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고향이 살아남는 방법 - 지역사회의 책문화 살리기 [도서]

너무 쉬운 것은 빨리 사라지게 되어있어
글 입력 2019.07.0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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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서도 쭉 서울에 살았던 사람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을 지방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서울과 지방의 문화 차이를 매우 크게 느꼈다. 우선, 내 고향에서는 영화관이 딱 한 군데밖에 없다. 어쩌다 두 곳으로 영화관이 늘어나면, 한 달 안에 두 곳 중 한 곳은 망하기 마련이었다. 백화점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멀쩡히 ‘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도시인데도, 백화점이 생기자마자 거의 바로 폐업의 길을 걸어 각종 세일 행사를 했었고, 그 자리는 몇 년 몇 지난 지금도 아무런 건물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친구들과 놀 장소는 늘 시내에 있는 마트밖에 없었다. 주말이면 모든 친구가 그 마트로 모여서 학교에 있을 때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마트를 조금 돌아다니면서 눈요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노래방을 갔다가 카페를 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늘 관광객이 많았다. 관광버스로 가득 찬 도시의 거리에는 오히려 시민들이 교통에 불편을 느낄 만큼 10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를 3배, 4배나 걸리는 시간을 소요해서 이동할 수 있었다. 대체 사람들은 뭘 보러 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서울로 가야 했다. 그것은 내가 바라던 것이기도 했고, 동시에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시대의 강요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외로움에 사무쳤던 4년간의 대학생활을 끝내고, 4개월간 살벌한 사회생활을 한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은 고향이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왜 이곳으로 관광을 오는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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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도라에몽 만화에서 진구가 간식으로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늘 부러워하곤 했다. 가족의 생일 때마다 가끔 먹는 케이크로는 내 식탐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데 매일 케이크를 먹어보니 그게 사실은 별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고 느끼하면서도 촉촉하고 환상적인 무언가였을 뿐이다. 다른 자극을 찾으려고 매번 다른 케익을 시도해봐도 결국은 케익이란 결론이었다.


매일 먹을 수 있게 된 케익은 서울과 같은 맥락으로 다가왔다. 결국 아닌 것은 나를 온전하게 성장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겪어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 집 앞 30초 거리에 있는 편의점은 아주 간편하고, 집 주변 반경으로 10m 내에 카페가 다섯 군데 이상이나 있다는 것은 사람의 삶에 선택의 가능성을 준다. 돈만 지급한다면 어디에서나 쉽고 간편한 즐거움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루에 30분 정도만 들인다면 어느 영화관이든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곳, 자기가 애정 하는 영화관의 VIP가 되어 각종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관광하러 일 년에 한 두 번 시간을 내어 며칠 머물다 가는 것과 살아가는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곳, 정착지의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너무나 편리한 생활, 문화는 가끔의 싫증을 주어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떠나게 하곤 하지만, 그들은 관광지에서 평생을 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살고 싶다고 생각해도,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서 다시 그들의 삶의 터로 돌아간다. 관광지는 그들이 살만큼의 무언가 강렬한 조건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것이 일터와 같은 경제적인 수단이 멀다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문화생활 등의 서비스 부족도 큰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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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앞으로 펼쳐질 지방분권사회 시대 흐름에 맞춰 지역사회의 책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는 모든 것이 수도권에 치우쳐있어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기가 몹시 힘들다. 신도시, 위성도시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한 세대가 지나가면 수도권 쪽은 죽기 마련, 결국 사람들은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서울을 중심으로 모든 것들이 발달했지만, 지방의 실태는 한 집 건너 한 집은 망해있는 실상이다.


부길만 씨는 <지역사회의 책 문화 살리기>를 통해 지역사회를 살릴 방안으로 지역사회의 책문화를 강조해서 설명하고 있다. 지역 사회의 도서전, 도서 신문 등 만들기와 같은 가족 행사를 주최하는 제안을 한다. 출판은 문화 창조와 전파, 보존에 가장 유리한 매체이기 때문에 지역의 문화를 살릴 것이며, 수도권에 국한된 문화 사업이 지역으로 확장될 거라는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지역사회의 책문 화는 도서를 매개로 지역의 핵심 이슈와 시대 정신을 담아내는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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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지리 시립도서관



일본의 나가노현 시오지리 시립도서관의 예를 들며 우리 지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안을 제시한다. 나가노 현은 인구가 10만 명이 되지 않는 6만 6천 명의 작은 도시지만, 1년 도서구매비가 한화로 3억 원에 달한다. 한 권당 평균 만오천 원으로 잡았을 때, 1년에 2만 권의 도서를 산다는 말이다. 연간 대출 책 수는 도서관 등록자 1인당 18권으로, 우리나라 대학 재학생의 평균 대출 책 수 5.5권과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많은 횟수다. (2017년 3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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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지리 시립도서관



시오지리 시립도서관에서 정말 본받을만한 정책은 인기도서라고 해서 2권 이상 비치하지 않아, 예산을 다른 필요한데에 더 투자한다는 것이다. 인기도서나 만화책 종류는 지역 서점에서 직접 구매하도록 유도하여, 지역 서점까지 지원한다. 이는 지역도서관과 지역 서점이 연계해 상생할 방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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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드림센터 교보문고 핫트랙스



