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섭식장애 이야기] 그 원인을 찾아서 #7.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장소에, 그들의 것이 아닌 것을 끊임없이 담았다.
글 입력 2019.07.1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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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국가장학금 순위 9분위로 나오는 그 집은 무척 가난했다. 아니, 가난이라는 말이 너무나 평범하고, 누구나 쉽게 쓰는 말이라 가난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 속 장면에서 같은 가난을 앓고 있는 누군가에게서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대신 느꼈다면 그것은 가난이라고 말해도 일맥상통한 것은 아닐까.

 

그 집에는 정수기가 없다. 어쩌다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빈 물통 세 개, 많으면 여섯 개 정도를 넣어나간다. 도서관, 학교, 학원, 은행, 롯데마트, 탑 마트 상관없이 물통에 물을 채워서 무거워진 가방을 뒤로 멘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무겁다. 그들은 돌아오면서 공짜 물인데 마음대로 가져오면 어떠냐고 함께 불만을 터뜨렸다. 물을 타온 세월은 벌써 오래되었는데 딱 한번 주의를 들었을 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신문을 많이 가져오는 것은 필수다. 월, 수, 금요일 아침마다 신문이 나오기 때문에 그 집의 사람들은 신문 가판대가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시내 곳곳 훤히 꿰고 있다. 가방에 채워지다 못 해서 접혀있는 장바구니를 펴서 들고와야 한다. 그 신문은 생각보다 무겁고, 시내버스에 앞좌석에 앉아 읽고 있는 한 노인의 신문과는 다르다. 아무도 읽어줄 리 없는 신문이기 때문이다.

 

가난이란 것은 정말 무서워서 그들의 유일한 공간은 그들의 것과 그들의 것이 아닌 것으로 가득 차게 된다. 가난을 두려워하며 돈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한번 모은 물건을 버릴 줄 모른다. 이십몇 년을 함께 산 그들의 집은 왜 점점 넓어지지 않고 점점 더 좁아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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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13평의 좁은 집에 그것도 마당과 옥상까지 있는 집에 5명이 살고 있었다. 마당을 빼면8평 정도는 되지 않을까. 월 50만 원짜리 월세방 두 개 정도를 합한 크기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한 명은 주방에서 잠을 청했고, 두 명은 들어가면 꽉 차는 방에서 함께 잠을 잤고, 나머지 두 명만이 각자의 방이 있었다.

 

그러나 한여름에 당연히 에어컨이 없었기에 그들은 문을 닫을 수 없었다. 푹푹 찌는 더위는 속옷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어도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겨울의 추위도 대단했다. 보일러를 켤 돈이 없어 그들은 바닥에 전기장판에 몸을 의지했다. 이불을 겹겹이 덮고, 겨울 외투를 입어도 손이 갈라지고 찢어져 성한 곳이 없었다. 공부를 해야 했던 그들은 이불 속에서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서 글을 썼다. 이불 속에서 손을 움직이면 그나마 손가락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개인의 생활이 없었다. 누워있는 자리에서도 다른 방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다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가난했기에 밖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남들이 피다가 버린 중간보다 조금 긴 꽁초에 불을 지펴 피우는 것이 유일한 일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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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모르게, 몇 년 만에 찾아간 그 집은 더욱 좁아져 사람 한 명 누울 공간이 없었다. 잠을 잘 때 160센티도 되지 않는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발을 벽에 올리고 잠을 청해야 했다. 사람 한 사람도 누울 수 없는 크기의 방. 그들은 아무것도 버릴 줄은 몰랐다. 그러나 날마다 택배가 세네 개씩 왔다. 택배를 집에 들여놓을 때마다 그들의 가난은 채워지는 것 같았지만, 그럴수록 집은 더욱 좁아졌다.

 

