절 때 들었던 예술사 수업에서, 이런 코레들은 현재 모습과는 달리 과거에는 대부분 채색이 되어 있었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안료가 다 날라가 대리석 색깔만 남아있지만 이를 복원하면 원색으로 덧칠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쿠로스와 코레의 채색된 모습을 상상해보며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시를 낭독하는 시인 사포를 묘사한 적회식 히드리아.jpg

©The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그리고 아케익기의 끝에서, 기원전 480년을 전후로 그리스 세계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고전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직접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 체제를 갖추었으며 조형 예술과 연극이 고도로 발전되기 시작했으며 이론적 탐구와 철학적 고찰들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러한 고전기를 구가한 유물들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 시기에 배치되어 있는 유물들은 연극의 한 장면을 묘사하거나 시를 낭독하는 모습을 담은 그릇들이 많았다. 신화적인 장면을 담은 그릇 또는 부조 역시도 많았다. 이러한 부조들은 고대 그리스의 성소에 배치되거나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건축물들에 주로 쓰였다. 예를 들면 아고라나 신전 같은 곳에 말이다.


아테네의 정치는 시민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부모 모두가 아테네인인 경우에만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었고 이는 특히나 남성에 국한되었다. 여성은 가사와 육아에만 집중했고 정치적 권리는 없었다. 시민에 해당하는 남성들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아고라에서 보냈고 여기서 다양한 정치활동들을 했다. 민회를 열기도 하고 도편추방제를 통해 민주정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 유력자를 추방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적인 발전을 이뤘던 고대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해 다시금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이미 전체적으로 전쟁을 한 번 치른 뒤인지라, 그리스 도시들은 극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필리포스 2세의 왕릉에서 출토된 화살 통.jpg

©The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필리포스 2세가 그리스 세계의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 테베에 인질로 머물러 있었는데, 이 시기에 다양한 군대 전략과 철학, 정치 이념 등을 배웠다.


이 모든 이론적 바탕은 필리포스 2세가 왕위에 오르자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세계의 주도 세력으로 만드는 양분이 되었다. 필리포스 2세는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아테네-테베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사실상 그리스 전체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의 승리가 그리스 세계를 코린토스 동맹으로 다시금 묶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판.jpg

©The Hellenic 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그러나 필리포스 2세는 왕실 결혼 피로연에서 암살되고 만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이 바로 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3세였다. 그는 왕위에 즉이하자마자 그리스 전역의 통치권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바로 페르시아 정복 전쟁을 시작했다. 이미 그의 부친이 준비하고 있었던 원정을 바로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소아시아, 이집트뿐만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 인도까지를 연결하여 그리스 문화와 동방의 문화가 융화되는 헬레니즘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알렉산드로스와 판을 섞어 만든 조각상은 굉장히 섬세하게 알렉산드로스를 그려냈다. 깊은 눈, 자연스럽게 정돈된 머리카락에 더하여 대자연의 신인 판의 모습을 반영하기 위해 정수리 쪽에 세운 뿔의 모습은 굉장히 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이 굉장히 균형미를 갖추고 있어 더더욱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판은 호색한이지만 이교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판과 알렉산드로스를 섞은 조각상이라니,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니즘 문화를 융성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을 아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보았고 역사와 신화의 조화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고대 시기의 유물들을 일련의 흐름으로 살펴본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제로 그리스 본국의 유물이 그리스 정부의 승인을 받아 한국을 방문하는 전시는 이번이 최초라고 한다. 글이나 사진으로만 접하던 유물들을 시간의 흐름 순으로 짚어가며 오디오 해설과 함께 들으니 더욱 맥락이 잡혀서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


특히나 우리가 아는 동양권의 신석기 ~ 철기 시대의 유물과는 또 다른 양상들이 있어 이를 비교해보며 관람하는 재미도 있었다. 당장에 청동거울 하나만 놓고 보아도 우리나라의 유물과 그리스 문명권의 유물은 서로 매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서양 문명의 뿌리가 되는 그리스 문명의 고대 유물들을 한꺼번에 아우르며 살펴보는 전시였기에 매우 뜻깊었다. 9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모든 관람객들에게 그리스 문화의 진수를 만나볼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될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2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