최근에 우리나라의 중고서점을 가서 약간 놀랐었다. 책을 앉아서 읽을 수 있는 자리를 여러 군데 만들어놓아 사람들이 저녁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내던 모습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책을 구매할 사람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중고서점뿐만 아니라 대형서점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판매해서 이익을 창출해야 할 서점에서 도서관이 제공해야 할 서비스가 결합한 모습은 단순히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시민들이 도서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카페처럼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닌 상업 시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 나갈 것인가. 하나의 장소가 다른 목적을 지니는 모습에서 쉽게 가치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원래의 목적을 아예 달성할 수 없게 된다면 섣부른 시도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시오지리 시립도서관에서는 다문화 서비스, 시니어 활동 지원, 청소년 교류, 육아 응원 등을 제공한다. 수시로 기획전시를 하여, 도서관 이용자들이 직접 전시를 만들기도 하며, <책의 서당>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책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등 독서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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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흥미로웠던 것은 일본의 고등학생 독서 배틀, 비블리오 배틀이다. 비블리오는 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다. 이 배틀에서 각 참가자가 자신이 원하는 책의 매력을 5분 동안 발표하고, 3분 정도 청중들의 질문에 대답한다. 다수결로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선택한다. 중학생, 대학생 대회도 따로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례가 있나 찾아보니, 2018년에 MBC에서 비블리오 배틀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던 적이 있었다. 단 1회에 그친 방영이었지만, 어린 아이부터 나이많으신 분까지 5분동안 책을 발표하고, 시청자들에게 답을 하는 모습에 책을 다섯 권 읽은 것 같다며 앙코르를 요청하는 댓글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어왔던 터라, 이 글을 접하고 고등학생들에게 시에서 주최하는 독서 배틀 대회가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행하는 모든 활동이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우리나라의 입시 제도를 고려해보면 무조건 이 대회를 빌려온다고 해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 네 가지를 자기소개서 항목에 적기 위해 억지로 책 네 권을 읽어야 하는 부담까지 더해진 고등학생들은 입시 제도에 고통받을 뿐이다. 책 읽기라는 문화 활동마저도 하나의 자격조건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에 어떻게 적용해야 사람들이 문화를 진정 문화로 즐길 것인가. 20살도 안 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살아온 인생의 몇 배나 될 시간을 감당할 대학과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만큼 바보같은 현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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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대학과 성적, 학과, 그리고 일에서 부여한다. 분명히 개개인만의 정체성이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런 대외적인 지위와 소속이 자신을 설명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자신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 분명하다. 또는 그 일, 그 대학이라는 대외적 지위를 얻기 위해 일생을 노력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것으로 정의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어떤 것에 투자한다면, 삶이란 것은 시간의 집합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된다고 해도 옳지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진정한 삶이란 은퇴 후에 시작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은퇴 후의 삶을 보장해줄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면. 또는 회사에 다니고 일을 하면서도 일 외에 자신을 정의해줄 무언가를 좀 더 찾기 쉽다면, 사람들이 자기를 소개할 때 어떤 학교나 어떤 학과라는 공통 언어 대신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양성을 일상에서 안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본다면 참 개선해야 할 곳이 많은 곳이 우리나라지만, 그만큼 많은 문제투성이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또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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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부길만 씨는 <지역사회의 책 문화 살리기>에서 일본 돗토리 현의 독서진흥 활동 사례, 출판 디지털화에 앞장서고 있는 이마이 서점의 사례, ‘도서관 선정 100권의 책 읽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히에즈촌 마을도서관의 사례 등을 소개하고 있다.


돗토리현립도서관의 사례가 특히 인상 깊었는데, 일반행정직으로 근무하다가 관장이 되었고, 도서관을 개혁하고자 두 달간의 연수 끝에 사서 자격증을 취득한 도서관장 사이트 아키히토 씨가 독서문화 진흥에 이바지했다. “도서관은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곳,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각 분야에서 상담을 해주는 코너, 이혼과 같은 사적인 문제는 시민들이 직접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드러나도록 비치했다. 주민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알아보기 쉬운 곳에 배치하는 등 도서관을 시민 위주로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또, 지역 서점에서 책을 정가로 구매해 지역 서점 살리기에도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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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녔던 공립 중고등학교에서 사서 선생님들도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하려고 독서 장려 행사를 하곤 했지만, 책을 읽는 아이들을 문제아 취급하던 (물론 공부를 잘하면서 책도 많이 읽는 사람은 못 본 척 넘어갔다.) 학교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봤던 교사들은 나보다 책을 적게 읽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서 선생님 혼자 개선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또한, 사서 선생님이 하는 행사 역시 책 속에 있는 보물찾기 정도의 행사에 머무를 때도 잦아서 도서관을 활성화할 수는 있었지만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건지는 의문이다.


마찬가지로 공립도서관이 많은 홍보를 하고, 책 읽기를 장려한다고 해도 사회 분위기와 사회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자신의 진로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을 단순히 금수저 취급한다거나, 인생을 살면서 뒤처질 인간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하루라도 뒤처질 수 없어 일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국민이라면 이 나라는 앞으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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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세상은 디지털화되고, 파편화되어 얉고 넓은 지식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40분짜리 인터넷 강의 하나에서 수많은 지식을 전달받을 수 있는 시대에 2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을 읽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세상을 달리는 레이스에서의 후퇴로 느껴질 것이다. 그 상황에서 오롯이 유유자적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은 마냥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사람은 교육받고, 주변의 행동을 따라 하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쉽게 배운다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돈 몇 푼이면 쉽게 얻을 지식이다. 그 말은 즉, 쉽게 얻은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당신의 클릭 한 번으로 돈을 벌고 있을 인터넷 기사에 괜히 악플을 쓰며 오늘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 당신의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당신의 시간은 그것보다 더욱 소중한 것을 발견할 기회가 충분히 있는데도 말이다.


<지역사회의 책 문화 살리기>를 읽으며, 왜 모든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는 시대에 굳이 지역 도서관과 지역 서점을 이용해서 오래된 정보를 찾아서 뒤져야 하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많은 것이 서울에 밀집되어 있지만, 이 지역은 우리의 고향이다. 내가 태어난 이곳을 마냥 잃어버리고만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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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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