대학에 가서 고시원 방을 구했을 때도 그가 좋아했던 이유는 발을 뻗을 수 있는 혼자만의 방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고시원 방은 월 28만 원에 관리비 3만 원이면 침대에 누워 잘 수 있었다. 비록 몸부림 한번 치면 땅에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좁은 침대였고, 침대 옆으로 난 작은 공간도 침대만큼의 폭이었지만, 책상이 있었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난 유일한 공간이었다. 가끔은 바퀴벌레가 나왔지만, 벌레를 죽이지 못하는 그는 부채에 바퀴벌레를 올려 고시원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그러면 다음 날 바퀴벌레를 발견한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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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천둥·번개가 치던 밤, 문득 일어났을 때 머리에 두둑하고 떨어지던 섬뜩한 감각을 그는 아직 잊지 못했다. 고개를 숙여 머리를 잔뜩 털어보니 검은색의 커다란 바퀴벌레 세 마리가 땅에 차례대로 뚝 뚝 떨어졌다. 그 뒤로 그는 바퀴벌레를 죽이지 못했다. 가끔은 지네도 나왔다. 할머니는 침에는 독한 게 있어서 지네에게 뱉으면 죽는다고 했다. 나중에 과학 시간에 그게 아밀라아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침에는 탄수화물과 지방을 소화하는 효소만 있고, 단백질에 대한 소화 효소는 없다는 것도 나중에 섭식장애를 앓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네를 죽이려면 지네에게 어느 정도 상처를 입힌 다음에 침을 뱉어야 한다. 침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지네의 단단한 껍질을 녹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액에 있는 단백질 소화 효소를 이용하면 지네를 죽일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가 고시원에서 2년 가까이 살았다는 것을 들으면 불만이 없고, 착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굳이 오해를 다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시원은 그에게 최상의 공간이었다. 비록 샤워실과 화장실이 바깥에 있었지만, 세탁기에는 누군가 다른 이의 빨래가 매번 돌아가고 있었지만. 매일 가위에 눌려 찾아오는 귀신 때문에 처음으로 불면증을 앓았고, 그 때문에 찾아간 용한 점집에서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리고 쉬어버렸는지 알 수 없는 김치 냄새를 맡으며 수없이 헛구역질했던 곳이지만. 옆방에 고음의 목소리를 가진 중국인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웃으며 수다를 떠는 것을 매일 듣고 문을 두드려 주의를 시켜야 할 만큼 번거로운 곳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리모델링 공사로 짐을 빼야 했던 곳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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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는 사람, 버스를 타는 사람, 차를 타는 사람,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버스비도 아껴 걸어 다니는 사람이었다. 해외 여행은 당연하고, 국내 여행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1250원이 아까워 한 시간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가장이 먹고 싶은 1400원짜리 과자도 할인하지 않아 사지 못하고, 2주쯤 뒤 천 원으로 할인할 때 먹을 수 있었다. 5천 원짜리, 만 원짜리 옷도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서울에 편하게 올 수 있는 차비 35000원이 아까워, 여러 명이 끼여서 따는 26000원 짜리 버스를 타곤 했다. 종종 다른 사람의 머리가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간 것을 보며 불쾌해했다.


언젠가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회사에 갔을 때, 누군가 놀리는 말에 웃어넘기다가도 집에 오면 서러워 우는 사람들이었다. 10만 원짜리 재킷 하나, 난생처음으로 번듯한 옷 하나 샀다가 온종일 혼나고, 혼내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돈으로 번 것도 마음껏 쓰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병이 걸렸다. 한 달에 300만 원을 벌면 하루에 10만 원씩을 써야 했다. 그래야 마음속에 가난이라는 병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하루가 지나면 다시 가난이 생겨서, 다음날에도 10만 원을 써야 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명품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구질구질한 것들, 잔잔한 것들을 여러 개 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질이나 브랜드보다는 개수와 양이었다. 무조건 원 플러스 원인 것이 필요했다. 경제적인 소비가 아닌 강박적인 지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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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에 10만 원 정도가 남으면 눈앞이 깜깜해지고 숨이 막혔다. 머릿속엔 계속해서 10만 원밖에 남지 않은 통장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10만 원으로 두 달도 살 수 있었던 1년 전은 생각도 나지 않고, 당장에라도 굶어 죽을 것 같은 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서 10만 원으로 보이는 음식점에서 보이는 대로 음식을 주문했다. 식당에 들어가 시킨 음식이 먹기 싫어도 다 먹고 나왔다.


식사를 하고 나오면 통장 속에 돈은 더 줄어들어 있고, 배는 더부룩하고, 남은 것은 없는 스스로에게 선물을 해주기로 결정을 한다. 지하철역에 굳이 들어가 빵 몇 개를 포장해서 들고나왔다. 굳이 지금 먹지 않아도 될 빵이지만,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바스락거리는 봉투 속 빵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집으로 오자마자 손도 발도 씻지 않은 더러운 상태로 불도 켜지 않은 채 쪼그려 앉아 끝도 없이 빵을 입으로 밀어 넣는다. 빵이 조금밖에 남지 않은 게 두렵고, 그러면서도 얼른 사라지기를 바란다. 빵에 대한 맛, 배부름 같은 감각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집에 먹을 것이 사라지고 나면, 아니 그것을 먹을 것이라고 말해도 좋은 걸까. 맛도, 향도 느끼지 않고 씹지도 않고 삼키는 음식물은 더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이 돌이라고 해도 씹어 삼킬 수만 있다면 그는 삼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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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그러는 줄 알았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다른 가족도 그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들의 가난은 20년 넘게 축적되어 배출할 수 없는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그 정체성은 어찌나 단단한지, 33도가 되는 폭염의 날씨에도 에어컨 버튼 하나 누를 수가 없다. 그는 그것이 더위 때문인지도 모른 채 열량 부족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음식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 음식들로 채워진 배는 더욱더 들끓어 그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필요한 것은 물과 시원함인데도 그는 계속해서 음식을 집어삼켰다. 음식이 그를 가난에서 구원해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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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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